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다가오는 대전환: ‘세계는 수십년간 계속될 험난하고 어두운 시기에 들어섰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비롯한 세계적 명성의 사회학자 5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 500년을 이어온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들이 그리는 미래상은 대체로 암울하다. 2040년 내에 노동 가능 인구의 40퍼센트, 나아가 70퍼센트까지 치솟을 실업률, 수백만의 인명손실을 가져올 극적인 생태위기, 전쟁을 포함한 폭력적인 체제 이행, 0퍼센트에 가까운 저성장, 격심한 양극화 등 사회갈등의 고조로 인한 갖가지 형태의 반체제운동과 혼란 이 코앞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 가능성들 하나하나가 일어날 확률이나 구체적인 양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인류의 삶을 압도적으로 지배해온, 마침내 인간 본성에 따른 유일하고 영원한 체제로 여겨지게 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과연 반복되는 위기를 넘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다른 질문들로 이어진다. 1930년대 대공황, 70년대 경기침체,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처럼 반복되는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그것을 없앨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정상’으로 복귀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사회의 변천을 사회적 힘과 갈등의 작동으로 분석하는 ‘거시 역사사회학’(macrohisto-
rical science)을 토대로 한 이 책은 과연 어떻게 현재의 위기를 인식할까. 20세기 공산주의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조만간 붕괴할 수도 있고 혹은 더이상 자본주의가 세계 유일의 압도적인 체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다른 길을 찾는 과정에서 지난 세기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의 폭력적인 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이후의 전환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시기에는 알지 못했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다가올 전환의 실체를 규명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가능한 미래가 ‘더 좋은’ 방향을 향할 수 있을지 전망하는 것, 이것이 이들 석학이 이 야심찬 저서를 통해 토론의 장을 여는 이유다.
2014년 전세계적 열풍을 몰고 온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이 자본주의의 과거를 돌아보며 부의 극심한 편재를 지적했다면, 이제는 이 체제의 미래를 논할 때다. 5인의 사회학자는 각자의 연구영역과 이론적 입장에 따라 위기의 원인과 이후 자본주의의 전망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다만, 전환과 관련해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전환이 열어젖힐 모든 가능성 앞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집단적 선택, 즉 정치적 의지라는 점이다. 우리는 전환과 함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더 좋은’ 선택의 출발점이마련된다.
첫번째 진단: 최후의 위기가 닥쳐온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랜들 콜린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이고 최종적인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며, 20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자본주의 이후’로의 이행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한다.
특히 세계체제론의 선구적 이론가답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현 세계의 위기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내재하는 속성에서 비롯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체제며, 모든 체제에는 수명이 있다.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의 가장 지배적인 특징은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다. 이 체제는 팽창과 수축의 주기(꼰드라띠예프 싸이클)를 따라 작동한다. 그러나 이제 역사적 자본주의는 정상 상태로의 회복이 불가능한 국면을 맞고 있다. 기존의 이윤 창출, 즉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산업을 재배치하면서 이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계 안의 주변부가 더이상 남지 않게 되면서 한계에 부딪힌다. 1970년대 이래 가속화된 금융화를 통한 이윤 창출은 결국에는 모든 유효수요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동·복지·환경 등에서의 비용 상승이 생산자의 이윤 추구를 점점 더 압박하며, 이로써 자본은 그동안 이뤄온 ‘끝없는 축적’을 이뤄내지 못할 때에 이르게 된다. 월러스틴은 21세기 중엽이 그 시기라고 예측한다.
랜들 콜린스는 여기서 그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원인은 첨단기술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메커니즘이다. 산업혁명 이래 기계화로 인한 인간노동의 대체는 계속 있어온 일이다. 그간에는 주로 3D업종, 저임금 노동이 대체되어왔고, 중산층의 일자리가 늘면서 그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컴퓨터화가 사무직·전문직·관리직 등 중간계급의 노동을 대체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면에서 주요 역할을 맡아온 중간계급이 점차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날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동의 기술적 대체로 인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콜린스는 과거의 탈출로를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새로운 과학기술이 창출하는 새로운 일자리, 둘째, 시장의 지리적 확산, 셋째, 이윤을 고도화하는 메타 금융시장, 넷째, 정부 고용과 정부 투자, 다섯째, 학력 자격조건의 상승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탈출로는 모두 봉쇄되었다는 것이 콜린스의 진단이다.
