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사용하지 않는 권리는 소멸되고, 사용하지 않는 자유는 시들어버린다. 우리는 권리가 비록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곤 한다.
- 하인리히 뵐
지금 왜 폭력인가?
뉴스와 신문을 접하기가 더욱 거북스러운 요즘이다. 종북몰이와 불통이 미디어와 인터넷을 장악하자 대자보가 대학과 거리, 주요 역사를 뒤덮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었음이 속속 드러난다는 한 시민의 말은 울지 못한 웃음으로 얼굴에 깊은 주름을 하나 더 그려 넣는다. 복지 공약은 확실히 후퇴했고 민영화 논란은 아니라고 할수록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고공행진하는 전셋값에 서민들의 집은 일터에서 멀리,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여전히 집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대란’만 남아있을 뿐이다. 정치적·경제적 양극화는 점점 그 간극이 멀어지다 못해 끊어진 것만 같다.
한국은 라인 강의 기적을 모방하여 한강의 기적을 자랑한다. 세계가 그 기적을 인정한다. 그러나 갑의 횡포를 호소하는 을을 보면, 경제발전과 행복지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한강의 기적은 행복을 잃은 나라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행복을 파괴한 것은 무엇인가? 사회의 간극이 심화될수록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그것을 ‘폭력’으로 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폭력을 4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이 4대 폭력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폭력이 이 네 가지 뿐은 아닐 것이다.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그 폭력의 심각성을 일찍 깨닫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의 비판 정신으로 토론하여 그 결과를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소명출판, 2013)으로 묶어냈다.
학회는 전공자의 토론장이다.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토론의 열기가 학회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퍼져나가야 된다는 의견에 서로 공감하고,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라인 강의 기적에 도취한 독일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의 양심을 촉구했다. 그는 진정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의 양심이었고, 그 정신이 바로 이 책을 만든 힘이었다. 이 책은 동물의 폭력에서부터 국가정치폭력까지, 자연·철학·소설·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노벨상의 평화주의자 뵐과 그의 삶, 그의 문학
평화주의자 하인리히 뵐
폭력과 그 대안저항하라, 그러나 희망을 가져라, 세상은 살만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자유의 문학세계를 가꾸는 데 공헌했다. 토마스 만 이래로 전 세계에서 그처럼 ‘도덕적 심급審級’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은 독일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인권운동가였으며 평화주의자였다. 베트남 난민을 위한 구조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양심범과 반체제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뵐은 국제적 명성에 힘입어 억압받고 고통받는 전 세계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동유럽 지식인들을 옹호하고 동유럽의 민주화에도 적극 개입했다. 모스크바에서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된 솔제니친을 자신의 저택에 머물게 했고, 소련 당국으로부터 한시적 비자를 발급받은 작가 코펠레프와 그의 부인이 독일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뵐은 소련 공산당수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노벨상 수상자 사하로프의 고르키 유배 철회를 요구했고, 독일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도 소련 당국과 진지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뵐은 1960~70년대 반체제 저항시인 김지하와도 인연이 있다. 하인리히 뵐은 「김지하를 걱정하며」라는 글을 기고했고, 김지하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뵐은 말한다. “우리는 증인으로서, 그리고 동시대인으로서 그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그가 지닌 목소리의 힘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정치 환경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뵐과 김지하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과 진실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김지하와 뵐은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전후 서독의 현실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반전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던 뵐을 사회비판 작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전후 재무장·경제발전 제일의 사회 분위기·그에 따른 환경오염 등의 사회실 문제를 뵐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 개인을 위협하는 일종의 ‘폭력’으로 받아들였다. 전쟁이라는 폭력, 종교적 교권주의가 만들어 내는 왜곡된 종교관, 또 다른 폭력을 불러 올 수도 있는 언론의 폭력성, 그리고 테러에 대한 과도한 방어가 빚어내는 인간 구속의 폭력 등은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뵐 작품의 현실 비판 타깃이 ‘폭력’이라는 데 주안점을 두고, 뵐 작품 전체에 나타난 폭력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공권력에 대한 그의 저항이 정점에 달해 있던 시기의 작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카타리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구조적인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인물이었으나, 어느 날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색 저널리즘의 표적이 되어 ‘명예 살해’를 당한다.(“그들이 아이(카타리나)를 끝장내버릴 것이다. 경찰이 아니면 『차이퉁』이, 그리고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中) 결국 카타리나는 경제권력·국가권력·언론권력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구조적 폭력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 구조하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대항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즉 그녀는 언론의 폭력에 의해 명예를 상실하고 심적으로 파괴되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자를 살해한다.
