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철학에게 물었습니다
미자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는 문화센터에 나가 김용탁 선생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지만 시를 쓰지 못합니다. 노트를 들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시로 적어보지만 ‘꽃이 핀다, 바람이 분다’ 같이 끼적일 뿐 진짜 시를 쓰지 못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어둠과 더러움을 껴안아야 한다”는 감독의 말대로라면, 미자의 시가 시작되는 순간은 김회장에게 말을 전하기 위하여 ‘5백만 원만 주세요’라고 노트에 적을 때가 아닐까요. 알츠하이머, 조손가족, 파트타임 간병인 같은 현실을 부정하고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가려 할 때가 아니라, 그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손자 종욱이 죄를 저지른 현실을 껴안고서야 비로소 시가 탄생하니 말입니다.
이 책은 미자의 시처럼, 세상을 부정하거나 덧없이 극복하려 하거나, 혹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써 삶을 수긍하고 지탱한 한 철학자의 에세이입니다.
간략한 책 소개
너그러운 여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철학,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 《고마워요, 철학 부인》이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자기의 건축―철학을 이용하는 한 방법”이라는 원제처럼 이 책은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이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저자가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철학 에세이다. 1975년생으로 서른둘의 나이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삶과 맞닿은 깊은 철학적 성찰을 편지 형식으로 한껏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철학적 재미와 동시에 우리 역시 현실을 곰곰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5세기 로마 출신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 박학다식과 유능함으로 왕의 고문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능력을 질시한 이들에게 기회주의자로 몰려 반역죄의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감옥에서 그는 《철학의 위안》을 쓴다. 철학 부인이 그를 면회하러 찾아와 철학자들이 만든 치료제들을 그에게 상기시켜주고 철학 부인과 내면의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이와 비슷하게 편지의 형식에 자신의 철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편지의 수신자는 지은이가 너무나도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하는 철학 부인과 ‘성가신 애인들’, 그리고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이다. 즉 프랑스어에서 여성 명사인 철학(la philosophie), 공포(la frayeur), 죽음(la mort)을 의인화하여 그들에게, 또한 철학자 보에티우스,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에티 힐레숨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면의 감옥에 갇히고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졸리앙은 자신을 버티고 위로하고 용기를 얻기 위해 철학에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입니까”,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왜 안심을 추구할수록 결핍의 자리만 커지는 겁니까”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것은 삶에서 문득 누구에게나 던져지는, 혹은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질문들이기도 하다.
보에티우스 덕분에 자신에게 낙인찍힌 꼬리표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숨김없는 본래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음을, 에피쿠로스의 “인생은 그러한 ‘유보’ 때문에 점점 사라져간다”는 말로써 현재의 기쁨마저 의심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음을, 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로 숨진 유태인이면서도 “그래도 기뻐하며 살아갈 장소는 충분히 남아 있다”고 감내했던 에티 힐레숨에게서 인생은 극복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성찰 등이 담겨 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우리에게 극복하려 발버둥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얻은 한 인간의 소박하고 뜨거운 고백으로써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그를 구축한 철학자들을 통해 철학이 난해하고 근엄한 현학의 세계가 아니라 내 삶을 보듬는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 책은 졸리앙과 함께 떠나는 철학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여 지혜를 구하는 삶의 아름다움, 즉 철학과 철학하는 삶의 매력으로 인도하는 담백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해석하는 철학이 아닌, 겪어서 쓴 철학을 담은 열세 통의 편지