두번째 진단: 최후의 위기는 없다
마이클 맨과 크레이그 캘훈은 현 세계가 큰 전환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데 동의하지만, 자본주의가 종말을 향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들은 월러스틴의 견해 즉 자본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체제로 파악하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일 뿐 아니라 법적·제도적 체제다. 그는 자본주의가 체제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는 운동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보지 않으며, 법칙과 주기성에 따르지 않으므로 위기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파악한다.
마이클 맨은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 위기가 아닌 각 나라, 지역별로 개개의 지정학적 위상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위기라고 본다. 맨은 사회가 이데올로기·경제·군사·정치 권력관계라는 다중의 네트워크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 서 있다. 네가지 권력의 원천들은 다양한 범주의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우연하게 교차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이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들이 있다. 핵전쟁과 기후변화다. 이것은 양차대전보다 훨씬 더 위태롭고 진정으로 체제적이며 지구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재앙의 씨나리오다.
크레이그 캘훈은 2008년의 금융위기가 70년대 이래의 세계적 금융화의 위기였다고 본다. 금융화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향상하고 기존 구조에 대한 창조적 파괴를 감행하지만, 단기이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그 성장을 저해한다. 실물가치 생산자보다 금융거래자에게 더 많이 보상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한다. 금융화는 또한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인 제도와 규제를 약화시켰다. 이는 비공식 부문(공동체의 소규모 물물교환, 협동조합, 그리고 지하경제를 포함하는)을 팽창시킨다. 이것이 지금의 세계 현실이다. 다만 캘훈은 이 불안정과 불평등이 곧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기반을 둔 다양한 작동요소들은 다양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국 대 존속: 종말인가, 진동인가, 변형인가
위기에 대한 진단은 다를지언정 다섯명의 저자 모두 자본주의 체제를 현 상태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동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 우리 세계 앞에 놓일 선택지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위계질서·착취·양극화 등 현 체제의 특징을 그대로 지닌,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체제, 또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그러나 아직까지 현존한 적이 없는 체제의 두 갈래다. 현재 양자를 대표하는 진영(다보스포럼 대 세계사회포럼)은 각기 분열되어 있으며, 후속 체제를 위한 투쟁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새로운 체제의 구체적인 양상은 알 수 없다. 그 체제는 생성된 이후 전지구적 현실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모하면서 그것의 세부를 설계해갈 것이다.
월러스틴은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후속 체제를 둘러싼 정치투쟁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고, 더 바람직한 결과를 향한 선택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는 소규모의 사회적 동원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때 자유의지는 결정론을 압도할 수 있다. 그는 더 좋은 세계체제를 이룰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 그리고 이 확률은 ‘큰 것이지 작은 것이 아니다’.
콜린스는 이 파국이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적 형태와 사회주의적 형태의 정치경제체제 사이에서 진동할 것이라고 본다. 그가 보기에 탈출로가 모두 닫힌 자본주의의 유일한 돌파구는 사회주의적 소유, 강력한 규제와 개혁을 뜻하는 어떤 종류의 비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는 혁명을 포함한 전면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움직임은 파시즘적으로 나아갈 수도, 민주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제도혁명이다.
자본주의가 변형된 형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의 전망은 무엇인가. 맨이 생각하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씨나리오는 ‘저성장 세계자본주의’의 지속이다. 그는 전환을 둘러싸고 두가지 대안적 구상을 제시한다. 구조적 고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가운데 인구의 3분의 1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억압당하는, ‘더 많이 착취하되 도전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그 하나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저성장하는 자본주의로 안정될 것이다. 맨은 이렇게 묻는다. “1퍼센트 성장률이 왜 자본주의의 위기여야 하는가.” 10퍼센트 내외의 실업률을 유지하며 0~1퍼센트 대의 저성장을 지속하는 자본주의, 이는 온갖 부양 노력에도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미국의 최근 상황이 이미 실현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역시 또 하나의 가능성 높은 변형태로 제시된다.
