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삼국유사』는 단순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다.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버리고’ 또 ‘배치해’ 이룬 한 권의 역사책이다.
《삼국유사》의 글쓰기는 요즘의 역사책 쓰기와는 많이 다르다. 일연은 물리적인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실증적이고 물리적인 사실을 최소로 하고, 그것도 이야기와 일화 속에서 드러내려 애쓴다. 《삼국유사》 글쓰기를 한 마디로 줄이면 ‘집중’, ‘배제’, ‘배치’ 그리고 ‘문학적인 상징’이다. 요즘 역사책엔 낯선 방식이지만, 사마천의 《사기》 특히〈열전〉에서 빛을 발한 글쓰기이다.
집중: 신라 최전성기를 이끈 성덕왕을, 흉년과 구제에 집중해서 보여주었고, 또한 ‘아름다운 사람’ 즉 수로부인을 배치해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 사마천이 [한나라 무제 본기]를, 귀신·무의巫醫·방사方士에 빠져 제사 지내고, 죽지 않으려고 신선神仙을 찾아다닌 것으로만 채운 것과 같은 방식이다.(48쪽)
배치: 스님은 경문왕이 왕이 된 내력을 말한 뒤, 뱀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대밭 이야기·화랑들의 모의를 배치하여 경문왕과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한신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간 뒤 ‘겁쟁이’란 소리를 듣는 장면을 둔 뒤 나중에 겁쟁이란 소문 때문에 크게 두 번 이기는 것을 배치한 사마천의 글쓰기 방식이다.
배제: 스님은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이야기를 알고 모았겠지만, 스님의 역사를 보는 눈에 따라 배제되고 선택되었다. 진흥왕을 소개하면서 그가 영토를 넓힌 게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 무제 시대가 얼마나 폭압적인가를 말하기 위해 [순리열전循吏列傳]에 한무제 시대 관리를 한 명도 넣지 않고 [혹리열전酷吏列傳]에 무제 때의 관리를 10명이나 넣은 것과 같은 방식이다.(49쪽)
문학적 상징: “경덕왕의 음경이 여덟 치였다”는 소리가 의미하는 것(39~40쪽), ‘문무왕 법민’ 조목을 “왕이 즉위한 첫해에 사비성 남쪽 바다에서 여인의 시체가 나왔는데 키자 73자에다 발이 6자 음부의 길이가 3자나 되었다”로 시작하는 것(258쪽), 모량부 상공의 딸이 북만한 똥을 눈 것(175쪽)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집중, 배제, 배치, 문학적 상징을 통하여, 일연은 신라 각 왕조마다의 시대상황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한국 고대사의 신화와 설화를 단순히 모아놓은 이야기 모음집으로만 《삼국유사》를 이해하고 말아버리면, 신라 왕조사를 텍스트로 하여 일연이 궁구했던 ‘역사의 뜻’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2. ‘역사는 무엇인가?’는 일연의 화두였고,
《삼국유사》는 그 오도송悟道頌이었다
《삼국유사》 연구에 필생을 건 고운기 교수에 따르면, 일연의 바랑 속에는 《삼국유사기》의 원자료 중 일부가 적어도 40년 동안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못 잡아도 40년은 묻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화두 모음집들에도 들어있지 않은 화두를 들게 했을까? 나라가 절망적인데도, 한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볼 책이 없다는 서글픔 때문이었으리라. 《삼국사기》가 있었지만, 거기서 우리의 얼굴을 보기엔 미심쩍었다. 그래서 일연은 역사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흥망성쇠를 다 겪은 삼국시대를 살펴, 한 나라의 역사 전체를 다 드러나게 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역사가 되어가는 꼴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갈무리하여 알려주었다.
“이 지옥을 벗어나는 길, 혼자가 아니라 지옥을 살고 있는 이 땅 모든 사람들과 함께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12쪽) 이 처절한 물음이 돋아나와 일연은 역사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 “역사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지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짐승으로 있겠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역사의 눈이 없으면, 설사 잠시 잠깐 평온해진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지옥에 살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여기에는 들어있다.
3. 단군사화의 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일연이 붙잡은 ‘역사의 눈’이었다
《위서》에 쓰여 있다.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아사달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하였으니,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기(기원전 2333년)다.”