그러나 뵐은 이로써 언론에 의해 사회적 죽음을 당한 개인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뵐은 이 소설을 통해 폭력의 근성과 원인을 생각해보게 하고, 폭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철학자의 어깨너머로 일상에서 발견한 ‘폭력’
법-폭력-정의서약과 ‘동지애-공포’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데리다의 논리로 해석한 벤야민의 강제력(폭력)과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간단한 서약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폭력 논리를 적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벤야민의 문제적 에세이 「강제력 비판Zur Kritik der Gewalt」은 한편으로는 법과 정의의 관계, 수단과 목적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관련하여 정당한 강제력과 부당한 강제력, 신화적 강제력과 신적 강제력의 구분에 대한 여러 층위의 논쟁과 논의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강제력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법철학적 역사철학적 고찰이 있다. 사회계약의 문제나 노동자의 파업권·국가권력의 전쟁권·개인의 정당방위권·군국주의하의 강제력 사용·경찰제도 등은 이러한 물음을 둘러싼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제력(폭력)에는 어떤 종류의 정당성이 있는가이다. 이것은 더 단순화하면, ‘정치적인 것의 가능성’이 된다. 즉 어떤 사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어떤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질서의 가능성을 창출해내기 위한 에너지의 원천으로서, 벤야민은 정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부패한 법제도를 철폐시킬 수 있는 강제력의 혁명적 전복적 형식과 원천을 유대적 기독교적 일신론적 전통에서 찾아보려 한 것이 아니라 법철학적 차원에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이 책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법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법은 법적 가능성의 전체인가? 혹은 현재적이고 역사적으로 제약된 제도의 표현일 뿐인가? 법은 지배계층의 사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철저하게 위장된 공공성에 불과한가? 그리하여 법적 강제력은 정말이지 도구주의적 한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벤야민 텍스트의 의미를 법철학적으로 가장 깊게 성찰한 사람이 데리다J. Derrida다. 데리다가 『법의 힘-‘권위의 신화적 근거’』(1990)에서 가령 법과 정의의 관계나 법과 해체주의의 관계, 벤야민의 법 이해와 홀로코스트 문제 등에 접근한 관점을 통해, 이 책은 법의 정의로운 가능성―법이 법 자체의 테두리를 넘어서고자 할 때, 그래서 법의 안에서부터 그 밖의 영역으로 열려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정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백만 번 이상의 서약을 한다는 한 무명 시인의 말은, 과장되기는 하지만 한 번쯤 경청할 만하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들 각자의 일상생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서약이 무엇인지, 이 행위의 기저에는 폭력이 놓여 있는데, 이때 이 폭력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자문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그보다 서약 행위의 기저에 폭력이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드물지 않게 접하는 ‘서약serment’ 행위에 주목하고, 이 행위의 의미를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 사르트르J.-P. Sartre(1905~1980)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사르트르의 후기 사상이 집대성된 『변증법적 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약 행위의 기저에는 ‘동지애-공포Fraternite-Terreur’라는 일종의 ‘폭력’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나아가 사르트르의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서약의 한 예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르트르의 공동체 논의에 다가가게 된다.