‘철학(哲學)’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을 볼 수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이 둘은 언뜻 비슷한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자신, 연구와 경험이라는 말의 간극만큼 서로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철학의 사조가 다양해지고 깊이가 더해질수록 점점 더 우리 개개인의 삶과 철학의 접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요즘에는 더더욱 철학이란 탁상공론, 철학자는 책상물림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철학은 다르다. 그는 “나에게 철학한다는 것은 나를 외면하기만 하는 세계 속에 나를 안표하고 하나의 목적을 나에게 부여할 기회”이자 “현실을 책임지고 ‘인간의 직무’를 즐겁게 완수할 기회”라고 말한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단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킨 깨달음으로서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열어 보여준다. 그는 독자들에게도 이 편지글을 따라 읽으며 바로 인간과 자신, 연구와 경험의 접점으로서 “갈망하는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경험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무게, 죄의식, 두려움, 일상의 속박들 때문에 자유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이러한 무능함 때문에 나는 철학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철학이 내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계속 자문하고 자세히 검토해보려는 것입니다. (8~9쪽)
내 생각으로는 철학자의 저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책을 펼칩니다. 그러면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내밀한 대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안내인들과 함께 밟아나가는 여정을 담은 이 편지글을 쓴 것입니다. (10쪽)
내 삶을 보듬은 철학의 위안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자신의 손이 되어줄 친구나 음성 도서관의 도움이 있어야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는 “탯줄에 목이 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태어나 특수학교 기숙사에서 십칠 년을 보냈고……” 따위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 질렸다고 말한다. 또 여전히 인터뷰 기사에서 친절하게도 “장애인 철학자”라고 소개되고,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서 단지 신체장애의 ‘증거’만을 찾아내고 기억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에서 졸리앙은 그런 자신에게 철학이란 과거를 완전히 잊고 ‘장애인’이라는 “그 가엾은 명사가 잊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불행을 덮어 가리는 유약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철학은 그에게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어떤 결함의 여파들과 맞서 싸우는 데” 유용한 무기였다. 하지만 그는 철학을 알아갈수록 철학이 그러한 유약이나 무기가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무대책한 긍정을 얻은 것도 아니다.
철학 부인은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나의 인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확신, 야망, 기대, 죄의식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 그러한 불만족 때문에 나는 더 많은 만용을 부리게 되고 도피하고 싶어 하며, 나의 역할들을 연기(演技)하게 됩니다. 이제 열등감을 비방하는 대신 상처 입어 흠집 난 사랑으로 자신을 구축해나가야 합니다. (철학 부인에게_40~41쪽)
나는 종종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하지만 당신은 온화하면서도 인내심 있게 나의 관점을 이렇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서 행복해질까? 이제 멀리 있는 행복을 좇으려는 욕망을 과감히 버리고, 행복이 주어지는 그곳에서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며 즐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패는 바로 선(善), 즉 행복에 다다르기는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에게_70쪽)
내가 미묘한 균형을 찾도록 이끌어준 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참을성 있는 포기가 항상 미덕과 결부되는 건 아니니까요. […] 물론 현실에 동의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동의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참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분명히 불행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면서 나약하고 무력한 태도로 안주하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에티 힐레숨에게_260~261쪽)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 현재에서 행복을 찾기,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길들이기, 죽음을 거부하는 대신 삶을 음미하기, 현실을 인정하기, 운명을 수용하기. ‘나’, 행복, 두려움, 죽음, 자유, 운명 같은 말들에 짓눌렸던 그가 철학에서 얻은 것은 이렇게 단순하고 명징하다.
