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장하준 vs. 이병천
누구를 위한, 어떤 경제민주화인가
재벌과 박근혜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론은 모두 허구다!
모두가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은 그것에 대하여
___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론은 허구다
경제민주화. 대선 정국에서 이제는 가장 핫한 키워드에서 가장 식상한 허울로 전락한 이 말은,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지 않은, 현재 한국 사회 바벨탑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여당과 야당 후보 모두 공히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박근혜 후보는 얼마 전 가장 기본적인 재벌 개혁 조치로 평가받는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조차 불가론의 입장을 피력했다. 또 한편으로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 담론이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 규제는 기본이고 노동자 자주 경영제 실현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제안까지 포함시켜야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 책은 이 모든 경제민주화 담론을 구성하는 화려한 수사들을 한 꺼풀 벗겨 내고,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와 그 실현을 위한 근본적이고도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오랫동안 재벌을 비롯한 한국 경제의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이병천 교수가 그간 장하준 교수와 논쟁하면서 써온 한국경제론에 대한 글들과 이 논쟁이 위치하고 있는 보다 넓은 지형을 보여 주는 현대 제도주의 발전경제학에 대한 글들을 모아 엮었다. 장하준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장하준의 ‘재벌 옹호론’이 연원하는 한국 경제 구조 전반에 대한 시각과 역사적 관점의 문제를 아울러 ‘한국경제론’을 구성하고자 한 이 책은, 외국 권위자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벼리며 한국 현실에 밀착한 경제 대안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의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다.
3부 총 23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프레시안을 비롯한 지면에 실린 글들과 새로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하준 그룹의 한국경제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담은 1부에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2012)와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2005)를 중심으로 ‘재벌을 제외한 신자유주의론’을 제시한 장하준 그룹의 견해를 비판하고 ‘개발독재에서부터 시작된 재벌의 유산’을 포함한 신자유주의론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드러난 한국 경제에 대한 입장과 제도주의 경제학적 논점들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장하준 그룹이 위치하고 있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문제를 살펴보고,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역사 속에서 재벌 기업과 국가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로드릭, 스티글리츠 등의 연구에 대한 논의를 추가해 장하준이 위치하고 있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공과를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살펴봄으로써 국외 학자들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및 세계경제에 대한 해석에서 독자들이 좀 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1)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탄생
___개발독재의 유산과 민주 정부의 과오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판하며 개발도상국의 국가 자율성과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 경제학자 장하준은 어째서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일까? 장하준의 재벌 개혁 무용론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많은 쟁점들을 제기했지만, 저자는 한국 경제사와 현재의 신자유주의 구도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파고들면서 논쟁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으로 이끌어 간다. 장하준 그룹이 초국적 자본과 금융 세력의 대척점에 ‘재벌?대기업’ 그리고 한국 민중을 놓고 민족주의적 주장을 펼쳤던 것은,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오인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다. 장하준 그룹이 신자유주의를 ‘금융 자본주의’로 협소화하고 노동 세력의 주적으로 금융자본을 겨냥하면서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에서 재벌을 제외시킨 반면, 이병천은 한국적 특수성에 주목하면서, 한국 경제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금융자본만이 주도하는 체제가 아니라 재벌과 금융자본의 연합이 노동자 서민을 착취하는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 복합체, 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새로운 타협안이자 계급적 기획이라는 점을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한국경제사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도 맞닿아 있다. 즉, 박정희 체제의 유산에 대한 평가 문제가 걸려 있는 것. 이병천은 장하준 그룹이 자본과 노동의 계급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한 탓에 개발독재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박정희 체제가 현재 한국 사회에 남긴 부정적 유산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박정희 시기에 있었던 억압적 노동 규율이 재벌 주도의 고투자를 가능케 한 계급 정치적 조건이었으며, 이것이 현재 재벌을 견제할 대항력을 갖지 못하게 만든 계급 구조적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독재가 역사적 유산으로 남긴 강력한 재벌과 취약한 시민사회라는 비대칭적 사회구조 속에서 국가가 후퇴하고, 이후 경제적 자유화의 흐름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난파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오에 힘입어 그 이득을 독점하게 된 것이 바로 재벌이며, 이것이 바로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라는 것. 