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해부한 작품들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대도시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소설 속의 폭력 읽기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에도 주목했다. 먼저 인간이 독재 집단을 왜 형성하고, 이러한 집단 안에서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관하여 데니스 간젤의 영화 〈디 벨레Die Welle〉를 분석했다. 〈디 벨레Die Welle〉는, 1967년 미국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론 존스Ron Jones가 학급에서 실제로 수행한 실험에 근거해 제작됐다. 존슨은 나치와 같은 독재정권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학생들이 위험하게 변하자 당초 2주 동안 계획했던 실험을 5일째 되는 날 중단했다. 이 실험은 독재집단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경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데니스 간젤은 그동안 나치정권에 대한 다양한 계몽 작업이 이루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에서 과연 이러한 독재집단의 형성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에 천착하여, 이 영화의 배경을 오늘날의 독일로 옮겨온다. 독재집단을 체험하면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변하여 집단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결국 한 학생의 자살로 영화는 마감한다. 이 영화는 68세대 이후 반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란 독일청소년들도 파시즘적 집단 최면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독재정권이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독재집단 내에서 개인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여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를 프로이트 이론에 입각하여 심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영화분석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 심리를 고찰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는 집단 속 폭력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그 다음은 현대사회의 동기 없는 폭력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의 불안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며 폭력을 일으킨다는 점에 천작하여 브레히트의 연극 〈도시의 정글 속〉과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분석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동기 없는 폭력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거나 자기 파괴적 폭력 이외에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욕망과 분노, 극도의 좌절감과 절망이 폭력의 형태로 폭발한다. 두 작품 모두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가 핵심이다. 아무런 개인적, 심리적 동기 없이 그들은 왜 서로를 공격하고 파괴하는가? 두 작품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비웃듯, 오히려 인간이 인간에게 맹수가 되고 있는 도시 정글에 대한 신화다. 홉스에 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계약의 형태가 사회이며, 대도시는 가장 문명화된 사회다. 하지만 이러한 대도시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맹수가 되고 인간의 늑대화, 늑대의 인간화가 일어난다면 이러한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의 두 작품을 통해 ‘도시의 정글’에서 두 남자가 서로의 ‘괴물 같은 짝패’가 될 수밖에 없는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폭력’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보기도 한다. 동학혁명·갑오경장·친일파·상해임시정부헌법·4·19혁명·5·16군사정변·12·12사태·6·10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여 우리 사회의 폭력이 단순히 우리 시대의 폭력이 아니라 유전된 폭력이라는 것을 현기영의 소설 『누란』을 통해 관철한다. 현기영이 『누란』에서 만든 신조어 ‘파콜로지’는 한국형 정치 폭력이 응축된 개념이다. 그러나 이 파콜로지는 단순히 군부 독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대물림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누란』을 읽으면서 그 유산을 언제 누구로부터 받아왔는지 추적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지 않고는 그 상속을 포기하거나 거부할 수 없으며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누란』은 80년대의 정치폭력이 굴절되면서 새천년까지 이어진 30년간의 국가폭력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 가까이 보면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 멀리 보면 동학혁명, 더 멀리 보면 수많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환국換局·옥사獄事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역사에 떠도는 폭력의 유령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은둔자가 되는 허무성을 보면서, 이 책은 『누란』의 주제를 철저한 절망과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소설 속 철저한 절망을 통해 폭력의 근원을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누란』 속에서 한국의 역사를 ‘달걀 쌓기累卵’로 봄으로써 황사바람에 묻힌 고대 왕국 ‘누란樓欄’이 되지 않겠다는 희망을 찾아낸다.
본능, 동물세계의 폭력을 말하다
동물의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동물 그리고 성폭력