알아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이 주는 울림이 큰 이유는 그가 말하는 메시지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쉼 없이 부딪치고, 넘어지고서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양한 철학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 여정인 동시에, 철학이 바꾼 한 인간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고백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생의 고비를 철학과 건너는 방법
졸리앙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고 달라진 자신을 고백한다. 그는 “세발자전거 탄 저 아저씨, 너무 웃긴다”는 시선에 곤란해하고, 딸 빅토린이 태어났을 때 아이가 정상인지 몹시 걱정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비교의 결과로 얻는 것은 소외감, 차이, 결핍뿐이었다. 그래서 비교를 떨쳐내려 애쓰지만 “완전과 불완전은 사유의 양태일 뿐”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듣는다. 결국 그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내린 결론은 비교 자체를 몰아내려는 강박 대신 존재를 완성해나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다른 편지들이 철학과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인 것과 달리 죽음에게 그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단호한 선언을 보낸다. 이전의 그는 죽음을 저주한다면서 죽음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말하는 하이데거, “죽는 것을 수련하는 것”에 전념한 플라톤의 말에 기대어 죽음 덕분에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상기하고 겸허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선택들이 내가 모르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분명 포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완전히 변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욕망들이 자유로운 기쁨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당신이 현실과 완벽함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당신의 《에티카》를 대충 부분적으로 읽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숙명론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잘못된 독서법으로 자기만족과 오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거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스피노자에게_212쪽)
나의 스승 중 한 분인 스피노자는 소박한 삶을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죽음보다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 스피노자는 내가 너를 생각할 때 나를 괴롭히는 현기증 나는 불안을 더 이상 피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는 인생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 네가 불어넣는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으로 즐겁게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 삶을 더 잘 향유한다.” 스피노자 덕분에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너에게 더 정당한 자리를 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죽음에게_181쪽)
이렇게 《고마워요, 철학 부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운 철학 여정과 한 인간의 뜨거운 고백, 그리고 바로 ‘철학하는 삶’의 태도이다. 즉 각자 자신 앞에 놓인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철학을 받아들여 자신의 태도로 세우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졸리앙이 갈구했던 진짜 나, 행복, 두려움, 죽음, 자유, 운명에 대한 태도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졸리앙이 내린 결론과 삶의 태도에 쉬 동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철학을 통해 자기만의 태도를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고비와 난관이 예측할 수도 없이 몰아닥치는 우리네 삶에서 그의 철학 사용법이 고스란히 담긴 《고마워요, 철학 부인》을 통해 독자들 역시 삶의 고비와 벽에 맞닥뜨렸을 때 철학으로써 삶을 지탱할 용기를 얻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퍼부어야 할 것 같은 증오를 거부합니다. 나치는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대량학살당할 아기들에게 기저귀를 채우라고 당신에게 명령합니다. 그때 당신은 삶이 너무도 비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임무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명론과에서 완전히 벗어나, 당신은 인간을 짐승으로 변모시키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맞서 여전히 위엄을 지킵니다. “나는 집단노동수용소에서 사흘도 못 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날마다 죽기 위해 잠자리에 들겠지. 그렇지만 나는 인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티 힐레숨에게_251쪽)
각 장 내용 소개
철학 부인에게
졸리앙은 첫 번째 편지인 철학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철학이 단지 자신에게 다양한 이론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겪고 악전고투하는 동안 의심하는 법, 때를 기다리는 법, 정념을 다스리는 법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내면의 성채를 건축하는 데 도움을 준 철학자와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누구입니까 _ 보에티우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B''
억울하게 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며 《철학의 위안》을 쓴 보에티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철학 부인 덕분에 주어진 배역이 아닌 진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음을 말한다. 또한 여죄수들을 만나면서 자신에게 낙인찍힌 꼬리표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철학으로 인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인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확신, 야망, 기대, 죄의식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_ 에피쿠로스에게 | 쇼펜하우어에게 | 철학 부인에게
“만약 ……한다면 행복할 텐데”라는 식으로 인생의 행복을 한정지었던 자신의 생각을 “하지만 인생은 그러한 ‘유보’ 때문에 점점 사라져간다”는 에피쿠로스의 말로 뒤집는다. 또한 결핍과 권태를 벗어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이 생의 의지를 욕망을 충족하는 데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성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데 써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로써 자신이 변화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 에라스무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저자는 에라스무스에게 공포 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더 이상 희망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여 두려움은 희망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삿된 희망으로 두려움을 키우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회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_ 죽음에게 | 철학 부인에게
