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마르크스는 국가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정치적 전망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 노동자계급을 옭아매는 사슬은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만 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적대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정치적 전망은 공공연히 20세기의 낡은 유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전 세계 국가가 시행하는 글로벌 자본세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본문에서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가
불평등은 인류의 오랜 숙제다. 그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도해 왔다. 《21세기 자본》으로 주목받고 있는 토마 피케티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해설한 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 비판한 책이다. 특히 피케티가 놓쳤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김공회를 포함한 저자 6명은 비판적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젊은 학자들이다. “마르크스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지난 100여 년간의 어떤 지적 흐름들” 안에서 사색, 연구하는 이들로, 이것이 《21세기 자본》을 다룬 여느 책들과 다른 이 책 고유의 시각이 될 것이다.
rg 부등식의 문제
그럼, 피케티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rg 부등식은 결코 자본주의 핵심 모순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본수익률(r)이 사회 전체 모습을 요약해 주는 평균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평균치로서의 r은, 매우 특수한 조건, 즉 모든 형태의 자산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
의 완전경쟁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상이한 형태의 자산들 간의 형태 전환이 상당한 정도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모든 자산 소유자가 ‘수익률’을 두고 서로 경쟁하
는 조건 아래서만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는다고 하는데, 개인 간, 가구 간 소득 격차가 매우 큰 상태에서 이 거시경제적 평균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37쪽에서
즉, 자본수익률(r)은 경제의 전체상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요약한 하나의 추상이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한다면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공허한 추상(empty abstraction)’일 뿐이란 것이다.
생산이 빠진 분배 이론은 가능한가
저자들은 생산 없는 분배 이론은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생산과 분배가 서로 독립적으로 각각 고유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당대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생산과 분배를 통합적으로 보아야만 경제의 메커니즘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르크스에게 분배 영역에서의 수익률 격차란 무엇보다 생산 영역에서 자본들의 위상을 반영한다. 즉 원리상 분배란 생산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생산이 분배에 선행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경제에서 다양한 자본 소유 계급은 직접적 생산을 중심으로 구조적으로 위계화되어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이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자본 소유자들 간의 분배 투쟁을 일차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입각해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의 후반부에서 산업자본과 상업자본, 이자를 낳는 자본(금융), 토지재산 등의 소유자에게 잉여가 치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분배상의 불평등 양상이 바뀐다면 그 일차적인 원인도 생산 과정 전체의 편성 변화에서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44쪽에서
생산은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피케티는 크게 자본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관계를 불평등의 핵심 축으로 삼지만, 정작 이 둘이 오로지 분배 영역에서 직접 마주 서는 일은 드물다. 대다수가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비자본 소유자가 자본 소유자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곳은 다름 아닌 생산의 영역이다. 말할 것도 없이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여기에서 둘의 관계는 각자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 힘들의 관계이며, 때때로 피케티가 국민소득 대비 자본소득 비율(α)이라는 거시적 총량 자료로 파악하는 양자 간 분배는, 사실상 그러한 생산 영역에서의 노자 간 투쟁의 산물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본의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불평등은 노자 간 계급관계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케티는 거의 고려하지 않지만, 노자 간의 계급투쟁
의 결과 상당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자본수익률에 타격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즉, 자본수익률을 저하시키는 데 임금 인상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세제 덕에 불평등이 줄어들었나
《21세기 자본》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즉 피케티는 자신의 정책 처방이 당파적 이해관계보다는 역사적 필연성에 입각한 것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커다란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역사 분석은 ‘내용적으로’도 타당한가?
