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아씨에 울고 쇼쇼쇼에 웃던 그때 그 시절-

고객평점
저자정범준
출판사항알렙, 발행일:2014/09/25
형태사항p.282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7779420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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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흑백 TV와 함께한 1956~1980년까지의 시대상을 기록과 추억으로 되살린다
제국의 후예들
거인의 추억(최동원 평전)의 작가 정범준, 흑백 TV 시대를 조명하다

‘아씨’에 울고 ‘쇼쇼쇼’에 웃던
1956~1980년까지 흑백 테레비 시대를 기록하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부리캉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

이 이름을 들을 때 누가 생각나시는지?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나 개그맨 김형곤이 아니라 코미디언 서영춘이 생각난다면, 당신은 ‘흑백 테레비’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세대다. TBC 고전 유머극장에서 서영춘이 ‘서수한무~’를 부르며 숨넘어가는 장면에 배꼽을 잡은 기억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이 어릴 적 받고 행복해했던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이다.

흑백 텔레비전 그 아득한 시간 여행 속으로

한국 방송사에서 흑백 텔레비전 시대는 1980년 11월 30일로 끝이 났다. 방송통폐합에 의해 동양방송이 마지막 고별 방송을 끝으로 사라진 날이 11월 30일이며, 그 다음날 12월 1일부터 각 방송사는 컬러 방송을 송출한 것이다.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는 이 ‘사라진 방송사들’에 관한 기록과 추억을 한데 엮은 책이다. 흑백 텔레비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물론이고 초창기 방송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일구어낸 치열한 역사를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흑백 텔레비전의 역사만을 다룬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또 방송의 역사만이 아니라 ‘시대상’도 그려본다는 점에서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독특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흑백 텔레비전 시절 한국 방송의 변화 과정을 정리하고, 1956~1961년대의 KORCAD(한국 최초 방송국), 1961년의 DBC, 1964~1980년까지의 TBC(동양방송)를 중점으로 주요 방송 프로그램과 인물, 그 시절의 방송 일화를 다루었다. 또한 방송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의 양상과 그 시대의 문화를 다루면서 동시에 저자의 추억을 곁들여,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듬뿍 맛볼 수 있다.

손과 발과 땀으로 쓴 논픽션

작가 정범준은 논픽션 전문 저술가이다. 대한 제국 황실의 후예들을 다룬 『제국의 후예들』이나 야구선수 고(2) 최동원의 생애를 다룬 전기 『거인의 추억』, 작가 이병주를 다룬 문학적 평전 『작가의 탄생』 등을 썼다. 저자는 이 논픽션들을 쓰기 위해, 각종 기록물과 문헌들을 뒤지는가 하면 인터뷰와 취재도 병행하였다. 글로 된 텍스트만이 아니라, 말과 삶 자체를 대상으로 총체적인 다큐멘터리를 구성해 보는 방식이다.
작가는 KORCAD 방송 3년치, DBC 방송 1년치, TBC 방송 16년치 등 20년치의 TV 편성표를 일일이 다운로드받아 들여다보고, 기사 검색을 위해 눈을 비벼가며 마이크로필름을 넘기고, 바스라질 것 같은 오래된 책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복사하는 등, 온갖 문헌들을 찾아 사실의 조각들을 맞춰보는 작업을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KORCAD와 관련된 자료를 다루면서는, 편성표나 문헌과 증언 등을 일일이 대조해 가며 한국 방송사와 드라마사에서의 오류를 수정하였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많은데, 이를 엮고 구성하려고 보면 작가 자신도 요령부득이었다고 말한다. 자칫 프로그램 나열이 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KORCAD·DBC·TBC와 프로그램들은 하나의 ‘사라진’ 바다였다.
저자 자신도 “바다의 심연에 빠져 급속히 힘을 잃어간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몇 번을 쓰다가 방치하고 다시 쓰고 하는 것을 반복했다. “구성의 묘안은 어느 날 기적같이 찾아왔는데 대학 시절 과제물로 냈던 ‘자기소개서’가 집필의 물꼬를 터 주었다.”고 한다. ‘기록’만이 아니라 ‘추억’을 같이 다루면서, 지루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닌, 사회상과 시대상, 개인적인 감회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애초 구상부터 완성까지 6년 이상이 걸려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내용 소개: 1956~1980년까지 흑백 TV 시대를 조명하다