게오르기 데를루기얀은 이들이 그리는 이행 내지 변형의 씨나리오 앞에서 구소련과 중국을 대비해 시장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양상과 결과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서구의 갈채를 받던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단숨에 국가를 기업으로, 국가 관료를 기업가로 변신시키려는 무모한 시도 속에서 무참히 실패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징검다리 건너듯 한발짝씩 강을 건너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고, 경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집권당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구소련과 중국의 혁명과 독재와 폭력이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지를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항들: ‘오랜 꿈은 실현될 수 있다’
이 책의 전망은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큰 충격과 도전을 분명히 예고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전망이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큰 위기와 변형이 반드시 세계의 종말은 아닌 것이다. 핵전쟁이나 자연환경의 붕괴 같은 인류 절멸의 씨나리오는 그간의 거듭된 경고 속에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수정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능한 씨나리오는 가능한 좋은 미래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결국 다섯명 저자들이 보기에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하나의 희망적인 비전’이다. 이들이 분석하고 예측한 것은 더 타당하거나 덜 타당한 어떤 씨나리오가 아니라 세계와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의 역학이다.
이 책은 실패한 20세기의 체제들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색다른 낙관 속에서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막다른 위기는 인간이 미래의 정치경제체제에서 하나의 유토피아적 이념을 실현할 토대를 세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자본주의 이후는 죽음 같은 정체기도, 영원한 유토피아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가올 도전의 시기에 더 좋은 방향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의지와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란 없으므로.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능성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간사회의 노력과 의지, 이것이 이들 다섯 학자들이 서두에서 결론까지 일관되게 강조하는 바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뉴욕주립 빙엄튼대 페르낭브로델센터 명예소장, 예일대 수석연구학자. 국제사회학회(ISA)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체제 분석을 선구적으로 제기했으며, 한국에 『근대세계체제』『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지식의 불확실성』 등 많은 저서가 소개되어 있다.
저자 : 랜들 콜린스 Randall Collins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 교수. 정치경제적 변동에 대한 거시역사사회학의 대가로서 손꼽히는 현대의 사회학자다. 한국에 『사회학 본능』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 : 마이클 맨 Michael Mann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사회학 석좌교수. 권력이 군사·경제·정치·이데올로기의 다원적 근거를 가지며 역사적으로 변해왔음을 밝히며 그 원천을 파헤쳐왔다.
저자 : 게오르기 데를루기얀 Georgi Derluguian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NYU Abu Dhabi) 사회학 교수. 민족주의 지식인의 사회적 기원과 시장개혁의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6년 『더 타임즈』의 서평 섹션의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 : 크레이그 캘훈
런던정경대(LSE) 학장. 비판이론의 전통을 확장해 실증적 역사·사회연구에 접목하여 사회과학의 공적 기여를 강조했다.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회장을 역임했다.