《고기》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색하며 알맞은 곳을 찾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는, 세 봉우리가 있는 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즉 널리 복을 끼치는 인간(세상)을 이루어낼 만한 곳이었다.” (본문 109쪽)
일연은 《삼국유사》의〈기이〉편 맨앞에 새긴 ‘고조선(왕검조선)’ 조목에 한민족의 시원을 당당히 밝혔다. 《위서》와 《고기》를 인용하여 한민족의 기원을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때라고 밝히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땅으로 세워졌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사화는 《삼국유사》의 머리에 놓여 있다. 단지 중국을 의식하고 이 이야기를 내세운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북극성이라 여겨 그리한 것이다. 그러니 일연에게 이 사화의 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이 눈으로, 그는 신라의 역사를 되잡아보았다.”(109쪽)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라 맨 처음 한 일은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늙은이와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구제하는 것이었다. 흉년이 들지 않았는데도 이런 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지금 말로 하면 왕이 복지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사실 재난이 아닌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구제 행위는 다른 왕에게는 찾을 수 없다. (……) 백성의 생업에서 시작해서 교육?문화?종교로 나아가는 왕의 마음씀,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이고 재세이화이다. 또한 맹자가 말했던 왕도정치의 고갱이이기도 하다.”(236쪽).
4. 현대사 100년은 《삼국유사》를 썼던 시대를 똑 닮았다.
이것이 우리가 《삼국유사》를 꼼꼼히 다시 읽어야 할 까닭이다.
일연(1206~1289)은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22세 때 승과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선승으로 수행하며 선사, 대선사를 거쳐 국존에 이르렀다. 일연이 살다 간 13세기는 참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1170년 무신정변으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한 뒤 고려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가 태어나던 해에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된 몽골은 이후 1231년부터 모두 7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고, 고려는 몽골의 일본 정벌을 위한 연합군으로 참여해 피를 흘려야 했다. 일연은 바로 이 내우외란內憂外亂의 힘겨운 시대를 사는 민중들에게 역사의 뜻을 밝히고 그 뜻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 결실이 바로 《삼국유사》이다.
“그런데 현대 100년이 일연이 살았던 시대를 똑 닮았다. 남의 나라 전쟁터가 되어 주었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나라를 빼앗긴 채, 사는 게 자기 배반이었던 41년 동안의 일제강점기. 허리를 잘라서 채운 탐욕의 증거물인 분단. 동생이 형에게, 오빠가 누이에게 짐승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내란과 전쟁. 40년이 넘는 숙청?쿠데타?독재. 그리고 한 쪽에선 굶겨 죽인 사람들에게 대대로 충성을 외며 아직도 왕조시대를 못 벗어난 채 간신이니 충신이니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밥줄이 끊길까봐 벌벌 떨며 노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코를 박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더 쓸개를 빼놓고 살고 있는 이 시대. 그런데도 그 내란과 전쟁을 통해 챙기는 잇속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현실. 일연의 시대보다 더한 지옥이 아닐까?”(13쪽)
5. [기이]편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해석한 신라의 흥망사
《삼국유사》는 모두 5권 9편, 139개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1권과 2권의 〈기이紀異〉편을 중심으로 하되 3권 [흥법興法]편에서도 신라왕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함께 다뤘다. 〈기이〉편이 신라 중심이기도 하지만, 일연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마음에 두고 〈기이〉편을 새겼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책은 신라 시대 전체를 사계절의 흐름으로 구성하였다. 즉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태어남·부딪치며 자람·무르익음·무너짐이라는 의미로 나누고 재구성하였다.