저자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바로 이런 한국경제론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란 없다
___애플과 삼성은 한국 민중에게 과연 다른 존재인가
*2004년 1조2,000억 원짜리 쌍용차를 불과 5,909억 원에 인수한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내고 애초 약속했던 투자는 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에 지장이 생기자 회사는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안진회계법인은 부채비율을 크게 부풀린 회계보고서를 작성했고, 삼정KPMG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체 노동자의 37%에 이르는 2,646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9년 77일간의 파업 이후 경찰은 대테러장비를 이용해 농성자들을 진압했고, 이후 3년간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 22명이 사망했다. 기획 부도를 낸 상하이차와 쌍용차, 이에 맞선 노동자들을 말끔히 처리해 버린 정부와 경찰, 그리고 끝내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사망한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 건널 수 없는 강은 과연 어디에 놓여 있는가?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는 주당 22만 원이 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7,700원이라는 헐값에 (자사 지분의 62.5%에 해당하는) 125만 4천 여주를 발행하기로 결의한다. 이후 에버랜드 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이 인수권을 포기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이 인수해 에버랜드 1대 주주로 등극한다. 2000년부터 지리한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2009년, 대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사건 발생 16년이 지난 2012년에야 장하성 등의 소액주주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당시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을 통해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며 “이는 증여세를 회피하면서 경영권을 아들에게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는 판결이 이루어졌다. 삼성 공화국은 과연 이건희와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장하준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글은 바로 “삼성과 이건희도 구분 못하나”였다. 장하준은 ‘인물을 뺀 제도론’, 즉 ‘재벌을 뺀 재벌체제론’을 주장하며, 출총제, 순환출자금지, 금산 분리 등과 같은 재벌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기본적인’ 정책들조차 금융자본을 돕는 방식이라고 해석하며 거센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재벌과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재벌과 관련 없는 문제조차 주주 자본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쌍용차 사태가 쌍용차가 재벌 체제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주장은 인물로서의 재벌은 주주 자본주의에 호응하며 사리사욕을 취하는 반면, 제도로서의 대기업 재벌은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와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병천은 인물과 제도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복합체이며, 문제는 재벌 가문이 주주 자본주의에 호응해 사리사욕을 취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하에서 성장한 재벌의 재산권이 재벌 가족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가장 첨예한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음에도 장하준은 개발독재 이후 자유화 과정에서 재벌 가문이 독차지한 소유권의 의미를 놓친 채 금융 자본화 여부에 대해서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하준은 주주 자본주의와의 타협이 단지 인물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퍼센트도 안 되는 지분율을 가진 총수가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띠고 있고, 이에 따라 재벌 체제 전체가 가동되면서 주주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공생하는 축적 양식이 작동한다.
또 장하준은 국제 금융자본이 맘만 먹으면 한국의 대기업을 접수할 것처럼 이야기하며 재벌 세력을 피해자화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의 실제 현실을 조사해 보면, 높은 사내유보율, 낮은 노동 소득 분배율을 특징으로 하며 주주에 돌아가는 몫이 낮다는 점에서 총수 주도 아래 막강한 자율적 파워를 가지고 금융시장 압력에 대응하면서 재벌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3) 경제민주화 담론의 진실게임 : 국가와 자본, 권력과 제도의 관계 바로 알기
___국가 맹신주의와 제도경제학을 넘어
기존의 경제민주화 담론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공정 경쟁 질서 수립을 넘어선,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문제다. 저자는 기존의 시민운동 진영에서 이루어진 공정 경쟁 시장 수립이나 소액 주주권 중심의 재벌 개혁 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실질적인 민주적 참여와 분배 정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재벌들이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정 경쟁 시장 수립의 문제 역시 중요하지만, 이제 ‘경제민주화 시즌2’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합의 지점을 넘어서, 어디까지,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밀고나갈 것이냐에 있다. 최근 대선 후보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출총제나 순환 출자 금지, 금산 분리 등도 사실은 공정 경쟁 질서 수립과 관련된 기본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으며, 이제는 ‘시즌 2’의 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이병천 교수의 강조점이다.
또한 저자는 장하준 등과 대선 박근혜 등의 보편적 복지 담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이들은 ‘노동 없는’ 인식틀 속에서 국가와 재벌이 함께 지배 블록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국가를 재벌을 강력히 규제하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봄으로써 주로 국가에 의한 하향식 규제와 개혁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 이들은 현재 재벌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 문제의 핵심을 ‘국가’에서만 찾게 만들며, 결국 그 해결책 역시 국가에서 찾도록 만든다는 것이 저자가 제기하는 비판의 핵심이다. 결국 경제‘민주화’에서 민주화의 의미는 사라지고 정부의 기업 규제론 정도로 축소되는 것이 바로 장하준을 비롯한 여타의 장밋빛 복지국가론과 경제민주화론의 맹점이다.