역자 : 성백용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웅 만들기』(공저), 역서로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세 위계: 봉건제의 상상세계』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생활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공동서론다음번의 대전환006
제1장구조적 위기, 또는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에게 더이상 득이 되지 않는 이유 / 이매뉴얼 월러스틴021
제2장중간계급 노동의 종말: 더이상 탈출구는 없다 / 랜들 콜린스075
제3장종말이 가까울지 모른다, 그런데 누구에게? / 마이클 맨142
제4장공산주의였던 체제 / 게오르기 데를루기얀200
제5장무엇이 지금 자본주의를 위협하는가? / 크레이그 캘훈266
공동결론진지해지기330
옮긴이의 말391
지은이, 옮긴이 소개401
찾아보기403
다가오는 대전환: ‘세계는 수십년간 계속될 험난하고 어두운 시기에 들어섰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비롯한 세계적 명성의 사회학자 5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 500년을 이어온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들이 그리는 미래상은 대체로 암울하다. 2040년 내에 노동 가능 인구의 40퍼센트, 나아가 70퍼센트까지 치솟을 실업률, 수백만의 인명손실을 가져올 극적인 생태위기, 전쟁을 포함한 폭력적인 체제 이행, 0퍼센트에 가까운 저성장, 격심한 양극화 등 사회갈등의 고조로 인한 갖가지 형태의 반체제운동과 혼란 이 코앞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 가능성들 하나하나가 일어날 확률이나 구체적인 양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인류의 삶을 압도적으로 지배해온, 마침내 인간 본성에 따른 유일하고 영원한 체제로 여겨지게 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과연 반복되는 위기를 넘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다른 질문들로 이어진다. 1930년대 대공황, 70년대 경기침체,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처럼 반복되는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그것을 없앨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정상’으로 복귀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사회의 변천을 사회적 힘과 갈등의 작동으로 분석하는 ‘거시 역사사회학’(macrohisto-
rical science)을 토대로 한 이 책은 과연 어떻게 현재의 위기를 인식할까. 20세기 공산주의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조만간 붕괴할 수도 있고 혹은 더이상 자본주의가 세계 유일의 압도적인 체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다른 길을 찾는 과정에서 지난 세기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의 폭력적인 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이후의 전환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시기에는 알지 못했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다가올 전환의 실체를 규명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가능한 미래가 ‘더 좋은’ 방향을 향할 수 있을지 전망하는 것, 이것이 이들 석학이 이 야심찬 저서를 통해 토론의 장을 여는 이유다.
2014년 전세계적 열풍을 몰고 온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이 자본주의의 과거를 돌아보며 부의 극심한 편재를 지적했다면, 이제는 이 체제의 미래를 논할 때다. 5인의 사회학자는 각자의 연구영역과 이론적 입장에 따라 위기의 원인과 이후 자본주의의 전망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다만, 전환과 관련해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전환이 열어젖힐 모든 가능성 앞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집단적 선택, 즉 정치적 의지라는 점이다. 우리는 전환과 함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더 좋은’ 선택의 출발점이마련된다.
첫번째 진단: 최후의 위기가 닥쳐온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랜들 콜린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이고 최종적인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며, 20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자본주의 이후’로의 이행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한다.
특히 세계체제론의 선구적 이론가답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현 세계의 위기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내재하는 속성에서 비롯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체제며, 모든 체제에는 수명이 있다. 하나의 체제로서 자본주의의 가장 지배적인 특징은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다. 이 체제는 팽창과 수축의 주기(꼰드라띠예프 싸이클)를 따라 작동한다. 그러나 이제 역사적 자본주의는 정상 상태로의 회복이 불가능한 국면을 맞고 있다. 기존의 이윤 창출, 즉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산업을 재배치하면서 이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계 안의 주변부가 더이상 남지 않게 되면서 한계에 부딪힌다. 1970년대 이래 가속화된 금융화를 통한 이윤 창출은 결국에는 모든 유효수요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동·복지·환경 등에서의 비용 상승이 생산자의 이윤 추구를 점점 더 압박하며, 이로써 자본은 그동안 이뤄온 ‘끝없는 축적’을 이뤄내지 못할 때에 이르게 된다. 월러스틴은 21세기 중엽이 그 시기라고 예측한다.
랜들 콜린스는 여기서 그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원인은 첨단기술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메커니즘이다. 산업혁명 이래 기계화로 인한 인간노동의 대체는 계속 있어온 일이다. 그간에는 주로 3D업종, 저임금 노동이 대체되어왔고, 중산층의 일자리가 늘면서 그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컴퓨터화가 사무직·전문직·관리직 등 중간계급의 노동을 대체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면에서 주요 역할을 맡아온 중간계급이 점차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날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동의 기술적 대체로 인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콜린스는 과거의 탈출로를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새로운 과학기술이 창출하는 새로운 일자리, 둘째, 시장의 지리적 확산, 셋째, 이윤을 고도화하는 메타 금융시장, 넷째, 정부 고용과 정부 투자, 다섯째, 학력 자격조건의 상승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탈출로는 모두 봉쇄되었다는 것이 콜린스의 진단이다.