죽음에게 쓴 편지의 요지는 한마디로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죽음이란 결국 우리 곁에서 기다리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벽시계를 바라보면서 재깍재깍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졸리앙은 죽음의 도래를 대비하고 회피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이 결국 두려움, 죽음을 물리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난 게 아니라 의지로 자유로워집니다 _ 스피노자에게 | 철학 부인에게''/B''
타인과의 비교, 과거-미래와의 비교를 통해 안심을 추구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외감, 차이, 결핍뿐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그의 《에티카》를 읽고서 지금 자신의 존재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만 존재를 끊임없이 완성해나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기대들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갈망을 구분함으로써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_ 에티 힐레숨에게 | 철학 부인에게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유태인 에티 힐레숨. 그녀는 유태인 출임 금지 표지판이 붙은 공원 입구에서도 “그래도 기뻐하며 살아갈 장소는 충분히 남아 있다!”며 저항감이나 비통함, 원한 대신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모르파티(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그녀의 글 속에서 저자는 인생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 작가 소개
저 : 알렉상드리 졸리앙
Alexandre Jollien
1975년 스위스 사비에스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프리부르 문과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대그리스어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철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 《약자의 찬가》는 몽티용 문학철학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지원하는 문학창작 부문 몽타르 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출간된 《인간이라는 직업》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났지만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고,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그는 철학에 빠졌다. 졸리앙에게 철학은 ‘philein(사랑하다)’과 ‘sophia(지혜)’, 즉 ‘사랑이 담긴 겸허함’이다. 그는 철학자란 지혜를 아직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고통을 덜고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서 철학을 만나지만, 철학이 불행을 덮어 가리는 유약이 아니라 세상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는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 : 윤미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캉 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 마음속 1인치를 찾는 심리실험 150』, 『내 아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심리실험 100』,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심리실험 100』, 『가면을 쓴 과학』,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라디오 아들』, 『첫 번째 부인』, 『홍당무』, 『구해줘』, 『피카소』, 『뒤피』, 『장미』, 『옥소도시』, 『자연은 살아 있다』, 『제2의 순수』, 『초록색 정원에서 보내온 편지』, 『불타는 세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철학 부인에게
나는 누구입니까 _ 보에티우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_ 에피쿠로스에게 | 쇼펜하우어에게 | 철학 부인에게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 에라스무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_ 죽음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난 게 아니라 의지로 자유로워집니다 _ 스피노자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_ 에티 힐레숨에게 | 철학 부인에게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철학에게 물었습니다
미자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는 문화센터에 나가 김용탁 선생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지만 시를 쓰지 못합니다. 노트를 들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시로 적어보지만 ‘꽃이 핀다, 바람이 분다’ 같이 끼적일 뿐 진짜 시를 쓰지 못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어둠과 더러움을 껴안아야 한다”는 감독의 말대로라면, 미자의 시가 시작되는 순간은 김회장에게 말을 전하기 위하여 ‘5백만 원만 주세요’라고 노트에 적을 때가 아닐까요. 알츠하이머, 조손가족, 파트타임 간병인 같은 현실을 부정하고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가려 할 때가 아니라, 그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손자 종욱이 죄를 저지른 현실을 껴안고서야 비로소 시가 탄생하니 말입니다.
이 책은 미자의 시처럼, 세상을 부정하거나 덧없이 극복하려 하거나, 혹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써 삶을 수긍하고 지탱한 한 철학자의 에세이입니다.
간략한 책 소개
너그러운 여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철학,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 《고마워요, 철학 부인》이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자기의 건축―철학을 이용하는 한 방법”이라는 원제처럼 이 책은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이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저자가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철학 에세이다. 1975년생으로 서른둘의 나이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삶과 맞닿은 깊은 철학적 성찰을 편지 형식으로 한껏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철학적 재미와 동시에 우리 역시 현실을 곰곰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5세기 로마 출신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 박학다식과 유능함으로 왕의 고문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능력을 질시한 이들에게 기회주의자로 몰려 반역죄의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감옥에서 그는 《철학의 위안》을 쓴다. 철학 부인이 그를 면회하러 찾아와 철학자들이 만든 치료제들을 그에게 상기시켜주고 철학 부인과 내면의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이와 비슷하게 편지의 형식에 자신의 철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편지의 수신자는 지은이가 너무나도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하는 철학 부인과 ‘성가신 애인들’, 그리고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이다. 즉 프랑스어에서 여성 명사인 철학(la philosophie), 공포(la frayeur), 죽음(la mort)을 의인화하여 그들에게, 또한 철학자 보에티우스,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에티 힐레숨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면의 감옥에 갇히고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졸리앙은 자신을 버티고 위로하고 용기를 얻기 위해 철학에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입니까”,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왜 안심을 추구할수록 결핍의 자리만 커지는 겁니까”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것은 삶에서 문득 누구에게나 던져지는, 혹은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질문들이기도 하다.