동물들 사이에도 인간사회 못지않은 폭력이 일어난다. 무리 안에서의 서열과 먹잇감에 대한 경쟁이나 교미상대·잠자리 획득을 위해 생길 수도 있고, 영역이나 새끼보호를 위해 발생할 수도 있으며, 다른 개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종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폭력의 모습을 몇몇 동물들의 예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이 여러 각도에서 다루는 동물들의 폭력은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구성원 간 보이지 않는 규칙과 질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싸우고 심지어 죽이는 폭력일지라도 말이다. 동물들은 영역 확보를 위해, 짝짓기를 위해, 먹잇감을 위해 물고 뜯고 서로 깃털을 뽑아가며 싸우는 일련의 폭력적 행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얼핏 동물의 세계가 폭력으로 일궈진 사회로 비춰질 수도 있고, 약육강식에 의한 서열세우기 조직체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싸움과 투쟁은 결코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모습 그대로가 생존을 위한 양식이자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명적이고 잔인한 것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버리고 동물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생존을 위해 자연스러운, 그것도 아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생존의 세계를 말이다.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동물의 폭력 중에서도 성폭력에 주목해 보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주제라 자부한다. 성에 관계된 것들은 생명의 순리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강제로 행해지는 성폭력이 동물의 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어떤 형태이며 또 동물들은 왜 그런 강제적 방식을 취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마지막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동물의 성폭력이 어떤 동물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성선택·성전환, 일부일처·일부다처·일처다부·다처다부의 동물의 성과 그 결합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나아가 동물들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폭력에 대한 열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묶어 분류할 수 있을지언정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이 열 가지가 폭력의 모든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책은 폭력에 대하여 독자의 생각을 다시금 환기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심도 깊은 내용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이 책은, 여러 가지 폭력이 뒤엉킨 우리 사회에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 작가 소개
곽정연(郭禎姸 Goak,Jeang-Yean):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이섭(金利燮 Kim, Lee-Seob):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객원교수
김인수(金寅洙 Kim, Inn Su):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문광훈(文光勳 Moon, Gwang Hun): 충북대학교 독문학과 교수
변광배(邊光培 Byun Kwang-Bai):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래교수
사지원(史智媛 Sa, Ji won): 건국대학교 문과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이은희(李銀姬 Lee, Eun-Hee): 고려대학교 및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외래교수
정인모(鄭仁模 Jeong, In Mo):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
조경욱(趙卿旭 Cho, Kyung Uk): 서울어린이대공원 수의사,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외래교수
조연숙(趙蓮淑 Cho, Yun Sook): 스누피 동물병원 원장,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 주요 목차
시작하며
1부-폭력에 대항하는 하인리히 뵐의 자세
평화와 저항의 작가
평화주의자 하인리히 뵐-김이섭
전쟁과 폭력에 대한 저항, 그리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
폭력과 그 대안-정인모
하인리히 뵐 작품을 중심으로
저항하라, 그러나 희망을 가져라, 세상은 살 만하다-사지원
하인리히 뵐
2부-철학자의 어깨너머로 바라본 ‘폭력’
법-폭력-정의-문광훈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에 기대어
서약과 ‘동지애-공포’-변광배
사르트르의 사유를 중심으로
3부-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담아내다
작품에서 폭력 읽기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곽정연
데니스 간젤의 영화 〈디 벨레〉(2008)를 중심으로
대도시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이은희
〈도시의 정글 속〉과 〈파이트 클럽〉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소설 속의 폭력 읽기-김인수
4부-동물세계의 폭력
동물의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조경욱
동물 그리고 성폭력-조연숙
주
참고문헌
글쓴이 소개
사용하지 않는 권리는 소멸되고, 사용하지 않는 자유는 시들어버린다. 우리는 권리가 비록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곤 한다.
- 하인리히 뵐
지금 왜 폭력인가?
뉴스와 신문을 접하기가 더욱 거북스러운 요즘이다. 종북몰이와 불통이 미디어와 인터넷을 장악하자 대자보가 대학과 거리, 주요 역사를 뒤덮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었음이 속속 드러난다는 한 시민의 말은 울지 못한 웃음으로 얼굴에 깊은 주름을 하나 더 그려 넣는다. 복지 공약은 확실히 후퇴했고 민영화 논란은 아니라고 할수록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고공행진하는 전셋값에 서민들의 집은 일터에서 멀리,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여전히 집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대란’만 남아있을 뿐이다. 정치적·경제적 양극화는 점점 그 간극이 멀어지다 못해 끊어진 것만 같다.
한국은 라인 강의 기적을 모방하여 한강의 기적을 자랑한다. 세계가 그 기적을 인정한다. 그러나 갑의 횡포를 호소하는 을을 보면, 경제발전과 행복지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한강의 기적은 행복을 잃은 나라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행복을 파괴한 것은 무엇인가? 사회의 간극이 심화될수록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그것을 ‘폭력’으로 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폭력을 4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이 4대 폭력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폭력이 이 네 가지 뿐은 아닐 것이다.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그 폭력의 심각성을 일찍 깨닫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의 비판 정신으로 토론하여 그 결과를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소명출판, 2013)으로 묶어냈다.