두번째 진단: 최후의 위기는 없다
마이클 맨과 크레이그 캘훈은 현 세계가 큰 전환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데 동의하지만, 자본주의가 종말을 향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들은 월러스틴의 견해 즉 자본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체제로 파악하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일 뿐 아니라 법적·제도적 체제다. 그는 자본주의가 체제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는 운동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보지 않으며, 법칙과 주기성에 따르지 않으므로 위기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파악한다.
마이클 맨은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 위기가 아닌 각 나라, 지역별로 개개의 지정학적 위상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위기라고 본다. 맨은 사회가 이데올로기·경제·군사·정치 권력관계라는 다중의 네트워크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 서 있다. 네가지 권력의 원천들은 다양한 범주의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우연하게 교차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이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들이 있다. 핵전쟁과 기후변화다. 이것은 양차대전보다 훨씬 더 위태롭고 진정으로 체제적이며 지구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재앙의 씨나리오다.
크레이그 캘훈은 2008년의 금융위기가 70년대 이래의 세계적 금융화의 위기였다고 본다. 금융화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향상하고 기존 구조에 대한 창조적 파괴를 감행하지만, 단기이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그 성장을 저해한다. 실물가치 생산자보다 금융거래자에게 더 많이 보상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한다. 금융화는 또한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인 제도와 규제를 약화시켰다. 이는 비공식 부문(공동체의 소규모 물물교환, 협동조합, 그리고 지하경제를 포함하는)을 팽창시킨다. 이것이 지금의 세계 현실이다. 다만 캘훈은 이 불안정과 불평등이 곧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기반을 둔 다양한 작동요소들은 다양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국 대 존속: 종말인가, 진동인가, 변형인가
위기에 대한 진단은 다를지언정 다섯명의 저자 모두 자본주의 체제를 현 상태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동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 우리 세계 앞에 놓일 선택지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위계질서·착취·양극화 등 현 체제의 특징을 그대로 지닌,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체제, 또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그러나 아직까지 현존한 적이 없는 체제의 두 갈래다. 현재 양자를 대표하는 진영(다보스포럼 대 세계사회포럼)은 각기 분열되어 있으며, 후속 체제를 위한 투쟁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새로운 체제의 구체적인 양상은 알 수 없다. 그 체제는 생성된 이후 전지구적 현실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모하면서 그것의 세부를 설계해갈 것이다.
월러스틴은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후속 체제를 둘러싼 정치투쟁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고, 더 바람직한 결과를 향한 선택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는 소규모의 사회적 동원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때 자유의지는 결정론을 압도할 수 있다. 그는 더 좋은 세계체제를 이룰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 그리고 이 확률은 ‘큰 것이지 작은 것이 아니다’.
콜린스는 이 파국이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적 형태와 사회주의적 형태의 정치경제체제 사이에서 진동할 것이라고 본다. 그가 보기에 탈출로가 모두 닫힌 자본주의의 유일한 돌파구는 사회주의적 소유, 강력한 규제와 개혁을 뜻하는 어떤 종류의 비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는 혁명을 포함한 전면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움직임은 파시즘적으로 나아갈 수도, 민주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제도혁명이다.