보에티우스 덕분에 자신에게 낙인찍힌 꼬리표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숨김없는 본래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음을, 에피쿠로스의 “인생은 그러한 ‘유보’ 때문에 점점 사라져간다”는 말로써 현재의 기쁨마저 의심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음을, 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로 숨진 유태인이면서도 “그래도 기뻐하며 살아갈 장소는 충분히 남아 있다”고 감내했던 에티 힐레숨에게서 인생은 극복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성찰 등이 담겨 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우리에게 극복하려 발버둥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얻은 한 인간의 소박하고 뜨거운 고백으로써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그를 구축한 철학자들을 통해 철학이 난해하고 근엄한 현학의 세계가 아니라 내 삶을 보듬는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 책은 졸리앙과 함께 떠나는 철학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여 지혜를 구하는 삶의 아름다움, 즉 철학과 철학하는 삶의 매력으로 인도하는 담백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해석하는 철학이 아닌, 겪어서 쓴 철학을 담은 열세 통의 편지
‘철학(哲學)’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을 볼 수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이 둘은 언뜻 비슷한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자신, 연구와 경험이라는 말의 간극만큼 서로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철학의 사조가 다양해지고 깊이가 더해질수록 점점 더 우리 개개인의 삶과 철학의 접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요즘에는 더더욱 철학이란 탁상공론, 철학자는 책상물림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철학은 다르다. 그는 “나에게 철학한다는 것은 나를 외면하기만 하는 세계 속에 나를 안표하고 하나의 목적을 나에게 부여할 기회”이자 “현실을 책임지고 ‘인간의 직무’를 즐겁게 완수할 기회”라고 말한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단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킨 깨달음으로서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열어 보여준다. 그는 독자들에게도 이 편지글을 따라 읽으며 바로 인간과 자신, 연구와 경험의 접점으로서 “갈망하는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경험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무게, 죄의식, 두려움, 일상의 속박들 때문에 자유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이러한 무능함 때문에 나는 철학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철학이 내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계속 자문하고 자세히 검토해보려는 것입니다. (8~9쪽)
내 생각으로는 철학자의 저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책을 펼칩니다. 그러면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내밀한 대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안내인들과 함께 밟아나가는 여정을 담은 이 편지글을 쓴 것입니다. (10쪽)
내 삶을 보듬은 철학의 위안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자신의 손이 되어줄 친구나 음성 도서관의 도움이 있어야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는 “탯줄에 목이 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태어나 특수학교 기숙사에서 십칠 년을 보냈고……” 따위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 질렸다고 말한다. 또 여전히 인터뷰 기사에서 친절하게도 “장애인 철학자”라고 소개되고,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서 단지 신체장애의 ‘증거’만을 찾아내고 기억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에서 졸리앙은 그런 자신에게 철학이란 과거를 완전히 잊고 ‘장애인’이라는 “그 가엾은 명사가 잊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불행을 덮어 가리는 유약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철학은 그에게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어떤 결함의 여파들과 맞서 싸우는 데” 유용한 무기였다. 하지만 그는 철학을 알아갈수록 철학이 그러한 유약이나 무기가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무대책한 긍정을 얻은 것도 아니다.