피케티는 ‘단기 20세기’(1913?1970년대)에 불평등이 줄어들었음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자료로부터 ‘최상위 1%의 소득 몫 추이’, ‘최상위 1%가 보유한 자산 몫 추이’, ‘자본/소득 비율’ 등에 관한 U자 모양의 곡선들을 이끌어낸다. 그는 이런 결과를 낳은 핵심 요인으로 1, 2차 세계대전과 부자에게 가혹하게 적용했던 고율의 세제를 꼽는다. 그 결과 자본이 거두는 세후 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피케티 주장은 이제껏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해 온 20세기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에서 보편적인 소득세가 도입되었고 한때 몇몇 나라에서는 최고세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강력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자본수익률을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으로까지(r 20세기 자본수익률의 동향과 관련해서는 이제껏 마르크스주의 안팎의 많은 진보적 학자가 노동운동이나 공황의 역할을 강조해 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920년대와 70년대의 끔찍한 공황은 이후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의할 정도로 그 여파가 컸고, 그 과정에 노동운동의 융성과 퇴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상식’이었다.
20년대 공황 이후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노동운동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자본과 노동이 일종의 ‘타협’을 도모함으로써 성장의 과실을 양자가 평화롭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하나의 ‘조절 양식(mode of regulation)’이 성립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통했다. 여기서는 최소한 생산성 상승에 비례한 임금 인상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고, 대기업 임원 보수는 제한되었으며, 국가기구에 의한 경제의 조직과 운영이 매우 광범위한 수준에서 이뤄졌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항들은 피케티를 ‘스타덤’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크루그먼조차도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항이다.
1970년대의 공황 이후엔 선진국들에서 노동운동의 퇴조가 두드러졌다. 이는 곧 새롭게 수립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정규직의 증가, 자본의 세계화 심화 등을 의미했고, 자본의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상승시키는 역할도 했다.
결국 피케티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고 세제와 전쟁을 자본수익률 저하의 주원인으로 둠으로써 그간의 우리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역사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1%에 집중한다고 하위 50%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을 중시하는 피케티의 방식에는 중요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 최상위 1%의 소득이 줄기만 해도 전체적인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환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체 소득액이 줄어 최상위 1%를 제외한 모든 소득분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각각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단순히 최상위 1%에 징벌 수준의 과세만 해도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다. 이 경우, “상위 1%의 소득이 줄어들 뿐 아니라 그렇게 줄어든 소득이 못 사는 사람들에게 가야지 진정으로 불평등이 줄어든 것이다”고 반박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첫째, 피케티는 세금을 걷는 데만 신경을 쓰지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한다. 그러나 20세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금은 걷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세입 측면만 놓고 본다면, 피케티가 찬양하는 대로 꽤 오랜 기간 90% 이상의 ‘몰수’ 수준의 최고소득세율을 유지했던 20세기 미국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국은 세금을 불필요한 군비 경쟁 등에 낭비했다. 피케티가 이런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불평등을 다루는 700여 쪽에 달하는 책에서 최상위 부자들에 대한 과세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정작 불평등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사항을 너무 소홀하게 다뤘다.
둘째, 최상위 1%의 소득이 최하위 50%에게로 가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바로 임금 인상이다. 이를테면 측정 방식에 따라 최대 800만 명이 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을 전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피케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과가 곧장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21세기 자본》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99퍼센트를 위한 경제학인가, 9퍼센트를 위한 경제학인가
피케티가 최상위 1%를 공격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상위 1%는 실제 자신들이 노동한 것과 아무 실질적인 연관성이 없는 고액 연봉을 받거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통해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부를 쌓는다. 이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겨 이러한 불로소득을 사회적으로 거둬들이자는 것이 피케티의 기본 발상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실현된다면 그 자체로 사회의 공공선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1%에 대한 공격이 곧장 99%의 옹호는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실상 1%를 곧장 잇는 9%나 19%만을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피케티는 글로벌 누진세 도입 등 세제 개혁을 통해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좀더 민주적