이 책의 1부는 1950년대 중후반, 전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 땅에 텔레비전 방송국을 세우고 악전고투 속에 방송을 이어나간 민간방송 KORCAD, DBC의 역사와 그 사람들에 관련된 이야기다. 당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시대상과 뒷얘기도 덧붙였다. 생방송 도중 유치원생 아이가 오줌을 싸고, 놀란 어머니는 뛰쳐나가고, 제작진은 당황해하고, 이 화면이 그대로 나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는 일화 같은 것도 가미된다.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을 향한 선구자들의 노력과 열정도 담았다. 영화 시네마천 국에서 알프레도가 모든 열정을 바친 ‘시네마 파라디소’가 불에 타버렸듯이, 한국의 ‘테레비 파라디소’ 격인 KORCAD, DBC 방송국도 허무하게 재로 화해 사라져버렸다. 1부는 ‘테레비천국’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2부에서는 TBC와 그때 그 시절을 담았다. TBC는 1964년에 개국해 1980년 11월 문을 닫았다. 1964년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 원년이었고 그는 1979년 10월 서거했다. TBC의 17년과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기간은 묘하게, 거의 일치한다. 경제개발과 독재, 화려와 빈곤, 성장과 소외, 웃음과 울음이 중첩되는 이 시기를 TBC 프로그램과 당시 시대상을 엮어 이야기하려고 했다. 약간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엔 제작 환경이 열악해 TBC는 외화나 방화를 주로 편성한다. 이 외화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다 사회가 발전하고 제작 환경이 좋아지자 일일연속극이 인기를 얻는다. 만들면 보는 수준이 돼버려 하루 5편의 일일연속극이 방영되는 일도 생긴다. 정부가 일일연속극에 대해 규제를 하자 주말연속극이 탄생한다.
1977년 한 집 건너 한 집에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유하게 되고 수출은 100억 불을 돌파하고 탤런트라는 새로운 스타가 부상하기 시작한다. TBC 출신 탤런트가 국회에 진출해 당시로서는 충격을 주는 일도 일어난다.

1부 한국 텔레비전 방송이 열리다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KORCAD는 1956년 5월 12일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작가 이병주의 어느 칼럼에는 “TV도 못 보고 죽은 친구를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다. 컬러 TV는 물론 인터넷, 스마트폰, 패블릿 PC를 보지 못하고 죽은 이도 있겠지만, 텔레비전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문명의 이기일 것이다. 그러면, 그때 텔레비전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 1956년 5월 13일자 한국일보는 ‘라디오와 활동사진을 겸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말은 방송은 곧 라디오인데 거기에 활동사진까지 겸한 것이 TV라고 생각했다는 뜻과 같다. 한국 방송의 선구자인 황태영 사장은 미국에서 방송 장비와 기술, 기술자들을 들여와 개국 준비를 하였고, 정부 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개국 허락을 받았다. TV 수상기는 200대, 기자재는 15만 달러 상당이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한국 최초의 방송이었기 때문에, 각종 ‘최초’ 기록이 남겨졌다. 한국 최초 TV 방송 아나운서는 서명석이었고, 한국 최초 공채 PD는 최창봉이었다. 한국 최초의 TV 광고는 ‘유니버어설 레코오드’의 “깨지지 않는 레코드”였고, 한국 최초의 TV 드라마는 1956년 8월 2일 방영된 용사였다.(한국 최초 드라마에 대해서는 사형수인지 용사인지 증언과 기록이 엇갈린다. 작가는 최초 보도된 기사를 참조하여 최초의 드라마는 용사와 사형수가 같은 작품이라는 점과, 엄연히 최초로 전파를 탔을 때에는 용사라는 제목이었다고 고증한다.) 최초의 스포츠 중계방송은 1958년 8월 9일 저녁에 방영된 ‘전국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권대회 결승전 실황 중계’였다.