봄은 우리나라의 원천인 단군사화를 먼저 다룬 뒤, 신라 시조 박혁거세부터 김씨 시조 김알지까지를 주로 하되 그 뒷부분도 곁들여 다뤘고, 여름은 17대 내물왕부터 24대 진흥왕까지, 가을은 25대 진평왕부터 33대 성덕왕까지, 겨울은 35대 경덕왕부터 신라의 마지막까지 다뤘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 100년이 신라의 겨울과 닮았다는 생각에, 책은 겨울부터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세종, 선조, 정조 등 왕 이름을 떠올리면 당대의 위정자들과 시대 분위기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신라 시대는 왕의 이름만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나 주요 사건들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이 바로 신라 왕조사를 더 친근하게 접근하게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양호
196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 들어가 3년 동안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배웠다. 이후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를 10여 년간 가르치다 독일로 건너가 만하임에 있는 발도로프 사범대학을 졸업하였다. 2007년 귀국하여 중고등 고전대안학교 ‘다산서원’을 설립하여 동서양 고전을 강의하였다. 그 밖에 EBS라디오 [순수의 시대]에서 신화와 민담 해설을 하였다. 현재는 다산독서클럽을 운영하며 통념을 뛰어넘는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이끄는 글
역사의 뜻을 밝힌 일연과의 만남
겨울
왕의 음경이 커 하늘이 허리춤에 걸려 있다
충담사와 경덕왕 사이에 놓인 줄, 나는 충담이다 / 충담을 이루어낸 존재
경덕왕의 욕망을 채워준 표훈 / 경덕왕이 뿌린 씨앗이 거둬진 그의 아들 혜공왕 때
그 인간 이후로 신라에 성인이 나지 못했는데, 대덕이라니!
번지르르한 헛말은 《삼국유사》에 새기지 않는다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을 다 죽여 엉뚱한 말을 퍼뜨려도, 역사는 끝내 바른 소리를 한다
어진 사람을 보자 눈물이 나는 헌안왕 / 헌안왕이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
뱀이 없으면 잘 수 없었던 경문왕의 귀는 당나귀 귀였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경문왕의 행적
언 손으로라도 화살을 쏘아야지 그저 헛헛해하고 있나
나라가 망할 징조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 / 처용가에 나타난, 사람들의 사는 꼴
이제는 산 사람의 간을 빼 먹는구나 / 화살을 쏘아라
봄날
이 샘물을 마신 이가 단군의 후손이다
지금껏 먹던 것을 바꾸어라 / 또 다른 바람 / 조선이 세워진 뜻 / 이 땅의 사람이 되는 길
서라벌에서 짐을 풀며 새 꿈을 꾸다
윗사람인 우리의 잘못이다 / 빛의 아이로 다시 태어난 단군 / 새로운 깨달음에 따른 삶
쇳소리가 나자 말의 뜻이 뒤집혔다
탈해, 그는 누구인가? / 이가 엉겨 붙어 하나가 되어버린 까닭
전쟁의 때는 500년도 넘은 탈해왕의 뼈를 궁중에 모신 시기다
전쟁이 뒤집어놓는 것 / 황금시대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에만 남아 있네
여름
울음소리를 들어라
신라 역사에서 처음 터진 쿠데타와 박제상 / 왕권 다툼에 죽어나는 건 충신
역사가가 들어야 할 것
핏자국은 오래 간다
거문고 집에서 승려와 놀아난 궁주 / 자신감에 찬 비처왕의 죽음
음경이 큰 지증왕이 짝을 찾아 나서다 / 불교를 중심에 놓고 연합한 지증왕계와 박씨 집안
죽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와 자식을 만든 진지왕 / 미루어진 복수심
전쟁을 잘해 땅을 넓힌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진흥왕 조목에 영토 개척을 새기지 않은 일연 스님 / 진흥왕은 참회한 아소카 왕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솟은 것은 붉은 피도 흰 피도 아니었다
죄 됨을 없애야 한다는 소리는 정치·경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법흥왕의 행적 / 법흥왕의 젖줄
가을
맞섬을 넘어 하나 되는 차원으로 올라간 시대
불교적 관점에서 전통적 신앙을 통합한 진평왕 / 도깨비를 낳은 진지왕
사라진 도깨비 / 제석천을 모신 선덕여왕 / 맹자의 왕도정치를 따라갔던 선덕여왕
당나라에 기울어진 진덕여왕 / 진덕여왕 때 실질적인 왕이었던 김춘추
운명을 감당하느라 지은 업보도 자기 몫임을 깨달은 문무왕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은 당태종의 작품이다
문무왕, 스스로 짐승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 까닭
문무왕은 죽어, 서해가 아니라 동해의 용이 되어야 했다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이 나타나다
붙잡혀간 국선을 팽개치고 온 화랑도 / 자신과 선왕들이 남긴 발자취를 쳐다본 신문왕
소리와 화합으로 펼치는 세계 평화의 정치 / 또 다른 만파식적이 만들어진 성덕왕 때의 정치
신라인이 길러낸 사람 / 단군의 이상이 실현되는 나라
후주
참고문헌
1.『삼국유사』는 단순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다.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버리고’ 또 ‘배치해’ 이룬 한 권의 역사책이다.