학회는 전공자의 토론장이다. 한국하인리히뵐학회는 토론의 열기가 학회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퍼져나가야 된다는 의견에 서로 공감하고,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라인 강의 기적에 도취한 독일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의 양심을 촉구했다. 그는 진정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의 양심이었고, 그 정신이 바로 이 책을 만든 힘이었다. 이 책은 동물의 폭력에서부터 국가정치폭력까지, 자연·철학·소설·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노벨상의 평화주의자 뵐과 그의 삶, 그의 문학
평화주의자 하인리히 뵐
폭력과 그 대안저항하라, 그러나 희망을 가져라, 세상은 살만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자유의 문학세계를 가꾸는 데 공헌했다. 토마스 만 이래로 전 세계에서 그처럼 ‘도덕적 심급審級’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은 독일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인권운동가였으며 평화주의자였다. 베트남 난민을 위한 구조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양심범과 반체제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뵐은 국제적 명성에 힘입어 억압받고 고통받는 전 세계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동유럽 지식인들을 옹호하고 동유럽의 민주화에도 적극 개입했다. 모스크바에서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된 솔제니친을 자신의 저택에 머물게 했고, 소련 당국으로부터 한시적 비자를 발급받은 작가 코펠레프와 그의 부인이 독일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뵐은 소련 공산당수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노벨상 수상자 사하로프의 고르키 유배 철회를 요구했고, 독일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도 소련 당국과 진지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뵐은 1960~70년대 반체제 저항시인 김지하와도 인연이 있다. 하인리히 뵐은 「김지하를 걱정하며」라는 글을 기고했고, 김지하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뵐은 말한다. “우리는 증인으로서, 그리고 동시대인으로서 그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그가 지닌 목소리의 힘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정치 환경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뵐과 김지하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과 진실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김지하와 뵐은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전후 서독의 현실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반전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던 뵐을 사회비판 작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전후 재무장·경제발전 제일의 사회 분위기·그에 따른 환경오염 등의 사회실 문제를 뵐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 개인을 위협하는 일종의 ‘폭력’으로 받아들였다. 전쟁이라는 폭력, 종교적 교권주의가 만들어 내는 왜곡된 종교관, 또 다른 폭력을 불러 올 수도 있는 언론의 폭력성, 그리고 테러에 대한 과도한 방어가 빚어내는 인간 구속의 폭력 등은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뵐 작품의 현실 비판 타깃이 ‘폭력’이라는 데 주안점을 두고, 뵐 작품 전체에 나타난 폭력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공권력에 대한 그의 저항이 정점에 달해 있던 시기의 작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카타리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구조적인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인물이었으나, 어느 날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색 저널리즘의 표적이 되어 ‘명예 살해’를 당한다.(“그들이 아이(카타리나)를 끝장내버릴 것이다. 경찰이 아니면 『차이퉁』이, 그리고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中) 결국 카타리나는 경제권력·국가권력·언론권력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구조적 폭력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 구조하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대항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즉 그녀는 언론의 폭력에 의해 명예를 상실하고 심적으로 파괴되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자를 살해한다.
그러나 뵐은 이로써 언론에 의해 사회적 죽음을 당한 개인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뵐은 이 소설을 통해 폭력의 근성과 원인을 생각해보게 하고, 폭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철학자의 어깨너머로 일상에서 발견한 ‘폭력’
법-폭력-정의서약과 ‘동지애-공포’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데리다의 논리로 해석한 벤야민의 강제력(폭력)과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간단한 서약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폭력 논리를 적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벤야민의 문제적 에세이 「강제력 비판Zur Kritik der Gewalt」은 한편으로는 법과 정의의 관계, 수단과 목적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관련하여 정당한 강제력과 부당한 강제력, 신화적 강제력과 신적 강제력의 구분에 대한 여러 층위의 논쟁과 논의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강제력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법철학적 역사철학적 고찰이 있다. 사회계약의 문제나 노동자의 파업권·국가권력의 전쟁권·개인의 정당방위권·군국주의하의 강제력 사용·경찰제도 등은 이러한 물음을 둘러싼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제력(폭력)에는 어떤 종류의 정당성이 있는가이다. 이것은 더 단순화하면, ‘정치적인 것의 가능성’이 된다. 즉 어떤 사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어떤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질서의 가능성을 창출해내기 위한 에너지의 원천으로서, 벤야민은 정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부패한 법제도를 철폐시킬 수 있는 강제력의 혁명적 전복적 형식과 원천을 유대적 기독교적 일신론적 전통에서 찾아보려 한 것이 아니라 법철학적 차원에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이 책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법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법은 법적 가능성의 전체인가? 혹은 현재적이고 역사적으로 제약된 제도의 표현일 뿐인가? 법은 지배계층의 사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철저하게 위장된 공공성에 불과한가? 그리하여 법적 강제력은 정말이지 도구주의적 한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벤야민 텍스트의 의미를 법철학적으로 가장 깊게 성찰한 사람이 데리다J. Derrida다. 데리다가 『법의 힘-‘권위의 신화적 근거’』(1990)에서 가령 법과 정의의 관계나 법과 해체주의의 관계, 벤야민의 법 이해와 홀로코스트 문제 등에 접근한 관점을 통해, 이 책은 법의 정의로운 가능성―법이 법 자체의 테두리를 넘어서고자 할 때, 그래서 법의 안에서부터 그 밖의 영역으로 열려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정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백만 번 이상의 서약을 한다는 한 무명 시인의 말은, 과장되기는 하지만 한 번쯤 경청할 만하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들 각자의 일상생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서약이 무엇인지, 이 행위의 기저에는 폭력이 놓여 있는데, 이때 이 폭력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자문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그보다 서약 행위의 기저에 폭력이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드물지 않게 접하는 ‘서약serment’ 행위에 주목하고, 이 행위의 의미를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 사르트르J.-P. Sartre(1905~1980)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사르트르의 후기 사상이 집대성된 『변증법적 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약 행위의 기저에는 ‘동지애-공포Fraternite-Terreur’라는 일종의 ‘폭력’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나아가 사르트르의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서약의 한 예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르트르의 공동체 논의에 다가가게 된다.