인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전망한다. 좋은 말이지만, 그는 현재 위기의 주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최상위 1%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일정한 비용 분담을 하고 뒤로 슬쩍 물러나 있는 사이에 그 뒤에 있는 상위 9%들이 득세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케티의 불평등론을, ‘9%를 위한 불평등론’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위 50%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없는 그의 불평등론은 ‘차 떼고 포 뗀 불평등론’일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누구인가
아울러 이 책은 그간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피케티의 정치적 행적도 추적해 보았다. 2012년 대선 직전 사회당과 피케티가 ‘조세 혁명’을 키워드로 하는 정책 자료집과 단행본을 발표하고, 2012년 2월 올랑드가 소위 ‘75% 부유세’를 발표하면서 피케티는 사회당 조세정책의 이론가로 평가됐다. 그러나 여러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75% 부유세’와 피케티 조세안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피케티는 사회당 조세 개혁의 비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지만, 명목상의 부유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으로 선회한 사회당의 본질적 한계를 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민주의 노선을 상당 부분 포기한 사회당 정부의 현실은 부분적인 ‘부자 통제’와 ‘신자유주의 지속 발전’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rg라는 부등식을 중심으로 한 피케티의 자본주의 및 그 안에서의 불평등 동학에 대한 분석은 엉성하고, 불평등 심화에 대한 자본 과세라는 그의 처방은 핵심을 비껴갔다고 본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의 절반을 보내고 있는 지금, 불평등 심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심장이자 근육이자 세포인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더없이 초라해졌다는 데 있다. 이를 부정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두는 불평등 논의는 모두 틀렸다고 못 박는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공회
서울과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 국민대에서 강의한다.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성립과 발달에 관한 이론적 탐구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을 지역 차원에서 좀더 구체화하려 노력 중이다. 경제사상의 발달사 및 사회과학에서 경제학의 위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저자 : 김어진
고려대를 졸업하고 경상대에서 제국주의 이론을 통해서 본 한국 자본주의의 지위와 성격 검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 연구교수다. 제국주의뿐 아니라 아류 제국주의 국가군과, 세계화와 글로벌 대기업의 변화 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반전 네트워크 단체인 반전평화연대(준) 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1장. 99%를 위한 경제학인가, 9%를 위한 경제학인가_김공회
2장. 불평등인가, 착취인가_최철웅
3장. 피케티의 자본주의_이정구
4장. 누가 자본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_이재욱
5장. 세계적 불평등의 뿌리는 무엇인가_김어진
6장. 세금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수 있을까_김공회
7장. 글로벌 자본세라는 상상_김어진
8장. 피케티는 누구인가_오창룡
마르크스는 국가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정치적 전망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 노동자계급을 옭아매는 사슬은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만 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적대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정치적 전망은 공공연히 20세기의 낡은 유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전 세계 국가가 시행하는 글로벌 자본세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본문에서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가
불평등은 인류의 오랜 숙제다. 그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도해 왔다. 《21세기 자본》으로 주목받고 있는 토마 피케티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해설한 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 비판한 책이다. 특히 피케티가 놓쳤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김공회를 포함한 저자 6명은 비판적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젊은 학자들이다. “마르크스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지난 100여 년간의 어떤 지적 흐름들” 안에서 사색, 연구하는 이들로, 이것이 《21세기 자본》을 다룬 여느 책들과 다른 이 책 고유의 시각이 될 것이다.
rg 부등식의 문제
그럼, 피케티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rg 부등식은 결코 자본주의 핵심 모순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본수익률(r)이 사회 전체 모습을 요약해 주는 평균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평균치로서의 r은, 매우 특수한 조건, 즉 모든 형태의 자산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
의 완전경쟁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상이한 형태의 자산들 간의 형태 전환이 상당한 정도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모든 자산 소유자가 ‘수익률’을 두고 서로 경쟁하
는 조건 아래서만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는다고 하는데, 개인 간, 가구 간 소득 격차가 매우 큰 상태에서 이 거시경제적 평균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37쪽에서
즉, 자본수익률(r)은 경제의 전체상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요약한 하나의 추상이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한다면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공허한 추상(empty abstraction)’일 뿐이란 것이다.
