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빙실자유서 - 중국 근대사상의 별 량치차오 망명지 일본에서 동서 사상의 가교를 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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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량치차오
출판사항푸른역사, 발행일:2020/01/23
형태사항p.467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612160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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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필독서 《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
1907년의 최초 번역 이후 다시 번역되다!

20세기 초 ‘언론계의 총아’,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린 량치차오梁啓超,
문명 구상에서 일상의 단상까지, 중국의 고전과 불경에서 서양 사상가까지
 종횡무진 빠른 행마로 동서고금을 논한다!

청년 량치차오의 일본 망명
1898년 9월 21일 스물여섯 살 청년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백일유신’이라 불리는 변법운동이 서태후 일파의 정변으로 실패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 캉유웨이康有爲와 더불어 ‘강·양康梁’이라 불리며 변법자강을 주도했었다.
량치차오는 이날의 도피가 무려 15년에 걸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실의에 젖어 떠난 망명길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근대 서양 사상을 수입하는 창구였고, 수입한 사상을 자양분 삼아 근대 국민국가 건설에 매진하고 있었다. 량치차오는 일본에 물밀듯 들어온 서양 사상을 탐욕스럽게 섭취했고, 일신日新하는 일본의 면모를 속속들이 관찰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종횡으로 달리는 수십 편의 주옥같은 글을 썼다. 그 글들은 1903년 이후 중국은 물론 일본과 한국에서 《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이하 ‘자유서’)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발간되며 동아시아 사상계를 흔들었다.

‘량치차오 시대’
량치차오는 여섯 살에 오경五經을 완독하고, 열두 살에 수재가 되고, 열일곱에 거인擧人이 된 천재였다. 구학문의 천재였던 량치차오는 1890년 회시會試에 낙방했다. 낙담한 그가 새롭게 성장한 계기는 스승 캉유웨이와의 만남이었다. 신학문에 눈을 뜬 그는 1895년에 캉유웨이를 도와 《만국공보萬國公報》를 창간하고 본격적인 변법운동에 들어선다. 1898년에는 캉유웨이와 함께 이른바 ‘백일유신’을 시작했다. 그러나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그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서양 사상을 직접 접하며 쓴 글들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날로 명망이 커졌다.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량치차오는 1912년에 귀국했다. 여러 관직을 거치며 정치일선에서 활동하면서, 위안스카이 등이 주도한 복벽주의에 반대했다. 1919년부터는 정계에서 은퇴하고 강연과 저술에 몰두하다 사망했다.
량치차오가 1895년 《만국공보》를 창간한 뒤 1929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35년 동안을 중국 100년 언론사에서는 ‘량치차오 시대’라고 부른다. 그의 막대한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영예로운 호칭이다.

중국 언론계의 총아가 구상한 근대 문명과 동학東學
 《자유서》는 구학문에 대한 탄탄한 기반을 지닌 량치차오가 망명지 일본에서 신학문을 왕성하게 섭취하며 동서 사상의 가교를 구상한 책이다. 중국 내외에서 ‘언론계의 총아’로 불렸던 그의 명성에 걸맞게, 문명 구상에서 일상의 단상까지, 중국의 고전과 불경에서 몽테스키외·홉스·스피노자·루소·다윈·스펜서 등 서양 사상가까지 다양한 주제를 빠른 행마로 종횡했다. 제목처럼 ‘자유’롭고 분방하다.
《자유서》란 이름이 그 때문에 붙은 것은 아니다. 제목은 존 스튜어트 밀의 저술에서 따왔다. 량치차오는 〈서언〉 말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인간사회의 진화에서는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이 3대 자유는 모두 나에게 갖춰져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자유서’라는 책 제목을 거기서 따왔음을 밝히고 있다.
《자유서》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은 근대 문명과 국가 개혁에 관한 것이다. 문명, 자유와 민주, 국권과 민권, 국민, 법과 법제, 여론과 신문, 개혁을 향한 의지, 개혁에 필요한 자세, 개혁의 방법과 이론 등이 그것이다. 또 영웅호걸과 위인, 부국강병, 군대, 무사도와 상무정신 등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 글들을 통해 서양과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장점을 직접 접하고 중국 또한 근대 국민국가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는 량치차오의 기대를 읽을 수 있다.
한편 량치차오는, 일반적으로 근대 중국 지식체계의 전환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자유서》는 그렇다면 지식체계의 전환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두 가지로 평가할 수 있다. 하나는 서양 개념의 소개다. 문명과 야만, 자유와 민주, 국권과 민권, 국가와 국민, 군대, 법, 신문, 여론 등 근대 문명에 관한 기본 개념들이 소개되고 있다. 서양 서적의 번역과 개념의 수입에는 당시 다른 학자들도 물론 기여했지만, 량치차오만큼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풍조를 연 인물은 드물었다. 둘째, 개념과 사상의 수입이 량치차오의 선택과 해석을 거쳤다는 점이다. 량치차오의 망명지에서의 단상을 통해 우리는, 무술정변 이후 새 학문에 대한 중국 지식인의 갈망과 서학을 소화시켜 중국인의 ‘동학東學’으로 만들려는 고민과 흔적을 풍부히 살필 수 있다.