《삼국유사》의 글쓰기는 요즘의 역사책 쓰기와는 많이 다르다. 일연은 물리적인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실증적이고 물리적인 사실을 최소로 하고, 그것도 이야기와 일화 속에서 드러내려 애쓴다. 《삼국유사》 글쓰기를 한 마디로 줄이면 ‘집중’, ‘배제’, ‘배치’ 그리고 ‘문학적인 상징’이다. 요즘 역사책엔 낯선 방식이지만, 사마천의 《사기》 특히〈열전〉에서 빛을 발한 글쓰기이다.
집중: 신라 최전성기를 이끈 성덕왕을, 흉년과 구제에 집중해서 보여주었고, 또한 ‘아름다운 사람’ 즉 수로부인을 배치해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 사마천이 [한나라 무제 본기]를, 귀신·무의巫醫·방사方士에 빠져 제사 지내고, 죽지 않으려고 신선神仙을 찾아다닌 것으로만 채운 것과 같은 방식이다.(48쪽)
배치: 스님은 경문왕이 왕이 된 내력을 말한 뒤, 뱀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대밭 이야기·화랑들의 모의를 배치하여 경문왕과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한신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간 뒤 ‘겁쟁이’란 소리를 듣는 장면을 둔 뒤 나중에 겁쟁이란 소문 때문에 크게 두 번 이기는 것을 배치한 사마천의 글쓰기 방식이다.
배제: 스님은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이야기를 알고 모았겠지만, 스님의 역사를 보는 눈에 따라 배제되고 선택되었다. 진흥왕을 소개하면서 그가 영토를 넓힌 게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 무제 시대가 얼마나 폭압적인가를 말하기 위해 [순리열전循吏列傳]에 한무제 시대 관리를 한 명도 넣지 않고 [혹리열전酷吏列傳]에 무제 때의 관리를 10명이나 넣은 것과 같은 방식이다.(49쪽)
문학적 상징: “경덕왕의 음경이 여덟 치였다”는 소리가 의미하는 것(39~40쪽), ‘문무왕 법민’ 조목을 “왕이 즉위한 첫해에 사비성 남쪽 바다에서 여인의 시체가 나왔는데 키자 73자에다 발이 6자 음부의 길이가 3자나 되었다”로 시작하는 것(258쪽), 모량부 상공의 딸이 북만한 똥을 눈 것(175쪽)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집중, 배제, 배치, 문학적 상징을 통하여, 일연은 신라 각 왕조마다의 시대상황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한국 고대사의 신화와 설화를 단순히 모아놓은 이야기 모음집으로만 《삼국유사》를 이해하고 말아버리면, 신라 왕조사를 텍스트로 하여 일연이 궁구했던 ‘역사의 뜻’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2. ‘역사는 무엇인가?’는 일연의 화두였고,
《삼국유사》는 그 오도송悟道頌이었다
《삼국유사》 연구에 필생을 건 고운기 교수에 따르면, 일연의 바랑 속에는 《삼국유사기》의 원자료 중 일부가 적어도 40년 동안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못 잡아도 40년은 묻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화두 모음집들에도 들어있지 않은 화두를 들게 했을까? 나라가 절망적인데도, 한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볼 책이 없다는 서글픔 때문이었으리라. 《삼국사기》가 있었지만, 거기서 우리의 얼굴을 보기엔 미심쩍었다. 그래서 일연은 역사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흥망성쇠를 다 겪은 삼국시대를 살펴, 한 나라의 역사 전체를 다 드러나게 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역사가 되어가는 꼴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갈무리하여 알려주었다.
“이 지옥을 벗어나는 길, 혼자가 아니라 지옥을 살고 있는 이 땅 모든 사람들과 함께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12쪽) 이 처절한 물음이 돋아나와 일연은 역사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 “역사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지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짐승으로 있겠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역사의 눈이 없으면, 설사 잠시 잠깐 평온해진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지옥에 살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여기에는 들어있다.
3. 단군사화의 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일연이 붙잡은 ‘역사의 눈’이었다
《위서》에 쓰여 있다.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아사달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하였으니,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기(기원전 2333년)다.”