철학 부인은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나의 인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확신, 야망, 기대, 죄의식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 그러한 불만족 때문에 나는 더 많은 만용을 부리게 되고 도피하고 싶어 하며, 나의 역할들을 연기(演技)하게 됩니다. 이제 열등감을 비방하는 대신 상처 입어 흠집 난 사랑으로 자신을 구축해나가야 합니다. (철학 부인에게_40~41쪽)
나는 종종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하지만 당신은 온화하면서도 인내심 있게 나의 관점을 이렇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서 행복해질까? 이제 멀리 있는 행복을 좇으려는 욕망을 과감히 버리고, 행복이 주어지는 그곳에서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며 즐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패는 바로 선(善), 즉 행복에 다다르기는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에게_70쪽)
내가 미묘한 균형을 찾도록 이끌어준 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참을성 있는 포기가 항상 미덕과 결부되는 건 아니니까요. […] 물론 현실에 동의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동의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참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분명히 불행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면서 나약하고 무력한 태도로 안주하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에티 힐레숨에게_260~261쪽)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 현재에서 행복을 찾기,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길들이기, 죽음을 거부하는 대신 삶을 음미하기, 현실을 인정하기, 운명을 수용하기. ‘나’, 행복, 두려움, 죽음, 자유, 운명 같은 말들에 짓눌렸던 그가 철학에서 얻은 것은 이렇게 단순하고 명징하다.
알아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이 주는 울림이 큰 이유는 그가 말하는 메시지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쉼 없이 부딪치고, 넘어지고서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양한 철학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 여정인 동시에, 철학이 바꾼 한 인간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고백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생의 고비를 철학과 건너는 방법
졸리앙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고 달라진 자신을 고백한다. 그는 “세발자전거 탄 저 아저씨, 너무 웃긴다”는 시선에 곤란해하고, 딸 빅토린이 태어났을 때 아이가 정상인지 몹시 걱정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비교의 결과로 얻는 것은 소외감, 차이, 결핍뿐이었다. 그래서 비교를 떨쳐내려 애쓰지만 “완전과 불완전은 사유의 양태일 뿐”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듣는다. 결국 그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내린 결론은 비교 자체를 몰아내려는 강박 대신 존재를 완성해나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다른 편지들이 철학과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인 것과 달리 죽음에게 그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단호한 선언을 보낸다. 이전의 그는 죽음을 저주한다면서 죽음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말하는 하이데거, “죽는 것을 수련하는 것”에 전념한 플라톤의 말에 기대어 죽음 덕분에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상기하고 겸허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선택들이 내가 모르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분명 포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완전히 변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욕망들이 자유로운 기쁨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당신이 현실과 완벽함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당신의 《에티카》를 대충 부분적으로 읽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숙명론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잘못된 독서법으로 자기만족과 오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거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스피노자에게_212쪽)
나의 스승 중 한 분인 스피노자는 소박한 삶을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죽음보다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 스피노자는 내가 너를 생각할 때 나를 괴롭히는 현기증 나는 불안을 더 이상 피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는 인생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 네가 불어넣는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으로 즐겁게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 삶을 더 잘 향유한다.” 스피노자 덕분에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너에게 더 정당한 자리를 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죽음에게_181쪽)
이렇게 《고마워요, 철학 부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운 철학 여정과 한 인간의 뜨거운 고백, 그리고 바로 ‘철학하는 삶’의 태도이다. 즉 각자 자신 앞에 놓인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철학을 받아들여 자신의 태도로 세우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졸리앙이 갈구했던 진짜 나, 행복, 두려움, 죽음, 자유, 운명에 대한 태도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졸리앙이 내린 결론과 삶의 태도에 쉬 동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철학을 통해 자기만의 태도를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고비와 난관이 예측할 수도 없이 몰아닥치는 우리네 삶에서 그의 철학 사용법이 고스란히 담긴 《고마워요, 철학 부인》을 통해 독자들 역시 삶의 고비와 벽에 맞닥뜨렸을 때 철학으로써 삶을 지탱할 용기를 얻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퍼부어야 할 것 같은 증오를 거부합니다. 나치는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대량학살당할 아기들에게 기저귀를 채우라고 당신에게 명령합니다. 그때 당신은 삶이 너무도 비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임무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명론과에서 완전히 벗어나, 당신은 인간을 짐승으로 변모시키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맞서 여전히 위엄을 지킵니다. “나는 집단노동수용소에서 사흘도 못 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날마다 죽기 위해 잠자리에 들겠지. 그렇지만 나는 인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티 힐레숨에게_251쪽)