한국에서 《자유서》의 소개
 량치차오의 저술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다. 소개된 저술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었다. 하나는 량치차오의 역사 단행본 작품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현채 역, 1906),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신채호 역, 1907)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문집과 소품류다. 《황성신문》 1906년 11월에 《음빙실문집》과 《자유서》가 나란히 소개되었고, 이어 《중국혼中國魂》(장지연 역, 1908) 등이 소개되었다. 말하자면 《자유서》는 1906년 말에 문집과 함께, 상당히 높은 지명도를 가지며 소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에는 1907년까지 《자유서》에 속한 소품들이 《대한자강회월보》, 《태극학보》, 《서우》 등의 학회지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자유서》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자 1908년 두 권의 책이 본격적으로 출판되었다. 하나는 ‘탑인사본 《자유서》’(현공렴 발간, 1908)이고 다른 하나는 ‘언해본 《자유서》’(전항기 역, 1908)다. 전자는 중국본을 영인한 것으로 총 66편이 수록되었고, 후자는 65편을 언해하여 수록했다. 언해본의 등장은 량치차오가 가졌던 대중적인 인기를 잘 보여준다.

신지식인의 환영과 구학문의 반발
 한국의 근대 지식인 사이에서도 량치차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먼저 소개된 역사·전기류는 변법과 애국, 자강을 지향하는 많은 지식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후 소개된 량치차오의 문집과 《자유서》 등의 소품은 서양 사상의 핵심 개념의 이해와 국가 개혁의 방향과 관련해서 많이 읽혔다. 그리고 대중화될수록 찬반양론이 있었다.
안창호가 평양에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음빙실문집》을 한문 교과서로 사용한 일은 유명하다. 안창호와 같은 계열에 있던 신지식인들은 ‘(상류 사람들의) 심성 개량의 속성과速成科’로 소개하고 있다.
《자유서》에 실린 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지식인은 박은식과 장지연이었다. 박은식은 자신이 주필로 있던 학회지 《서우》(1906.12.~1907.12.)에 연달아 소개했다. 장지연 또한 《대한자강회월보》와 《조양보》에 소개했다.
구학을 지지하는 유학자들의 반대는 격심했다. 대한제국기의 큰 유학자였던 전우, 곽종석, 유인석 등이 모두 량치차오를 비판했다. 그들은 량치차오를 불교와 기독교를 섞어 쓴 이단이고, 왕도와 패도를 혼용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유인석은 《자유서》에 대해 “한 고조, 명 태조를 큰 도적이라 비난하고, 예악을 강압적인 제도라고 비판하는 등 고금에 들어보지 못한 괴이하고 패륜한 책자이므로 다시는 읽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110년 만의 완역과 정본화
《자유서》는 1903년 상하이 광지서국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1936년에 발간된 《음빙실합집》 2책에 몇몇 편이 추가되어 발간되었다. 일본에서는 1904년에 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1908년에 언해본이 발간되었다.
이번의 번역은 1903년에 발간된 광지서국본을 기본으로 하여 다섯 종류의 판본을 모두 비교하고 보충해 완역하고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번역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담당했다. 한림과학원은 2007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인문한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림과학원의 아젠다는 ‘동아시아 기본개념의 상호소통 사업’으로, 학계에서는 이른바 ‘동아시아 개념사 연구’로 통하는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번역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인력은 모두 13명이다. 작업 기간은 중국사상 전공자인 강중기·양일모 교수를 중심으로 중국사·중국문학, 한국사·한국철학 전공자가 참여했다. 한문 전공자가 주축이지만 일본근대사상, 서양사, 국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한 것도 이채롭다. 작업 기간은 총 6년이 소요되었다. 초벌 번역과 재벌 번역에만 4년이 걸렸고, 2년간 강중기·양일모 교수가 꼼꼼하게 교정했다. 판본 비교 및 꼼꼼한 주석도 주목되고, 량치차오 사상을 소개한 해제와 한국 수입을 소개한 해제 2편도 눈에 띈다.