한국 최초의 드라마는 1956년 8월 2일 KORCAD가 방영한 〈용사〉였습니다. 그동안은 ‘사형수’라 알려져 있었죠. 같은 작품을 지칭하고 그게 그거 같지만 그래도 ‘용사’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는 점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드라마인 황금의 문도 그간 ‘천국의 문’으로 알려져 있던 것을 바로잡았습니다.
또한 대다수의 문헌이 한국 텔레비전 정규방송의 시작을 ‘1956년 6월 1일부터 격일제로 실시했다’고 쓰고 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6월 16일부터 주 3일 편성이었지요. 저는 6월 16일도 한국 방송사에서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날이라고 생각합니다.(인터뷰 중에서)

저자 정범준은 이 당시 방송에 “없는 게 없었다”고 말한다. 노래파-티는 나중에 OB파-티로 불리게 되었는데, 당대의 유명 가수들이 많이 출연했다. OB파-티는 윤부길의 ‘부길부길쇼’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는데, 윤부길은 가수 윤항기와 윤복희의 부친이며, 당시 “원맨쇼의 제일인자로 손꼽히는 분”이었다. 윤복희는 아버지 악극단의 무대에 자주 섰고, 열두 살 무렵에 OB파티에도 출연하였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박상익, 이향자, 김희갑, 구봉서, 배삼룡의 이름이 발견되었다. 양훈, 양석천, 서영춘도 TV코메디에 출연한 적 있다. 이외에도 벙어리문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유아, 어린이, 청소년, 여성 대상 프로그램도 있었다.
또, 모든 방송은 생방송이었다. 카메라, 스튜디오, 조명 시설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는 그렇다 치고, 드라마 역시도 생방송으로 해야 했다. 배우들의 동선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를 미리 잡아 약속된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며‘스튜디오’는 그야말로 전장터가 되었다. 고(2) 이낙훈, 이순재 등이 이 시절부터 출연하였던 배우들이다.
결국 KORCAD는 경영난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이 KORCAD의 경영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장기영 사장은 최창봉 PD에게 편성부장을 맡기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과 어린이 대상 퀴즈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지금의 슈퍼스타 K의 역할을 했던, 예능 로터리를 통해서는 가수 이미자 씨가 배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DBC는 의문의 화재로 방송사 건물이 소실되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저자 정범준은 이를 ‘시네마 천국’에 빗대어 표현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느 날 화재가 발생해 극장이 잿더미가 되었다. KORCAD, DBC 제작진들의 무대였던 ‘테레비 파라디소’ 역시 같은 운명을 겪었다. 실제로 화재 이후 장기영 사장은 방송사 재건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실패한다.

제2부 흑백 테레비의 황금시대

제2부는 동양방송(TBC)과 그때 그 시절을 담았다. TBC는 서울과 부산에서만 전파를 쏘아올렸다.(저자는 서울과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또, 1980년 11월 30일 흑백 TV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고별방송을 끝으로 사라진 방송사였다. 흑백 테레비를 보고 자란 논픽션 작가 정범준은 언젠가는 쓰고 싶어했던 책이 바로 최동원 평전과 차범근 평전 그리고 TBC 이야기였다고 말한다.(영웅이었음에도 저평가된 점,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점, 뭔가 아련한 점 같은 게 셋을 관통하는 공통점 같았습니다.-인터뷰)