모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국가 기구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정당성 없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재벌의 주장에도 굴하지 않으려면, 아래로부터의 동력을 가지고 어떻게 국가-재벌-외국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 작가 소개
저 : 이병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UC 버클리 대학과 UW 매디슨 대학 객원 교수,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참여사회연구소장을 지냈으며, 2002년 이후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공동 편집인을 맡고 있다.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2012, 공저),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2008, 공저), 『세계화 시대 한국 자본주의』(2007, 공저),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2003), “한국 경제 97년 체제의 특성에 대하여”(2012)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_경제민주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과거에 붙들린 미래
제1부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개발독재에서 경제민주화까지
01 재벌 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02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03 장하준?정승일의 자가당착, 그리고 ‘잡종 신자유주의’
04 그들이 눈감은 박정희 체제의 ‘불편한 진실’
05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독재의 유산 위에 서있다
06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의 과거와 현재: 다시 대안연대를 생각한다
07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08 재벌과 타협하기 전에 힘 있게 부딪쳐라
09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이중 과제: ‘시즌 2’는 ‘시즌 1’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
10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장하준 그룹에 묻는다
제2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논쟁
11 경제 시민은 시민 경제를 요구한다
12 장하준, 재벌 권력엔 왜 눈 감는가?
13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리얼’하지 않다…왜?
14 강한 개발 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15 재벌 싱크탱크는 장하준의 ??23가지??를 어떻게 보나?
16 정글 자본주의를 위한 독재자를 기다리나: 시장 만능주의자의 장하준 비판에 대하여
17 시장의 거대한 실패, 경제 시민의 시민 경제학을 위하여
제3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
장하준, 로드릭, 스티글리츠
18 ‘주식회사 한국’ 모델에서 ‘이해 당사자 한국’ 모델로
19 개입 국가의 성공 조건과 성격: 국가 맹신을 넘어
20 패권적 자유 시장주의 대 경제적 민족주의
21 ‘복지국가 혁명’의 길
22 로드릭의 발전 경제학과 자본주의 새판 짜기
23 스티글리츠의 경제학, 어떻게 볼 것인가: 참여 민주적 케인스 경제학과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장하준 vs. 이병천
누구를 위한, 어떤 경제민주화인가
재벌과 박근혜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론은 모두 허구다!
모두가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은 그것에 대하여
___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론은 허구다
경제민주화. 대선 정국에서 이제는 가장 핫한 키워드에서 가장 식상한 허울로 전락한 이 말은,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지 않은, 현재 한국 사회 바벨탑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여당과 야당 후보 모두 공히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박근혜 후보는 얼마 전 가장 기본적인 재벌 개혁 조치로 평가받는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조차 불가론의 입장을 피력했다. 또 한편으로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 담론이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 규제는 기본이고 노동자 자주 경영제 실현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제안까지 포함시켜야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 책은 이 모든 경제민주화 담론을 구성하는 화려한 수사들을 한 꺼풀 벗겨 내고,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와 그 실현을 위한 근본적이고도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오랫동안 재벌을 비롯한 한국 경제의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이병천 교수가 그간 장하준 교수와 논쟁하면서 써온 한국경제론에 대한 글들과 이 논쟁이 위치하고 있는 보다 넓은 지형을 보여 주는 현대 제도주의 발전경제학에 대한 글들을 모아 엮었다. 장하준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장하준의 ‘재벌 옹호론’이 연원하는 한국 경제 구조 전반에 대한 시각과 역사적 관점의 문제를 아울러 ‘한국경제론’을 구성하고자 한 이 책은, 외국 권위자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벼리며 한국 현실에 밀착한 경제 대안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의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다.