생산이 빠진 분배 이론은 가능한가
저자들은 생산 없는 분배 이론은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생산과 분배가 서로 독립적으로 각각 고유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당대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생산과 분배를 통합적으로 보아야만 경제의 메커니즘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르크스에게 분배 영역에서의 수익률 격차란 무엇보다 생산 영역에서 자본들의 위상을 반영한다. 즉 원리상 분배란 생산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생산이 분배에 선행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경제에서 다양한 자본 소유 계급은 직접적 생산을 중심으로 구조적으로 위계화되어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이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자본 소유자들 간의 분배 투쟁을 일차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입각해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의 후반부에서 산업자본과 상업자본, 이자를 낳는 자본(금융), 토지재산 등의 소유자에게 잉여가 치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분배상의 불평등 양상이 바뀐다면 그 일차적인 원인도 생산 과정 전체의 편성 변화에서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44쪽에서
생산은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피케티는 크게 자본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관계를 불평등의 핵심 축으로 삼지만, 정작 이 둘이 오로지 분배 영역에서 직접 마주 서는 일은 드물다. 대다수가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비자본 소유자가 자본 소유자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곳은 다름 아닌 생산의 영역이다. 말할 것도 없이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여기에서 둘의 관계는 각자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 힘들의 관계이며, 때때로 피케티가 국민소득 대비 자본소득 비율(α)이라는 거시적 총량 자료로 파악하는 양자 간 분배는, 사실상 그러한 생산 영역에서의 노자 간 투쟁의 산물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본의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불평등은 노자 간 계급관계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케티는 거의 고려하지 않지만, 노자 간의 계급투쟁
의 결과 상당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자본수익률에 타격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즉, 자본수익률을 저하시키는 데 임금 인상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세제 덕에 불평등이 줄어들었나
《21세기 자본》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즉 피케티는 자신의 정책 처방이 당파적 이해관계보다는 역사적 필연성에 입각한 것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커다란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역사 분석은 ‘내용적으로’도 타당한가?
피케티는 ‘단기 20세기’(1913?1970년대)에 불평등이 줄어들었음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자료로부터 ‘최상위 1%의 소득 몫 추이’, ‘최상위 1%가 보유한 자산 몫 추이’, ‘자본/소득 비율’ 등에 관한 U자 모양의 곡선들을 이끌어낸다. 그는 이런 결과를 낳은 핵심 요인으로 1, 2차 세계대전과 부자에게 가혹하게 적용했던 고율의 세제를 꼽는다. 그 결과 자본이 거두는 세후 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피케티 주장은 이제껏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해 온 20세기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에서 보편적인 소득세가 도입되었고 한때 몇몇 나라에서는 최고세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강력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자본수익률을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으로까지(r 20세기 자본수익률의 동향과 관련해서는 이제껏 마르크스주의 안팎의 많은 진보적 학자가 노동운동이나 공황의 역할을 강조해 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920년대와 70년대의 끔찍한 공황은 이후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의할 정도로 그 여파가 컸고, 그 과정에 노동운동의 융성과 퇴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상식’이었다.
20년대 공황 이후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노동운동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자본과 노동이 일종의 ‘타협’을 도모함으로써 성장의 과실을 양자가 평화롭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하나의 ‘조절 양식(mode of regulation)’이 성립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통했다. 여기서는 최소한 생산성 상승에 비례한 임금 인상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고, 대기업 임원 보수는 제한되었으며, 국가기구에 의한 경제의 조직과 운영이 매우 광범위한 수준에서 이뤄졌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항들은 피케티를 ‘스타덤’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크루그먼조차도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항이다.
1970년대의 공황 이후엔 선진국들에서 노동운동의 퇴조가 두드러졌다. 이는 곧 새롭게 수립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정규직의 증가, 자본의 세계화 심화 등을 의미했고, 자본의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상승시키는 역할도 했다.
결국 피케티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고 세제와 전쟁을 자본수익률 저하의 주원인으로 둠으로써 그간의 우리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역사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1%에 집중한다고 하위 50%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을 중시하는 피케티의 방식에는 중요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 최상위 1%의 소득이 줄기만 해도 전체적인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환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체 소득액이 줄어 최상위 1%를 제외한 모든 소득분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각각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단순히 최상위 1%에 징벌 수준의 과세만 해도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다. 이 경우, “상위 1%의 소득이 줄어들 뿐 아니라 그렇게 줄어든 소득이 못 사는 사람들에게 가야지 진정으로 불평등이 줄어든 것이다”고 반박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첫째, 피케티는 세금을 걷는 데만 신경을 쓰지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한다. 그러나 20세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금은 걷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세입 측면만 놓고 본다면, 피케티가 찬양하는 대로 꽤 오랜 기간 90% 이상의 ‘몰수’ 수준의 최고소득세율을 유지했던 20세기 미국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국은 세금을 불필요한 군비 경쟁 등에 낭비했다. 피케티가 이런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불평등을 다루는 700여 쪽에 달하는 책에서 최상위 부자들에 대한 과세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정작 불평등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사항을 너무 소홀하게 다뤘다.