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해부한 작품들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대도시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소설 속의 폭력 읽기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에도 주목했다. 먼저 인간이 독재 집단을 왜 형성하고, 이러한 집단 안에서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관하여 데니스 간젤의 영화 〈디 벨레Die Welle〉를 분석했다. 〈디 벨레Die Welle〉는, 1967년 미국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론 존스Ron Jones가 학급에서 실제로 수행한 실험에 근거해 제작됐다. 존슨은 나치와 같은 독재정권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학생들이 위험하게 변하자 당초 2주 동안 계획했던 실험을 5일째 되는 날 중단했다. 이 실험은 독재집단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경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데니스 간젤은 그동안 나치정권에 대한 다양한 계몽 작업이 이루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에서 과연 이러한 독재집단의 형성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에 천착하여, 이 영화의 배경을 오늘날의 독일로 옮겨온다. 독재집단을 체험하면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변하여 집단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결국 한 학생의 자살로 영화는 마감한다. 이 영화는 68세대 이후 반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란 독일청소년들도 파시즘적 집단 최면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독재정권이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독재집단 내에서 개인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여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를 프로이트 이론에 입각하여 심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영화분석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 심리를 고찰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는 집단 속 폭력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그 다음은 현대사회의 동기 없는 폭력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의 불안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며 폭력을 일으킨다는 점에 천작하여 브레히트의 연극 〈도시의 정글 속〉과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분석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동기 없는 폭력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거나 자기 파괴적 폭력 이외에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욕망과 분노, 극도의 좌절감과 절망이 폭력의 형태로 폭발한다. 두 작품 모두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가 핵심이다. 아무런 개인적, 심리적 동기 없이 그들은 왜 서로를 공격하고 파괴하는가? 두 작품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비웃듯, 오히려 인간이 인간에게 맹수가 되고 있는 도시 정글에 대한 신화다. 홉스에 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계약의 형태가 사회이며, 대도시는 가장 문명화된 사회다. 하지만 이러한 대도시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맹수가 되고 인간의 늑대화, 늑대의 인간화가 일어난다면 이러한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의 두 작품을 통해 ‘도시의 정글’에서 두 남자가 서로의 ‘괴물 같은 짝패’가 될 수밖에 없는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폭력’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보기도 한다. 동학혁명·갑오경장·친일파·상해임시정부헌법·4·19혁명·5·16군사정변·12·12사태·6·10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여 우리 사회의 폭력이 단순히 우리 시대의 폭력이 아니라 유전된 폭력이라는 것을 현기영의 소설 『누란』을 통해 관철한다. 현기영이 『누란』에서 만든 신조어 ‘파콜로지’는 한국형 정치 폭력이 응축된 개념이다. 그러나 이 파콜로지는 단순히 군부 독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대물림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누란』을 읽으면서 그 유산을 언제 누구로부터 받아왔는지 추적하고, 그 실체를 파악하지 않고는 그 상속을 포기하거나 거부할 수 없으며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누란』은 80년대의 정치폭력이 굴절되면서 새천년까지 이어진 30년간의 국가폭력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 가까이 보면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 멀리 보면 동학혁명, 더 멀리 보면 수많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환국換局·옥사獄事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역사에 떠도는 폭력의 유령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은둔자가 되는 허무성을 보면서, 이 책은 『누란』의 주제를 철저한 절망과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소설 속 철저한 절망을 통해 폭력의 근원을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누란』 속에서 한국의 역사를 ‘달걀 쌓기累卵’로 봄으로써 황사바람에 묻힌 고대 왕국 ‘누란樓欄’이 되지 않겠다는 희망을 찾아낸다.