번역자들은 “량치차오가 서양의 원저를 자기 방식대로 소개하다 보니 어디서부터가 원전이고 어디서부터가 량치차오의 서술인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백화문과 고전한문이 뒤섞이고 중국 고전을 마음대로 활용해 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원사료를 복원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량치차오의 저술이, 한국에서 끼친 영향력에 비해, 번역이 턱없이 빈약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량치차오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면서 끊임없이 시대를 이끌어간 대표적 지식인이다. 신문·잡지 및 교육을 기반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을 도모하고,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선전함으로써 폐쇄된 근대 중국에 새로운 개혁의 기풍을 일으켰다. 특히 탁월한 계몽주의 사상가,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 문학가로서 중국 문화사文化史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자字는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으로 음빙실주인飮氷室主人·음빙자飮氷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 등 여럿을 사용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대항의 최전방 지역이던 광둥 성廣東省 신후이新會 사람으로, 반경반독半耕半讀의 향신鄕紳인 아버지 량바오잉梁寶瑛과 어머니 조씨趙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치同治 12년(1873), 즉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 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지 10년 뒤, 서구 충격이 중국을 향해 거세게 가해지던 시기다. 여섯 살에 오경五經을 완독하고, 열두 살에 수재가 되었으며, 열일곱에 거인擧人이 된 천재였다. 하지만 1890년 회시會試에 낙방하면서 실의에 빠진 그가 새롭게 성장한 계기는 스승 캉유웨이康有爲와의 만남이었다. 신학문에 눈뜬 그는 1895년 당대 뛰어난 대학자 캉유웨이를 도와 《만국공보萬國公報》를 창간하고 본격적인 변법운동에 들어선다. 1898년 캉유웨이와 함께 이른바 ‘백일유신’을 시작했으나,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서양 사상을 접하며 쓴 글들을 자신이 직접 창간한 여러 잡지에 연재하면서 그의 명망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널리 전파되었다. 특히 《청의보淸議報》에 실린 글들은 뒷날 《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 편찬으로 이어졌다. 중국 내외에서 ‘언론계의 총아’,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린 그의 명성에 걸맞게, 《음빙실자유서》는 구학문에 대한 탄탄한 기반을 지닌 량치차오가 망명지 일본에서 신학문을 왕성하게 섭취하며 동서 사상의 가교를 구상한 책이다.
신해혁명 다음 해인 1912년에야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정부에서 사법총장司法總長, 폐제국총재幣制局總裁, 재정총장財政總長 등 각종 직책을 맡아 정치 활동을 했고, 말년에는 중국의 역사와 학술을 중심으로 한 연구 활동에 주력했다.

그 밖의 주요 저술로는 《소년중국설少年中國說》, 《중국역사연구법》, 《선진정치사상사先秦政治思想史》, 《중국근삼백년학술사中國近三百年學術史》, 〈신민설新民說〉, 《리훙장전李鴻章傳》 등이 있으며, 량치차오가 생전에 편찬한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에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단편들이 더해져 《음빙실합집飮氷室合集》(중화서국, 1936)이 출판되었다.


옮긴이 : 서광덕
1965년 출생.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 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루쉰과 동아시아 근대>(2018),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2006) 등이 있고, 역서로는 <루쉰>(2003), <일본과 아시아>(공역, 2004), <중국의 충격>(공역, 2009), <수사라는 사상>(공역, 2013), <방법으로서의 중국>(공역, 2016) 등이 있으며, <루쉰전집>(20권) 번역에 참가했다. 현재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옮긴이 : 양일모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수료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동아시아사상문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조수와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한림과학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옌푸: 중국의 근대성과 서양 사상』 등이 있고, 역주서로 『천연론』(공동역주), 『정치학이란 무엇인가: 중국의 근대적 정치학의 탄생』이 있다. 번역서로는 『관념사란 무엇인가』 1, 2(공역), 『중국민족주의의 신화』, 『공통감각론』 등이 있다.