1964년 개국한 TBC는 본격적인 민간 상업 방송 시대를 알렸다. 당시 KBS는 공영이 아닌 국영 방송사였기에 TBC의 등장은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출발부터 “녹화기”와 “전속제”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었고, 쇼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쇼쇼쇼는 13년간 사회를 맡은 곽규석의 인기와 함께 TV 쇼 발전에 커다란 자극제 역할을 했다.
전투 보난자 도망자라는 외화를 첫 방영부터 선풍적인 인기였다. 이 프로그램들은 각종 시청률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전투가 76%, 도망자가 69%, 쇼쇼쇼가 64% 등이었다. 물론 지금 왔다 장보리가 기록하는 37%의 시청률이 더 대단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76%라면 공유, 공감의 의미가 더 클 것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장수무대는 노인의 기준을 세웠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는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출연하는 공개방송”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는데, 다시 말해 50대면 노인으로 보는 사회 통념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방송사에 항의가 빗발칠 만한 일이다. 실제로 2008년 1월 모 방송사에서 “50대 이상 노인”이라는 보도가 나갔는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쇼쇼쇼는 많은 유명 가수들의 산파 역할을 하였는데, 세시봉 가수인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이 주로 쇼쇼쇼와 TBC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 데뷔하고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외화 시리즈와 함께 또 저자 정범준의 추억에 깊게 각인된 프로그램들이 만화영화이다. 황금박쥐의 인기는 어른들에게도 폭발적이었다. 요괴인간 황금박쥐 등은 일본의 원작을 국내에서 하청받아 생산한, 일종의 보세가공품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또, 이들 작품은 신문 칼럼에서 인용될 정도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1969년 8월 8일 MBC TV가 개국하면서 TV 3사의 경쟁시대가 열렸다. MBC는 당시 ‘코미디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코미디에서 제일 먼저 시청률을 높인 방송”이다. 8월 14일에 첫 회가 방영된 웃으면 복이 와요는 간판, 장수 프로그램이 된다.
1970년부터 1974년 사이에 TV 매체는 라디오와 신문을 따라잡았다. 광고액으로 보나, TV 수상기 보급 대수로 보나,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때였다. 저자는 1970대를 아씨(1970년 3월 2일 첫 회)가 문을 열었다고 전한다. 드라마 아씨는 한국 방송사에서 가장 선풍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아씨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자기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는, 당시로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그린 드라마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로 시작되는 가수 이미자의 ‘아씨’ 주제가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씨는 열 달 남짓 방영되면서 숱한 화제를 양산했다.
이후 딸, 여로(KBS), 새엄마(MBC)가 드라마 양산에 동참하면서, 일일 드라마 범람 시대가 열렸다. 1972년에는 하루에 무려 5개의 일일연속극이 편성되는 일도 벌어졌고, 재탕/삼탕 편성, 일일극 홍수, 과도한 광고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TBC는 뉴스전망대와 TBC석간을 통해 뉴스 프로그램을 재편하였다. 한국 최초의 앵커맨을 지향한 봉두완, 일기예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김동완 등도 TBC가 배출한 스타였다.