본능, 동물세계의 폭력을 말하다
동물의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동물 그리고 성폭력
동물들 사이에도 인간사회 못지않은 폭력이 일어난다. 무리 안에서의 서열과 먹잇감에 대한 경쟁이나 교미상대·잠자리 획득을 위해 생길 수도 있고, 영역이나 새끼보호를 위해 발생할 수도 있으며, 다른 개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종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폭력의 모습을 몇몇 동물들의 예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이 여러 각도에서 다루는 동물들의 폭력은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구성원 간 보이지 않는 규칙과 질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싸우고 심지어 죽이는 폭력일지라도 말이다. 동물들은 영역 확보를 위해, 짝짓기를 위해, 먹잇감을 위해 물고 뜯고 서로 깃털을 뽑아가며 싸우는 일련의 폭력적 행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얼핏 동물의 세계가 폭력으로 일궈진 사회로 비춰질 수도 있고, 약육강식에 의한 서열세우기 조직체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싸움과 투쟁은 결코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모습 그대로가 생존을 위한 양식이자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명적이고 잔인한 것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버리고 동물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생존을 위해 자연스러운, 그것도 아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생존의 세계를 말이다.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은 동물의 폭력 중에서도 성폭력에 주목해 보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주제라 자부한다. 성에 관계된 것들은 생명의 순리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강제로 행해지는 성폭력이 동물의 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어떤 형태이며 또 동물들은 왜 그런 강제적 방식을 취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마지막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동물의 성폭력이 어떤 동물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성선택·성전환, 일부일처·일부다처·일처다부·다처다부의 동물의 성과 그 결합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나아가 동물들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폭력에 대한 열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묶어 분류할 수 있을지언정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이 열 가지가 폭력의 모든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책은 폭력에 대하여 독자의 생각을 다시금 환기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심도 깊은 내용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이 책은, 여러 가지 폭력이 뒤엉킨 우리 사회에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 작가 소개
곽정연(郭禎姸 Goak,Jeang-Yean):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이섭(金利燮 Kim, Lee-Seob):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객원교수
김인수(金寅洙 Kim, Inn Su):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문광훈(文光勳 Moon, Gwang Hun): 충북대학교 독문학과 교수
변광배(邊光培 Byun Kwang-Bai):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래교수
사지원(史智媛 Sa, Ji won): 건국대학교 문과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이은희(李銀姬 Lee, Eun-Hee): 고려대학교 및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외래교수
정인모(鄭仁模 Jeong, In Mo):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
조경욱(趙卿旭 Cho, Kyung Uk): 서울어린이대공원 수의사,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외래교수
조연숙(趙蓮淑 Cho, Yun Sook): 스누피 동물병원 원장,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 주요 목차
시작하며
1부-폭력에 대항하는 하인리히 뵐의 자세
평화와 저항의 작가
평화주의자 하인리히 뵐-김이섭
전쟁과 폭력에 대한 저항, 그리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
폭력과 그 대안-정인모
하인리히 뵐 작품을 중심으로
저항하라, 그러나 희망을 가져라, 세상은 살 만하다-사지원
하인리히 뵐
2부-철학자의 어깨너머로 바라본 ‘폭력’
법-폭력-정의-문광훈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에 기대어
서약과 ‘동지애-공포’-변광배
사르트르의 사유를 중심으로
3부-사회에 떠오른 폭력을 담아내다
작품에서 폭력 읽기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곽정연
데니스 간젤의 영화 〈디 벨레〉(2008)를 중심으로
대도시 두 남자의 이유 없는 결투-이은희
〈도시의 정글 속〉과 〈파이트 클럽〉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소설 속의 폭력 읽기-김인수
4부-동물세계의 폭력
동물의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조경욱
동물 그리고 성폭력-조연숙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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