옮긴이 : 허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근현대사와 개념사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논저로는 『이돈화 연구』, 『식민지 조선, 오래된 미래』 등이 있다.


옮긴이 : 이경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등에 재직하면서 17~19세기의 정치.사상.지식인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썼다. 2018년 현재 한림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로서, 한림과학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는 《원문역주 각사수교各司受敎》(공역), 《조선후기 안동김문 연구》,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조선 후기 사상사의 미래를 위하여》, 《정조와 18세기》(공저),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강중기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은「양수명의 현대 신유학」이다. 중국 근현대철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근현대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구 근대 개념이 동아시아에 전래되어 복수 개념 사이의 투쟁을 거쳐 하나의 개념으로 정착하고 변용되고 유통되는 과정에 대하여 개념사의 방법을 빌려 천착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종교와 가족, 그리고 국가 등의 개념에 특별히 흥미를 갖고 있다. 저서로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황종희 <명이대방록>』, 『양수명 <동서 문화와 철학>』 등이 있고, 역서로 『동서 문화와 철학』, 『천연론』, 『관념사란 무엇인가』(Ⅰ·Ⅱ) 등이 있다.

 

옮긴이 : 박근갑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학제연구 학술지 『개념과 소통』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언어와 소통』(공저), 『개념사의 지평과 전망』(공저), 『복지국가 만들기』등의 책을 펴냈다.


옮긴이 : 송인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 사상계의 해빙 분위기에서 진행된 후스(胡適) 재평가, 1990년대 자유주의 논쟁, 2006년의 1980년대 붐을 접하면서 중국 현대 사상 연구에 입문했다 중국 현대 사상에 대한 비판적 독해, 중국 지식계와의 생산적 대화, 현재성을 가진 사상 담론 형성을 목표로 삼고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부터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연구부의 일원이 되어 현대 사상의 뿌리가 되는 근대의 정치, 사회, 문화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정보 기술과 인문학 연구를 접목한 디지털인문학 연구도 국내외 파트너와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박사 논문은 『1978년 이후 중국의 계몽, 민족국가, 문화 담론 연구: 간양과 왕후이의 비판 담론을 중심으로』다. 후속 연구로 문명, 천하, 유학, 전통 등 과거의 역사적 기억으로 중국의 비전을 모색하는 담론을 다룬 논문을 집필했다. 번역서로 최근 중국의 사상 동향을 보여 주는 『단기 20세기: 중국혁명의 논리』(왕후이 저, 가제, 근간), 『문명, 국가, 대학』(간양 저, 근간), 『권학편』(2017),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2016), 『절망에 반항하라: 왕후이의 루쉰 읽기』(2014), 『왕단의 중국현대사』(2013),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현대 지식인의 사상적 부활』(2013), 『아시아는 세계다』(2011) 등이 있다.


옮긴이 : 이행훈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최한기의 운화론적 세계관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조선후기 실학, 근대전환기 지식체계의 변동, 한국 근대 철학의 형성 과정 등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공저), <개념의 번역과 창조>(공저), <동서양 역사 속의 소통과 화해>(공저), <한국철학사>(공저), <한국실학사상사>(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최재영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옮긴이 : 이병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현재 한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주요 논저
『易言-19세기 중국, 개혁을 묻다』(공저, 2010)
「추사가 한글 편지의 국어학적 검토(2013)
「한국어 미래성 표현의 역사적 연구(2006)
「‘-겟-’의 문법화와 확정성」(2006)

 

옮긴이 : 노관범
서울대학교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시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우리나라 옛 책들을 처음 만난 후 그 매력에 빠져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어왔다.

지금까지 주로 우리나라 옛날 한적漢籍과 옛날 신문, 잡지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시대 전환기 우리나라 지성사.사상사.개념사 분야를 연구했다. 전통과 근대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지성사를 창조적으로 다시 사유하는 것을 필생의 화두로 삼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조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고전통변》(2014),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2013, 공저), 《두 시점의 개념사》(2013, 공저), 《19세기 인민의 탄생》(2015, 공저) 등이 있다. 〈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2013)로 제4회 모하실학논문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이예안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일의 근대사상 형성과 그 과정에서 일본어 번역 및 중역을 통한 서구 사상의 번역.수용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논저로 〈개화기의 루소 《사회계약론》 수용과 번역〉, 〈대한제국기 ‘유신維新’의 정치학〉, 〈나카에 조민의 《삼취인경륜문답》 다시 읽기〉, 《동아시아 개념연구 기초문헌해제》(공저), 《근대 번역과 동아시아》(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서병철
한림과학원 HK연구보조원(중국철학) 