3부 총 23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프레시안을 비롯한 지면에 실린 글들과 새로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하준 그룹의 한국경제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담은 1부에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2012)와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2005)를 중심으로 ‘재벌을 제외한 신자유주의론’을 제시한 장하준 그룹의 견해를 비판하고 ‘개발독재에서부터 시작된 재벌의 유산’을 포함한 신자유주의론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드러난 한국 경제에 대한 입장과 제도주의 경제학적 논점들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장하준 그룹이 위치하고 있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문제를 살펴보고,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역사 속에서 재벌 기업과 국가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로드릭, 스티글리츠 등의 연구에 대한 논의를 추가해 장하준이 위치하고 있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공과를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살펴봄으로써 국외 학자들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및 세계경제에 대한 해석에서 독자들이 좀 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1)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탄생
___개발독재의 유산과 민주 정부의 과오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판하며 개발도상국의 국가 자율성과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 경제학자 장하준은 어째서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일까? 장하준의 재벌 개혁 무용론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많은 쟁점들을 제기했지만, 저자는 한국 경제사와 현재의 신자유주의 구도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파고들면서 논쟁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으로 이끌어 간다. 장하준 그룹이 초국적 자본과 금융 세력의 대척점에 ‘재벌?대기업’ 그리고 한국 민중을 놓고 민족주의적 주장을 펼쳤던 것은,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오인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다. 장하준 그룹이 신자유주의를 ‘금융 자본주의’로 협소화하고 노동 세력의 주적으로 금융자본을 겨냥하면서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에서 재벌을 제외시킨 반면, 이병천은 한국적 특수성에 주목하면서, 한국 경제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금융자본만이 주도하는 체제가 아니라 재벌과 금융자본의 연합이 노동자 서민을 착취하는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 복합체, 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새로운 타협안이자 계급적 기획이라는 점을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한국경제사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도 맞닿아 있다. 즉, 박정희 체제의 유산에 대한 평가 문제가 걸려 있는 것. 이병천은 장하준 그룹이 자본과 노동의 계급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한 탓에 개발독재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박정희 체제가 현재 한국 사회에 남긴 부정적 유산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박정희 시기에 있었던 억압적 노동 규율이 재벌 주도의 고투자를 가능케 한 계급 정치적 조건이었으며, 이것이 현재 재벌을 견제할 대항력을 갖지 못하게 만든 계급 구조적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독재가 역사적 유산으로 남긴 강력한 재벌과 취약한 시민사회라는 비대칭적 사회구조 속에서 국가가 후퇴하고, 이후 경제적 자유화의 흐름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난파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오에 힘입어 그 이득을 독점하게 된 것이 바로 재벌이며, 이것이 바로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라는 것. 저자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바로 이런 한국경제론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란 없다
___애플과 삼성은 한국 민중에게 과연 다른 존재인가
*2004년 1조2,000억 원짜리 쌍용차를 불과 5,909억 원에 인수한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내고 애초 약속했던 투자는 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에 지장이 생기자 회사는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안진회계법인은 부채비율을 크게 부풀린 회계보고서를 작성했고, 삼정KPMG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체 노동자의 37%에 이르는 2,646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9년 77일간의 파업 이후 경찰은 대테러장비를 이용해 농성자들을 진압했고, 이후 3년간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 22명이 사망했다. 기획 부도를 낸 상하이차와 쌍용차, 이에 맞선 노동자들을 말끔히 처리해 버린 정부와 경찰, 그리고 끝내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사망한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 건널 수 없는 강은 과연 어디에 놓여 있는가?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는 주당 22만 원이 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7,700원이라는 헐값에 (자사 지분의 62.5%에 해당하는) 125만 4천 여주를 발행하기로 결의한다. 이후 에버랜드 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이 인수권을 포기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이 인수해 에버랜드 1대 주주로 등극한다. 2000년부터 지리한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2009년, 대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사건 발생 16년이 지난 2012년에야 장하성 등의 소액주주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당시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을 통해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며 “이는 증여세를 회피하면서 경영권을 아들에게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는 판결이 이루어졌다. 삼성 공화국은 과연 이건희와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장하준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글은 바로 “삼성과 이건희도 구분 못하나”였다. 장하준은 ‘인물을 뺀 제도론’, 즉 ‘재벌을 뺀 재벌체제론’을 주장하며, 출총제, 순환출자금지, 금산 분리 등과 같은 재벌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기본적인’ 정책들조차 금융자본을 돕는 방식이라고 해석하며 거센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재벌과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재벌과 관련 없는 문제조차 주주 자본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쌍용차 사태가 쌍용차가 재벌 체제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주장은 인물로서의 재벌은 주주 자본주의에 호응하며 사리사욕을 취하는 반면, 제도로서의 대기업 재벌은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와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병천은 인물과 제도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복합체이며, 문제는 재벌 가문이 주주 자본주의에 호응해 사리사욕을 취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하에서 성장한 재벌의 재산권이 재벌 가족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가장 첨예한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음에도 장하준은 개발독재 이후 자유화 과정에서 재벌 가문이 독차지한 소유권의 의미를 놓친 채 금융 자본화 여부에 대해서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하준은 주주 자본주의와의 타협이 단지 인물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퍼센트도 안 되는 지분율을 가진 총수가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띠고 있고, 이에 따라 재벌 체제 전체가 가동되면서 주주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공생하는 축적 양식이 작동한다.