둘째, 최상위 1%의 소득이 최하위 50%에게로 가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바로 임금 인상이다. 이를테면 측정 방식에 따라 최대 800만 명이 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을 전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피케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과가 곧장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21세기 자본》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99퍼센트를 위한 경제학인가, 9퍼센트를 위한 경제학인가
피케티가 최상위 1%를 공격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상위 1%는 실제 자신들이 노동한 것과 아무 실질적인 연관성이 없는 고액 연봉을 받거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통해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부를 쌓는다. 이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겨 이러한 불로소득을 사회적으로 거둬들이자는 것이 피케티의 기본 발상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실현된다면 그 자체로 사회의 공공선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1%에 대한 공격이 곧장 99%의 옹호는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실상 1%를 곧장 잇는 9%나 19%만을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피케티는 글로벌 누진세 도입 등 세제 개혁을 통해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좀더 민주적
인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전망한다. 좋은 말이지만, 그는 현재 위기의 주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최상위 1%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일정한 비용 분담을 하고 뒤로 슬쩍 물러나 있는 사이에 그 뒤에 있는 상위 9%들이 득세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케티의 불평등론을, ‘9%를 위한 불평등론’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위 50%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없는 그의 불평등론은 ‘차 떼고 포 뗀 불평등론’일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누구인가
아울러 이 책은 그간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피케티의 정치적 행적도 추적해 보았다. 2012년 대선 직전 사회당과 피케티가 ‘조세 혁명’을 키워드로 하는 정책 자료집과 단행본을 발표하고, 2012년 2월 올랑드가 소위 ‘75% 부유세’를 발표하면서 피케티는 사회당 조세정책의 이론가로 평가됐다. 그러나 여러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75% 부유세’와 피케티 조세안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피케티는 사회당 조세 개혁의 비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지만, 명목상의 부유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으로 선회한 사회당의 본질적 한계를 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민주의 노선을 상당 부분 포기한 사회당 정부의 현실은 부분적인 ‘부자 통제’와 ‘신자유주의 지속 발전’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rg라는 부등식을 중심으로 한 피케티의 자본주의 및 그 안에서의 불평등 동학에 대한 분석은 엉성하고, 불평등 심화에 대한 자본 과세라는 그의 처방은 핵심을 비껴갔다고 본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의 절반을 보내고 있는 지금, 불평등 심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심장이자 근육이자 세포인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더없이 초라해졌다는 데 있다. 이를 부정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두는 불평등 논의는 모두 틀렸다고 못 박는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공회
서울과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 국민대에서 강의한다.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성립과 발달에 관한 이론적 탐구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심을 지역 차원에서 좀더 구체화하려 노력 중이다. 경제사상의 발달사 및 사회과학에서 경제학의 위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저자 : 김어진
고려대를 졸업하고 경상대에서 제국주의 이론을 통해서 본 한국 자본주의의 지위와 성격 검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 연구교수다. 제국주의뿐 아니라 아류 제국주의 국가군과, 세계화와 글로벌 대기업의 변화 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반전 네트워크 단체인 반전평화연대(준) 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1장. 99%를 위한 경제학인가, 9%를 위한 경제학인가_김공회
2장. 불평등인가, 착취인가_최철웅
3장. 피케티의 자본주의_이정구
4장. 누가 자본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_이재욱
5장. 세계적 불평등의 뿌리는 무엇인가_김어진
6장. 세금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수 있을까_김공회
7장. 글로벌 자본세라는 상상_김어진
8장. 피케티는 누구인가_오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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