1975년부터 1980년대는 가히 TV 폭발의 시대라 할 만하다. ‘장발 연예인’을 방송에 출연 금지시키고, ‘대마초 연예인’에게 최고형을 선고하고, 어느 간판 탤런트가 추문에 연루돼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등, 연예계에는 크고 작은 파란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저자의 추억의 온전히 재생될 만큼 생생하다. 대체로 많은 외화들과 만화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재방영되고 장기간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TBC의 반공 드라마인 추적이 인기를 끌자, MBC도 113 수사본부 수사반장 등 무려 5편의 수사물을 내보낸다. TBC의 딱따구리 우주삼총사 플란다스의 개 등 인기 만화영화도 이 당시 선보였었다. 날아라 태극호 이겨라 승리호 정의의 캐산 독수리 5형제 이상한 나라의 삐삐 원탁의 기사도 모두 TBC의 추억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 만화들은 TBC가 KBS로 통합된 후에도 재차, 삼차 계속해서 방영을 이어나갔다.
600만불의 사나이와 날으는 원더우먼은 대단한 성공을 가져왔다. 남자아이들은 600만불의 사나이, 여자아이들은 원더우먼이 장래 희망이라고 말한 설문조사가 동아일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6백만불의 사나이가 방영 중이던 1977년 9월 2일 ‘6백만불의 사나이’를 흉내내려던 한 남자 어린이가 천호대교에서 뛰어내려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6백만불의 사나이는 ‘TV공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본문 중에서)
저자의 추억 속에 깊게 각인된 미녀와 미남 배우는 ‘정윤희 누나’와 ‘한진희 아저씨’였다. 1970년대 여성 트로이카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었고, 남자 쌍두마차는 노주현, 한진희였다고 덧붙인다.
1977년에는 “코미디를 없애라”는 정부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물론 반대여론 탓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TBC의 고전 유머 극장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코믹 사극으로 변경됐고,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는 캠페인성 코미디로 변경되었다. 당시 고전 유머 극장의 간판 코미디언은 서영춘, 송해, 임희춘, 심철호, 최용순 등이었는데, 저자는 ‘서수한무’ ‘3년 고개’ ‘악처 길들이기’라는 코너를 회상한다. 서영춘의 극중 아들 이름이 다음과 같다.(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부리캉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
1978년에는 뿌리 열풍이 일었다. 뿌리는 미국 ABC TV가 15개월 동안 642만 달러를 투입해 제작한 12시간 분량의 미니시리즈였다. 1977년 에미상의 14개 부문 가운데 9개 부문을 석권했고 미국 방영 당시 시청률 51퍼센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도 뿌리의 선풍은 대단했다. 방영 기간 8일 동안 뿌리의 평균 시청률이 74.75퍼센트, 평균 점거율이 86.2퍼센트였다. 다른 방송사들은 그야말로 파리를 날릴 지경이었다. 시인 박목월은 뿌리 방영 하루 전에 타계했는데 뿌리가 방영되는 시간을 전후해서는 문상객의 발길마저 끊겼다고 한다.

서울의 봄은 짧았다. 1979년 10·26으로 박정희 정권은 종언을 고하고, 대망의 1980년대를 맞이했지만, 이내 전두환, 노태우 등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신군부는 방송과 언론 장악을 위해, 언론 통폐합 조치를 취해 버린다. 언론 통폐합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결국 실질적인 사주인 이병철 삼성 회장의 동의가 있은 후,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인 홍진기는 보안사령부 본부로 끌려가다시피 가서 TBC를 포기한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1980년 11월 30일 TBC는 하루종일 고별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1980년 12월 1일 통합된 KBS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컬러 TV 전파를 쏘아올렸다. 마침내 흑백 텔레비전 시대는 저물고 컬러 TV 시대가 온 것이다.
1980년 11월 12일 통폐합이 결정되고 이튿날 이 사실이 직원들에게 알려진 뒤 TBC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름 정도였다.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TBC는 KBS에 통합될 예정이었다.(259쪽) 밤 9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고별 특집방송이 방영되었다. 편성표에는 “모든 TBC 가족 여러분 가정 구석구석에 평온과 사랑이 언제까지나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며 인사의 말씀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이 부기돼 있다.(261쪽) 계엄당국은 11월 26일 이 지침을 각 방송사에 시달했다. 그 내용 중의 하나는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나 감상적 표현 또는 방송종료에 관한 부정적 표현은 금지”한다는 것이었다.(261쪽)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고별 특집방송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마지막으로 TBC TV의 모든 방송이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TBC라디오뿐이었다. 황인용은 당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고 있었다. 그는 TBC, 정확히는 TBC라디오의 마지막 방송을 한 아나운서다.(262쪽)

여기는 동양라디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여러분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제 동양방송은 3분 남았습니다. 끝으로 동양라디오의 호출부호를 불러보겠습니다. 여기는 HLKC 639Khz 동양…방…송입니다.