또 장하준은 국제 금융자본이 맘만 먹으면 한국의 대기업을 접수할 것처럼 이야기하며 재벌 세력을 피해자화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의 실제 현실을 조사해 보면, 높은 사내유보율, 낮은 노동 소득 분배율을 특징으로 하며 주주에 돌아가는 몫이 낮다는 점에서 총수 주도 아래 막강한 자율적 파워를 가지고 금융시장 압력에 대응하면서 재벌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3) 경제민주화 담론의 진실게임 : 국가와 자본, 권력과 제도의 관계 바로 알기
___국가 맹신주의와 제도경제학을 넘어
기존의 경제민주화 담론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공정 경쟁 질서 수립을 넘어선,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문제다. 저자는 기존의 시민운동 진영에서 이루어진 공정 경쟁 시장 수립이나 소액 주주권 중심의 재벌 개혁 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실질적인 민주적 참여와 분배 정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재벌들이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정 경쟁 시장 수립의 문제 역시 중요하지만, 이제 ‘경제민주화 시즌2’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합의 지점을 넘어서, 어디까지,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밀고나갈 것이냐에 있다. 최근 대선 후보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출총제나 순환 출자 금지, 금산 분리 등도 사실은 공정 경쟁 질서 수립과 관련된 기본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으며, 이제는 ‘시즌 2’의 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이병천 교수의 강조점이다.
또한 저자는 장하준 등과 대선 박근혜 등의 보편적 복지 담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이들은 ‘노동 없는’ 인식틀 속에서 국가와 재벌이 함께 지배 블록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국가를 재벌을 강력히 규제하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봄으로써 주로 국가에 의한 하향식 규제와 개혁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 이들은 현재 재벌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 문제의 핵심을 ‘국가’에서만 찾게 만들며, 결국 그 해결책 역시 국가에서 찾도록 만든다는 것이 저자가 제기하는 비판의 핵심이다. 결국 경제‘민주화’에서 민주화의 의미는 사라지고 정부의 기업 규제론 정도로 축소되는 것이 바로 장하준을 비롯한 여타의 장밋빛 복지국가론과 경제민주화론의 맹점이다.
모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국가 기구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정당성 없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재벌의 주장에도 굴하지 않으려면, 아래로부터의 동력을 가지고 어떻게 국가-재벌-외국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 작가 소개
저 : 이병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UC 버클리 대학과 UW 매디슨 대학 객원 교수,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참여사회연구소장을 지냈으며, 2002년 이후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공동 편집인을 맡고 있다.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2012, 공저),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2008, 공저), 『세계화 시대 한국 자본주의』(2007, 공저),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2003), “한국 경제 97년 체제의 특성에 대하여”(2012)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_경제민주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과거에 붙들린 미래
제1부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개발독재에서 경제민주화까지
01 재벌 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02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03 장하준?정승일의 자가당착, 그리고 ‘잡종 신자유주의’
04 그들이 눈감은 박정희 체제의 ‘불편한 진실’
05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독재의 유산 위에 서있다
06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의 과거와 현재: 다시 대안연대를 생각한다
07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08 재벌과 타협하기 전에 힘 있게 부딪쳐라
09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이중 과제: ‘시즌 2’는 ‘시즌 1’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
10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장하준 그룹에 묻는다
제2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논쟁
11 경제 시민은 시민 경제를 요구한다
12 장하준, 재벌 권력엔 왜 눈 감는가?
13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리얼’하지 않다…왜?
14 강한 개발 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15 재벌 싱크탱크는 장하준의 ??23가지??를 어떻게 보나?
16 정글 자본주의를 위한 독재자를 기다리나: 시장 만능주의자의 장하준 비판에 대하여
17 시장의 거대한 실패, 경제 시민의 시민 경제학을 위하여
제3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
장하준, 로드릭, 스티글리츠
18 ‘주식회사 한국’ 모델에서 ‘이해 당사자 한국’ 모델로
19 개입 국가의 성공 조건과 성격: 국가 맹신을 넘어
20 패권적 자유 시장주의 대 경제적 민족주의
21 ‘복지국가 혁명’의 길
22 로드릭의 발전 경제학과 자본주의 새판 짜기
23 스티글리츠의 경제학, 어떻게 볼 것인가: 참여 민주적 케인스 경제학과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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