각 장 내용 소개
철학 부인에게
졸리앙은 첫 번째 편지인 철학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철학이 단지 자신에게 다양한 이론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겪고 악전고투하는 동안 의심하는 법, 때를 기다리는 법, 정념을 다스리는 법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내면의 성채를 건축하는 데 도움을 준 철학자와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누구입니까 _ 보에티우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B''
억울하게 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며 《철학의 위안》을 쓴 보에티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철학 부인 덕분에 주어진 배역이 아닌 진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음을 말한다. 또한 여죄수들을 만나면서 자신에게 낙인찍힌 꼬리표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철학으로 인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인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확신, 야망, 기대, 죄의식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_ 에피쿠로스에게 | 쇼펜하우어에게 | 철학 부인에게
“만약 ……한다면 행복할 텐데”라는 식으로 인생의 행복을 한정지었던 자신의 생각을 “하지만 인생은 그러한 ‘유보’ 때문에 점점 사라져간다”는 에피쿠로스의 말로 뒤집는다. 또한 결핍과 권태를 벗어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이 생의 의지를 욕망을 충족하는 데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성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데 써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로써 자신이 변화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 에라스무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저자는 에라스무스에게 공포 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더 이상 희망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여 두려움은 희망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삿된 희망으로 두려움을 키우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회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_ 죽음에게 | 철학 부인에게
죽음에게 쓴 편지의 요지는 한마디로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죽음이란 결국 우리 곁에서 기다리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벽시계를 바라보면서 재깍재깍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졸리앙은 죽음의 도래를 대비하고 회피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이 결국 두려움, 죽음을 물리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난 게 아니라 의지로 자유로워집니다 _ 스피노자에게 | 철학 부인에게''/B''
타인과의 비교, 과거-미래와의 비교를 통해 안심을 추구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외감, 차이, 결핍뿐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그의 《에티카》를 읽고서 지금 자신의 존재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만 존재를 끊임없이 완성해나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기대들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갈망을 구분함으로써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_ 에티 힐레숨에게 | 철학 부인에게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유태인 에티 힐레숨. 그녀는 유태인 출임 금지 표지판이 붙은 공원 입구에서도 “그래도 기뻐하며 살아갈 장소는 충분히 남아 있다!”며 저항감이나 비통함, 원한 대신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모르파티(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그녀의 글 속에서 저자는 인생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 작가 소개
저 : 알렉상드리 졸리앙
Alexandre Jollien
1975년 스위스 사비에스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프리부르 문과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대그리스어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철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 《약자의 찬가》는 몽티용 문학철학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지원하는 문학창작 부문 몽타르 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출간된 《인간이라는 직업》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났지만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고,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그는 철학에 빠졌다. 졸리앙에게 철학은 ‘philein(사랑하다)’과 ‘sophia(지혜)’, 즉 ‘사랑이 담긴 겸허함’이다. 그는 철학자란 지혜를 아직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고통을 덜고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서 철학을 만나지만, 철학이 불행을 덮어 가리는 유약이 아니라 세상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는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 : 윤미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캉 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 마음속 1인치를 찾는 심리실험 150』, 『내 아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심리실험 100』,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심리실험 100』, 『가면을 쓴 과학』,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라디오 아들』, 『첫 번째 부인』, 『홍당무』, 『구해줘』, 『피카소』, 『뒤피』, 『장미』, 『옥소도시』, 『자연은 살아 있다』, 『제2의 순수』, 『초록색 정원에서 보내온 편지』, 『불타는 세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철학 부인에게
나는 누구입니까 _ 보에티우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_ 에피쿠로스에게 | 쇼펜하우어에게 | 철학 부인에게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 에라스무스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_ 죽음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난 게 아니라 의지로 자유로워집니다 _ 스피노자에게 | 철학 부인에게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_ 에티 힐레숨에게 | 철학 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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