 

목 차

옮긴이의 말
 일러두기

 서언 敘言
성공과 실패 成敗 [1]
비스마르크와 글래드스턴 俾士麥與格蘭斯頓
자유 조국의 선조 自由祖國之祖
세계 제일의 보수주의자 地球第一守舊黨
문명과 야만의 세 등급 文野三界之別
영웅과 시세 英雄與時勢
근인과 원인에 관하여 近因遠因之說
초야에서 올린 직언 草茅危言
양심 어록 養心語錄
이상과 기력 理想與氣力
자조론 自助論
위인 넬슨의 일화 偉人訥耳遜軼事
자유를 방기하는 죄 放棄自由之罪
국권과 민권 國權與民權
파괴주의 破壞主義
자신력 自信力
잘 변신한 호걸 善變之豪傑
카부르와 제갈공명 加布兒與諸葛孔明
강권을 논함 論强權
호걸의 공공정신 豪傑之公腦
탄쓰퉁이 남긴 글 譚瀏陽遺墨
정신교육은 자유교육이다 精神敎育者自由敎育也
전사를 기원함 祈戰死
중국혼은 어디에 있는가 中國魂安在乎
비난에 답함 答客難
우국과 애국 憂國與愛國
중국을 보전함 保全支那
문명을 전파하는 세 가지 이기 傳播文明三利器
꼭두각시를 말함 傀儡說
동물 이야기 動物談
유심 惟心
혜관 慧觀
이름 없는 영웅 無名之英雄
지사 잠언 志士箴言
세상에 대가 없는 것은 없다 天下無無價之物
혀 아래 영웅 없고 붓 끝에 기사 없다 舌下無英雄筆底無奇士
세계에서 가장 작은 민주국가 世界最小之民主國
유신 도설 維新圖說
러시아인의 자유사상 俄人之自由思想
20세기의 새로운 귀신 二十世紀之新鬼
백성의 윗사람 되기 어려움 難乎爲民上者
영감 煙士披里純(INSPIRATION)
무욕과 다욕 無欲與多欲
후회에 관하여 說悔
괴테의 격언 機埃的格言
부국강병 富國强兵
세계 밖의 세계 世界外之世界
여론의 어머니와 여론의 노예 輿論之母與輿論之僕
문명과 영웅의 비례 文明與英雄之比例
간섭과 방임 干涉與放任
결혼하지 않은 위인 不婚之偉人
신문을 좋아하는 국민 嗜報之國民
노예학 奴隸學
희망과 실망 希望與失望
국민의 자살 國民之自殺
성공과 실패 成敗 [2]
가토 박사의 《천칙 백화》 加藤博士天則百話
일본 헌법에 대한 스펜서의 비평 記斯賓塞論日本憲法語
중국의 사회주의 中國之社會主義
일본의 한 정당 영수의 말을 기록함 記日本一政黨領袖之言
월남 망명가의 말을 기록함 記越南亡人之言
장근과공 일화 張勤果公佚事
손문정공 식종지전 孫文正公飾終之典
수에즈 운하의 옛길 蘇彝士運河故道
민병과 용병의 득실 民兵與傭兵之得失
다스림의 도구와 다스림의 도리 治具與治道
학문과 관료의 길 學問與祿利之路
학문을 좋아하지 않음의 폐해 不悅學之弊
구차함을 경계함 警偸
설랑 스님의 어록 두 단락 雪浪和尙語錄二則
법은 반드시 행해지는 법이 되어야 한다 使法必行之法
다스림을 다스리지, 어지러움을 다스리지 않는다 治治非治亂
군주는 책임이 없다는 학설 君主無責任之學說
명령과 바람 所令與所好
수양을 좋아함 好修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뜻이 없는 것이다 怨天者無志
좋아하고 싫어함과 버리고 취함 欲惡取舍

원문
 량치차오 연보

 해제
 근대 동서사상의 가교, 《음빙실자유서》_강중기
《음빙실자유서》의 일독법―한국사상사에서 보는 량치차오_노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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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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