《고기》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색하며 알맞은 곳을 찾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는, 세 봉우리가 있는 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즉 널리 복을 끼치는 인간(세상)을 이루어낼 만한 곳이었다.” (본문 109쪽)
일연은 《삼국유사》의〈기이〉편 맨앞에 새긴 ‘고조선(왕검조선)’ 조목에 한민족의 시원을 당당히 밝혔다. 《위서》와 《고기》를 인용하여 한민족의 기원을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때라고 밝히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땅으로 세워졌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사화는 《삼국유사》의 머리에 놓여 있다. 단지 중국을 의식하고 이 이야기를 내세운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북극성이라 여겨 그리한 것이다. 그러니 일연에게 이 사화의 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이 눈으로, 그는 신라의 역사를 되잡아보았다.”(109쪽)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라 맨 처음 한 일은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늙은이와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구제하는 것이었다. 흉년이 들지 않았는데도 이런 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지금 말로 하면 왕이 복지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사실 재난이 아닌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구제 행위는 다른 왕에게는 찾을 수 없다. (……) 백성의 생업에서 시작해서 교육?문화?종교로 나아가는 왕의 마음씀,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이고 재세이화이다. 또한 맹자가 말했던 왕도정치의 고갱이이기도 하다.”(236쪽).
4. 현대사 100년은 《삼국유사》를 썼던 시대를 똑 닮았다.
이것이 우리가 《삼국유사》를 꼼꼼히 다시 읽어야 할 까닭이다.
일연(1206~1289)은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22세 때 승과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선승으로 수행하며 선사, 대선사를 거쳐 국존에 이르렀다. 일연이 살다 간 13세기는 참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1170년 무신정변으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한 뒤 고려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가 태어나던 해에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된 몽골은 이후 1231년부터 모두 7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고, 고려는 몽골의 일본 정벌을 위한 연합군으로 참여해 피를 흘려야 했다. 일연은 바로 이 내우외란內憂外亂의 힘겨운 시대를 사는 민중들에게 역사의 뜻을 밝히고 그 뜻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 결실이 바로 《삼국유사》이다.
“그런데 현대 100년이 일연이 살았던 시대를 똑 닮았다. 남의 나라 전쟁터가 되어 주었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나라를 빼앗긴 채, 사는 게 자기 배반이었던 41년 동안의 일제강점기. 허리를 잘라서 채운 탐욕의 증거물인 분단. 동생이 형에게, 오빠가 누이에게 짐승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내란과 전쟁. 40년이 넘는 숙청?쿠데타?독재. 그리고 한 쪽에선 굶겨 죽인 사람들에게 대대로 충성을 외며 아직도 왕조시대를 못 벗어난 채 간신이니 충신이니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밥줄이 끊길까봐 벌벌 떨며 노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코를 박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더 쓸개를 빼놓고 살고 있는 이 시대. 그런데도 그 내란과 전쟁을 통해 챙기는 잇속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현실. 일연의 시대보다 더한 지옥이 아닐까?”(13쪽)
5. [기이]편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해석한 신라의 흥망사
《삼국유사》는 모두 5권 9편, 139개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1권과 2권의 〈기이紀異〉편을 중심으로 하되 3권 [흥법興法]편에서도 신라왕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함께 다뤘다. 〈기이〉편이 신라 중심이기도 하지만, 일연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마음에 두고 〈기이〉편을 새겼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책은 신라 시대 전체를 사계절의 흐름으로 구성하였다. 즉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태어남·부딪치며 자람·무르익음·무너짐이라는 의미로 나누고 재구성하였다.
