책 소개
‘자신의 수행을 위한 도구’였던 산문 쓰기, 정영희 소설가의 『굿모닝, 카르마』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수상 후, 여러 권의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펴낸 정영희 소설가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았던 첫 번째 산문집 『석복수행 중입니다』(2017년)와 두 번째 『콤플렉스 사용설명서』(2020년)에 이어 다시 3년 만에 세 번째 산문집 『굿모닝, 카르마』를 출간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굿모닝, 카르마』는 “혁명가처럼 유토피아(Utopia)를 꿈꾸었고, 피안(彼岸)을 꿈꾸었다. 오래도록 아파했고, 오래도록 사색했다. 그러다 문득 유토피아와 피안은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안에 있음을 알았다. 수행의 첫걸음이다. 글쓰기는 농부의 쟁기처럼 수행을 위한 나의 쟁기구나 싶었다. 수행은 욕망과 집착과의 투쟁이다. 물이 범람하는 강가에서 모래 탑을 쌓는 일 같다. 언제나 실패하고 실패한다”며 소설가의 ‘산문 쓰기’는 ‘농부의 쟁기’처럼 자신의 수행을 위한 도구였다고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다.
<제1장 미네르바의 부엉이>에는 ‘관심종자’를 줄인 말인 ‘관종(關種)’에 대해 어원부터 시작해 인류 최초의 관종인 고대 그리스인 헤로스트라투스와 애플의 창시자 스티븐 잡스, 카카오 이사회 김범수 의장 등과 소셜미디어 SNS 속의 여러 관종들에 대해 거론하며 스토리가 없는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어바웃 관종」,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 실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짙어지자 날기 시작한다”에서 나오는 말로 오랜 사유와 시행착오, 지혜의 연마 끝에야 비로소 현명한 판단이 가능하다고 하며, 황혼녘에 날아오를 지혜로운 어른들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질투, 비난하는 ‘뒷담화’는 좋지 않은 말로 회자되지만 올바른 비판을 하며 자기 성찰도 가져올 수 있는 뒷담화를 주고받으면 일석사조의 효과를 만날 수 있다는 「뒷담화의 효능」 등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제2장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뜻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과 늘 자신을 청춘이라고 생각하며 ‘동안(童顔)’에 집착하는 사람들 역시 모두 ‘피터팬 증후군’이라 부른다. 그러나 푸른 대추가 붉어져 단맛을 내듯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더 성숙한 행동과 사고를 해야 한다는 「피터팬 증후군」,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태양 가까이 갔다가 추락한 이카루스와 『장자 내편』 「소요유」에 나오는 한 번의 날갯짓으로 몇 천 리를 날아가는 새 붕(鵬)의 예를 들며 대학 1학년 때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고 작가가 되어 30여 년이 넘게 창작을 이어오면서 큰 새 붕(鵬)은 되지 못했지만 날개에 근육도 생기고 깃털도 잘 가꾸어 웬만한 바람에 놀라지 않게 되었다는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 등을 읽을 수 있다.
<제3장 굿모닝, 카르마>는 이번 산문집의 표제작이다. 모든 인간은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커다란 돌을 들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자신만의 형벌이 있음을 깨닫는다. 20년 넘게 살아온 가락동 오피스텔 건물과 주변에는 20년 동안 머리에 쟁반을 이고 밥을 배달하는 아주머니와 20년 동안 무안낙지를 파는 여인과 20년 동안 빈대떡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와 20년 동안 문구를 파는 노총각과 20년 동안 복권을 파는 남자와 20년 동안 구두수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부조리한 운명 같은 자신만의 업(業)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굿모닝, 카르마」, 또 20년째 다니는 다섯 평쯤 되는 가락동의 ‘잉글랜드 수선’집의 키 작은 부부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밤 10시 반에 잠들 때까지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구도자처럼 보여 본받을 만하다는 이야기인 「매달린 절벽에서」 등은 곱씹으며 읽을 만한 글이다.
<제4장 콘야에서 울다>에서는 〈오징어 게임〉 〈화영연화〉 〈하우스 오브 구찌〉 〈미나리〉 〈리플리〉 등 유명 영화와 관련 있는 감독과 배우, 역사적 장소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최초로 전 세계 드라마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과 황동혁 감독에 얽힌 이야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 ‘화양연화’와 영화 〈화양연화〉의 주제곡으로 재즈와 첼로곡을 융합한 천재 왕가위 감독의 이야기,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 간 한 가족의 고군분투기이고 한국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미나리〉 등의 글은 만날 수 있다.
정영희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불환(不還).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3초마다 번뇌에 멱살 잡히는 마음을 끄고, 적멸의 강에 이르러야 가능하리라.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번 물 위로 올라와, 떠다니는 판자에 머리가 끼일 확률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더 어렵다는데, 이 귀하고 귀한 생(生)을 탕진하고 있다니. 아, 난 얼마나 더 억겁의 생을 태어나고 태어나서, 이 카르마(karma) 다 갚은 공덕으로 그 강에 닿을까”라고 말하며 “그 강에 이르는 계단에 한 발을 올려놓은 자는 아주 느리지만, 현장법사가 온갖 요괴를 물리치며 구법(求法)을 향해 서쪽으로 나아갔듯,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하여, 마침내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꿈꾼다”며 산문집 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작가 소개
정영희
대구에서 출생하여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시문학』에 단편소설 「아내에게 들킨 生」을 발표하고, 1986년 중편소설 「무무당의 새」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장편소설 『그리운 것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무소새의 눈물』, 『슬픈 잠』, 『아프로디테의 숲』, 『아키코』 등과 소설집 『그리운 눈나라』, 『낮술』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석복수행 중입니다』, 『콤플렉스 사용설명서』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영희역학연구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목 차
작가의 말 | 마침내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 4
제1장 미네르바의 부엉이
11 어바웃 관종
17 이방인을 위한 침대
25 미네르바의 부엉이
31 보이차, 그리고 커피
38 사자 혹은 원숭이
45 뒷담화의 효능
51 팔자를 고치는 법
제2장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
61 아이스케키
67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
73 러브스토리와 포르노
79 아직도 글 쓰세요
86 문 앞에서
92 피터팬 증후군
98 스톡홀름 증후군
제3장 굿모닝, 카르마
107 마음의 깃발
113 굿모닝, 카르마
120 욕망의 거리두기
126 발우를 들고
132 무무당
139 매달린 절벽에서
146 소유냐 존재냐
제4장 콘야에서 울다
155 암행어사, 오징어 게임
162 화양연화
167 하우스 오브 구찌
174 미나리
180 콘야에서 울다
187 마음을 보다
193 생의 향연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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