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
2010년 8월 말 터진 국새사기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락한 국사범이 되어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 이창수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언론들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단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처리였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되었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왜 민홍규의 전통기술 시연을 막는가.
“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로 고용한 이창수(종로에서 반지 등을 주물해주던 일을 함)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과 총괄책임자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창수는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도왔고 그것이 확인되면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창수는 처음 12월 3일 아침에 산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물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월 2일 이창수가 현장에 있는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자 12월 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일에도 이창수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의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후 그 밑에서 일하던 행정 담당 박희웅은 골프퍼트 제작업자 박준서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민홍규 대신 이창수를 내세우기로 한다. 이창수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창수 자격을 조작하였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또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창수는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자신의 것인양 도용했다.
민홍규는 ''국새백서''의 조직도가 사실과는 다르게 인쇄되어 나오자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민홍규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진술하였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하여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들어간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 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이것도 행정보조 박희웅의 농간으로 빚어진 억울한 사건이다. 박희웅이 롯데백화점 전시회를 하고자 하니 인조다이아몬드를 내어달라고 한다. 민홍규는 진품이 아니라 안된다고 하였지만 박희웅이 자신이 다 알아서 하고 나중에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여 전시하도록 내어주었다. 모든 일처리를 박희웅이 했고 민홍규는 전시회 중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나중에 박희웅은 민홍규가 인조라고 하였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거짓진술로 일관하며 민홍규에게 뒤집어 씌웠다. 롯데 담당자들이 민홍규의 입장을 진술해주었지만 재판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희웅의 요구로 전시회를 가졌고, 어쨌든 민홍규는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은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하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검찰과 재판부는 기를 쓰며 전통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갔다.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민홍규 죽이기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민홍규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담담하게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민홍규의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소성)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가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를 제작하는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1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잘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 석불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의 목불과 민홍규를 이간질 하였다는 것이 목불을 만나본 결과다.
“국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시기인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금도장 로비설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민홍규가 4대 국새를 만들 당시 이들에게 금도장으로 로비하여 국새제작단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도장 로비설로 인해 민홍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아무리 엮으려 해도 실체가 없었고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27일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이에 대해 민홍규는 “내가 만든 4대 국새가 단지 노무현 정부 때의 것이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이다.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을 한 사람의 예술가로 남고 싶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고 한 나라의 장인이 만든,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담긴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새는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2013)와 ''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 주요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다 / 박찬종 변호사
제1장 국새사건의 진실
국새사건은 무엇인가
제작비를 횡령했는가
국새 로비는 있었나
국새 공모 심사에 로비가 있었나
전통기술이 없다고 자백했는가
황금퍼터사업의 진실
40억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국새백서는 왜 조작되었는가
제2장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민홍규는 전통기술이 있는가
금을 횡령하였는가
오합토와 거푸집은 제작하였는가
현대식 전기로는 왜 구입했는가
오합금은 무엇인가
인면 내부 봉 기둥의 진실게임
국새 바꿔치기가 가능한가
국새 주물 현장에 누가 있었는가
개물식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금의 함량이 다르다
인뉴는 누가 만들었나
왜 국새에 이름을 새겼을까
제3장 국새에 얽힌 비밀
1대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석불 정기호는 누구인가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인가
민홍규는 100억대 부자인가
서울시무형문화재 심사 숨은 진실
국새전각전 건립 횡령 의혹
제4장 풀어야 할 의혹들
주변 인물들은 왜 돌아섰는가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어떤 증인과 증거물이 부정되었는가
진실을 외면하는 검찰 공소장
수사기관은 왜 진실을 외면하는가
에필로그 진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 황종국 변호사
사진으로 보는 국새사건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
2010년 8월 말 터진 국새사기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락한 국사범이 되어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 이창수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언론들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단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처리였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되었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왜 민홍규의 전통기술 시연을 막는가.
“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로 고용한 이창수(종로에서 반지 등을 주물해주던 일을 함)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과 총괄책임자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창수는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도왔고 그것이 확인되면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창수는 처음 12월 3일 아침에 산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물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월 2일 이창수가 현장에 있는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자 12월 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일에도 이창수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의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후 그 밑에서 일하던 행정 담당 박희웅은 골프퍼트 제작업자 박준서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민홍규 대신 이창수를 내세우기로 한다. 이창수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창수 자격을 조작하였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또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창수는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자신의 것인양 도용했다.
민홍규는 ''국새백서''의 조직도가 사실과는 다르게 인쇄되어 나오자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민홍규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진술하였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하여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들어간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 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이것도 행정보조 박희웅의 농간으로 빚어진 억울한 사건이다. 박희웅이 롯데백화점 전시회를 하고자 하니 인조다이아몬드를 내어달라고 한다. 민홍규는 진품이 아니라 안된다고 하였지만 박희웅이 자신이 다 알아서 하고 나중에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여 전시하도록 내어주었다. 모든 일처리를 박희웅이 했고 민홍규는 전시회 중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나중에 박희웅은 민홍규가 인조라고 하였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거짓진술로 일관하며 민홍규에게 뒤집어 씌웠다. 롯데 담당자들이 민홍규의 입장을 진술해주었지만 재판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희웅의 요구로 전시회를 가졌고, 어쨌든 민홍규는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은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하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검찰과 재판부는 기를 쓰며 전통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갔다.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민홍규 죽이기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민홍규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담담하게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민홍규의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소성)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가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를 제작하는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1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잘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 석불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의 목불과 민홍규를 이간질 하였다는 것이 목불을 만나본 결과다.
“국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시기인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금도장 로비설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민홍규가 4대 국새를 만들 당시 이들에게 금도장으로 로비하여 국새제작단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도장 로비설로 인해 민홍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아무리 엮으려 해도 실체가 없었고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27일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이에 대해 민홍규는 “내가 만든 4대 국새가 단지 노무현 정부 때의 것이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이다.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을 한 사람의 예술가로 남고 싶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고 한 나라의 장인이 만든,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담긴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새는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2013)와 ''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 주요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다 / 박찬종 변호사
제1장 국새사건의 진실
국새사건은 무엇인가
제작비를 횡령했는가
국새 로비는 있었나
국새 공모 심사에 로비가 있었나
전통기술이 없다고 자백했는가
황금퍼터사업의 진실
40억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국새백서는 왜 조작되었는가
제2장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민홍규는 전통기술이 있는가
금을 횡령하였는가
오합토와 거푸집은 제작하였는가
현대식 전기로는 왜 구입했는가
오합금은 무엇인가
인면 내부 봉 기둥의 진실게임
국새 바꿔치기가 가능한가
국새 주물 현장에 누가 있었는가
개물식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금의 함량이 다르다
인뉴는 누가 만들었나
왜 국새에 이름을 새겼을까
제3장 국새에 얽힌 비밀
1대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석불 정기호는 누구인가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인가
민홍규는 100억대 부자인가
서울시무형문화재 심사 숨은 진실
국새전각전 건립 횡령 의혹
제4장 풀어야 할 의혹들
주변 인물들은 왜 돌아섰는가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어떤 증인과 증거물이 부정되었는가
진실을 외면하는 검찰 공소장
수사기관은 왜 진실을 외면하는가
에필로그 진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 황종국 변호사
사진으로 보는 국새사건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