자본주의가 변형된 형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의 전망은 무엇인가. 맨이 생각하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씨나리오는 ‘저성장 세계자본주의’의 지속이다. 그는 전환을 둘러싸고 두가지 대안적 구상을 제시한다. 구조적 고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가운데 인구의 3분의 1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억압당하는, ‘더 많이 착취하되 도전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그 하나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저성장하는 자본주의로 안정될 것이다. 맨은 이렇게 묻는다. “1퍼센트 성장률이 왜 자본주의의 위기여야 하는가.” 10퍼센트 내외의 실업률을 유지하며 0~1퍼센트 대의 저성장을 지속하는 자본주의, 이는 온갖 부양 노력에도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미국의 최근 상황이 이미 실현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역시 또 하나의 가능성 높은 변형태로 제시된다.
게오르기 데를루기얀은 이들이 그리는 이행 내지 변형의 씨나리오 앞에서 구소련과 중국을 대비해 시장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양상과 결과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서구의 갈채를 받던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단숨에 국가를 기업으로, 국가 관료를 기업가로 변신시키려는 무모한 시도 속에서 무참히 실패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징검다리 건너듯 한발짝씩 강을 건너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고, 경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집권당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구소련과 중국의 혁명과 독재와 폭력이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지를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항들: ‘오랜 꿈은 실현될 수 있다’
이 책의 전망은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큰 충격과 도전을 분명히 예고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전망이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큰 위기와 변형이 반드시 세계의 종말은 아닌 것이다. 핵전쟁이나 자연환경의 붕괴 같은 인류 절멸의 씨나리오는 그간의 거듭된 경고 속에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수정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능한 씨나리오는 가능한 좋은 미래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결국 다섯명 저자들이 보기에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하나의 희망적인 비전’이다. 이들이 분석하고 예측한 것은 더 타당하거나 덜 타당한 어떤 씨나리오가 아니라 세계와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의 역학이다.
이 책은 실패한 20세기의 체제들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색다른 낙관 속에서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막다른 위기는 인간이 미래의 정치경제체제에서 하나의 유토피아적 이념을 실현할 토대를 세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자본주의 이후는 죽음 같은 정체기도, 영원한 유토피아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가올 도전의 시기에 더 좋은 방향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의지와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란 없으므로.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능성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간사회의 노력과 의지, 이것이 이들 다섯 학자들이 서두에서 결론까지 일관되게 강조하는 바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뉴욕주립 빙엄튼대 페르낭브로델센터 명예소장, 예일대 수석연구학자. 국제사회학회(ISA)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체제 분석을 선구적으로 제기했으며, 한국에 『근대세계체제』『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지식의 불확실성』 등 많은 저서가 소개되어 있다.
저자 : 랜들 콜린스 Randall Collins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 교수. 정치경제적 변동에 대한 거시역사사회학의 대가로서 손꼽히는 현대의 사회학자다. 한국에 『사회학 본능』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 : 마이클 맨 Michael Mann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사회학 석좌교수. 권력이 군사·경제·정치·이데올로기의 다원적 근거를 가지며 역사적으로 변해왔음을 밝히며 그 원천을 파헤쳐왔다.
저자 : 게오르기 데를루기얀 Georgi Derluguian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NYU Abu Dhabi) 사회학 교수. 민족주의 지식인의 사회적 기원과 시장개혁의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6년 『더 타임즈』의 서평 섹션의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 : 크레이그 캘훈
런던정경대(LSE) 학장. 비판이론의 전통을 확장해 실증적 역사·사회연구에 접목하여 사회과학의 공적 기여를 강조했다.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회장을 역임했다.
역자 : 성백용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웅 만들기』(공저), 역서로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세 위계: 봉건제의 상상세계』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생활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공동서론다음번의 대전환006
제1장구조적 위기, 또는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에게 더이상 득이 되지 않는 이유 / 이매뉴얼 월러스틴021
제2장중간계급 노동의 종말: 더이상 탈출구는 없다 / 랜들 콜린스075
제3장종말이 가까울지 모른다, 그런데 누구에게? / 마이클 맨142
제4장공산주의였던 체제 / 게오르기 데를루기얀200
제5장무엇이 지금 자본주의를 위협하는가? / 크레이그 캘훈266
공동결론진지해지기330
옮긴이의 말391
지은이, 옮긴이 소개401
찾아보기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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