TBC는 그렇게 마지막 전파를 쏘아 올렸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TBC가 쏘아 올린 마지막 전파 역시 결국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절 TBC를 보며 울고 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이 땅에 TBC가 있었다는 작은 증거이자 추억이다. (본문 중에서)

▣ 작가 소개

저자 : 정범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부산으로 이주했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다 졸업했다. 추첨으로 1986년 금성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됐다. 그곳에서 나는 평생의 지기를 만났다. 금성고 졸업(1989년)은 롯데 자이언츠 창단 어린이회원 활동(1982년)과 함께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경력이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1997년 8월)했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잠시 공부했다(2000년 1학기). 2000년 5월 〈넷벤처〉라는 잡지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7개월 만에 잡지가 폐간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직장을 새로 구할 때마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와 상사들이 한결같이 좋았다. 특히 SK하이닉스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행복하고 꿈같은 시간이었다. 홍보팀 동료들과 맺은 인연 또한 어디 비길 데 없이 소중하다. 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다섯 권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제국의 후예들』, 『이야기 관훈클럽』, 『거인의 추억』, 『작가의 탄생』, 『마흔, 마운드에 서다』가 그것이다. 이 책은 정범준이란 이름을 건 여섯 번째 책이며, 작가로서의 의지와... 열정을 다잡는 첫 책이기도 하다. 정범준은 필명이다. 이 필명에는 나를 포함한 네 사내의 인연과 우정이 깃들어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테레비’가 생긴 날

1부한국 텔레비전 방송이 열리다

첫 장 KORCAD가 뿌린 소중한 씨앗
개척자 황태영 ∥ 우리 민족의 영광 ∥ 다시 써야 할 한국 방송사와 드라마사 ∥ 없는 게 없었다 ∥ 모든 방송은 생방송이었다 ∥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썼다 지우고……
둘째 장 DBC로 자라난 묘목
경영난 ∥ 과도기 ∥ 돌아온 최창봉 ∥ 화요극장과 TV 극회 ∥ 테레비천국 ∥ 1부 후기

2부흑백 테레비의 황금시대

첫 장 프롤로그
둘째 장 민간 TV의 진정한 출발(1964-1969)
TBC 개국을 축하한 KBS ∥ 녹화기와 전속제 ∥ 전투, 보난자, 도망자 ∥ 외화의 폭발적인 시청률 ∥ 장수무대와 노인의 기준 ∥ 돌풍의 비결 ∥ 쇼쇼쇼와 음악감상실 ‘세시봉’ ∥ 보세가공품 황금박쥐 ∥ 1960년대와 TBC
셋째 장 라디오와 TV를 따라잡다(1970-1974)
아씨가 연 1970년대 ∥ 일일연속극의 범람 ∥ 뉴스전망대와 TBC석간 ∥ 대학 문화와 방송 ∥ 여보 정선달의 실험 ∥ ‘신풍운동’의 유행이 방송계에도 ∥ MBC에게 일격을 당하다
넷째 장 TV 폭발의 시대(1975-1980)
장발 연예인 출입 금지 ∥ 추억의 만화 ∥ 추억의 외화 ∥ 주말연속극의 효시, 결혼행진곡 ∥ 정윤희 누나, 한진희 아저씨 ∥ ‘찰리 백’과 ‘찰리 정’ ∥ 10·26과 5·18, 그리고 야 곰례야 ∥ 이주일과 전두환, 청와대와 초원의 집 ∥ 코미디를 없애라 ∥ 뿌리 선풍 ∥ 테마드라마 ∥ 대망의 80년대를 맞이했지만
다섯째 장 마지막 전파(1980년 11월 30일)
마지막 장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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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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