봄은 우리나라의 원천인 단군사화를 먼저 다룬 뒤, 신라 시조 박혁거세부터 김씨 시조 김알지까지를 주로 하되 그 뒷부분도 곁들여 다뤘고, 여름은 17대 내물왕부터 24대 진흥왕까지, 가을은 25대 진평왕부터 33대 성덕왕까지, 겨울은 35대 경덕왕부터 신라의 마지막까지 다뤘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 100년이 신라의 겨울과 닮았다는 생각에, 책은 겨울부터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세종, 선조, 정조 등 왕 이름을 떠올리면 당대의 위정자들과 시대 분위기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신라 시대는 왕의 이름만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나 주요 사건들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이 바로 신라 왕조사를 더 친근하게 접근하게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양호
196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 들어가 3년 동안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배웠다. 이후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를 10여 년간 가르치다 독일로 건너가 만하임에 있는 발도로프 사범대학을 졸업하였다. 2007년 귀국하여 중고등 고전대안학교 ‘다산서원’을 설립하여 동서양 고전을 강의하였다. 그 밖에 EBS라디오 [순수의 시대]에서 신화와 민담 해설을 하였다. 현재는 다산독서클럽을 운영하며 통념을 뛰어넘는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이끄는 글
역사의 뜻을 밝힌 일연과의 만남
겨울
왕의 음경이 커 하늘이 허리춤에 걸려 있다
충담사와 경덕왕 사이에 놓인 줄, 나는 충담이다 / 충담을 이루어낸 존재
경덕왕의 욕망을 채워준 표훈 / 경덕왕이 뿌린 씨앗이 거둬진 그의 아들 혜공왕 때
그 인간 이후로 신라에 성인이 나지 못했는데, 대덕이라니!
번지르르한 헛말은 《삼국유사》에 새기지 않는다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을 다 죽여 엉뚱한 말을 퍼뜨려도, 역사는 끝내 바른 소리를 한다
어진 사람을 보자 눈물이 나는 헌안왕 / 헌안왕이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
뱀이 없으면 잘 수 없었던 경문왕의 귀는 당나귀 귀였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경문왕의 행적
언 손으로라도 화살을 쏘아야지 그저 헛헛해하고 있나
나라가 망할 징조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 / 처용가에 나타난, 사람들의 사는 꼴
이제는 산 사람의 간을 빼 먹는구나 / 화살을 쏘아라
봄날
이 샘물을 마신 이가 단군의 후손이다
지금껏 먹던 것을 바꾸어라 / 또 다른 바람 / 조선이 세워진 뜻 / 이 땅의 사람이 되는 길
서라벌에서 짐을 풀며 새 꿈을 꾸다
윗사람인 우리의 잘못이다 / 빛의 아이로 다시 태어난 단군 / 새로운 깨달음에 따른 삶
쇳소리가 나자 말의 뜻이 뒤집혔다
탈해, 그는 누구인가? / 이가 엉겨 붙어 하나가 되어버린 까닭
전쟁의 때는 500년도 넘은 탈해왕의 뼈를 궁중에 모신 시기다
전쟁이 뒤집어놓는 것 / 황금시대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에만 남아 있네
여름
울음소리를 들어라
신라 역사에서 처음 터진 쿠데타와 박제상 / 왕권 다툼에 죽어나는 건 충신
역사가가 들어야 할 것
핏자국은 오래 간다
거문고 집에서 승려와 놀아난 궁주 / 자신감에 찬 비처왕의 죽음
음경이 큰 지증왕이 짝을 찾아 나서다 / 불교를 중심에 놓고 연합한 지증왕계와 박씨 집안
죽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와 자식을 만든 진지왕 / 미루어진 복수심
전쟁을 잘해 땅을 넓힌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진흥왕 조목에 영토 개척을 새기지 않은 일연 스님 / 진흥왕은 참회한 아소카 왕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솟은 것은 붉은 피도 흰 피도 아니었다
죄 됨을 없애야 한다는 소리는 정치·경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법흥왕의 행적 / 법흥왕의 젖줄
가을
맞섬을 넘어 하나 되는 차원으로 올라간 시대
불교적 관점에서 전통적 신앙을 통합한 진평왕 / 도깨비를 낳은 진지왕
사라진 도깨비 / 제석천을 모신 선덕여왕 / 맹자의 왕도정치를 따라갔던 선덕여왕
당나라에 기울어진 진덕여왕 / 진덕여왕 때 실질적인 왕이었던 김춘추
운명을 감당하느라 지은 업보도 자기 몫임을 깨달은 문무왕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은 당태종의 작품이다
문무왕, 스스로 짐승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 까닭
문무왕은 죽어, 서해가 아니라 동해의 용이 되어야 했다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이 나타나다
붙잡혀간 국선을 팽개치고 온 화랑도 / 자신과 선왕들이 남긴 발자취를 쳐다본 신문왕
소리와 화합으로 펼치는 세계 평화의 정치 / 또 다른 만파식적이 만들어진 성덕왕 때의 정치
신라인이 길러낸 사람 / 단군의 이상이 실현되는 나라
후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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