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보수의 시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 이데올로기를 넘어 퇴행을 예방하는 ‘실질진보’로
2012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분열 속에서 최근 눈에 띄게 나타나는 진보 세력의 위축은 진보 개념에 대해 여러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을 뜻하며, 진보가 사회복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가? 과연 진보의 이념은 더 나은 삶을 가져왔는가?
클라우스 오페는 ‘논단’의 첫 번째 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 진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오페가 우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진보에 애매하고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보라는 개념 속에는 사회 해방의 열망만이 아니라 개발과 발전을 통해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더 좋은 사회가 도래한다는 신념이 들어 있다. 이는 진보라는 명목 아래 현재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결국 진보 이념에 대한 맹목을 낳았다.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진보적 전략은 실제로는 퇴행적일 수 있으며, 개발독재국가나 사회복지국가가 만들어낸 환경 문제들이 보여주듯이 진보 이데올로기는 진보의 ‘비용’을 등한시해왔다.
오페는 ‘명목진보’와 ‘실질진보’를 구별하면서 진보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발전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명목진보 모델을 폐기하고 사회적 퇴행에 대비하는 ‘정지표지판’을 세워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그는 ‘예방적 진보’ 개념을 주창하면서 모든 시민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정과 빈곤으로부터의 위협을 예방하는 것이 진보 정치의 과제라고 말한다. 실질진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진보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어놓은 진보의 결과를 완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대안은 파국과 문명의 퇴행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집단 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26쪽) 이러한 실질진보 모델은 이념 논쟁에만 정신이 팔려 실질적인 사회복지를 이루는 데 무관심했던,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암암리에 공유해온 ‘진보 이데올로기’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하다.
디지털의 시대, 사회적 자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인터넷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넘어 ‘디지털 자아’를 사유하기
1부 ‘논단’의 클라우스 오페의 글이 당면한 정치적 과제를 다루고 있다면, 2부 ‘쟁점’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회적 과제인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바꾸어놓은 세상은 새로운 디지털 정체성의 탄생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사회적 자아의 해체라는 비관적 전망을 함께 낳고 있다. 그러나 낙관론과 비관론 어느 한쪽으로는 디지털 변화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 머물 수밖에 없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디지털 자아’의 고유성을 사유하려 한다.
『베스텐트 2013/1』은 자아의 디지털 확장이 갖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컴퓨터 게임, 온라인 데이트, 컴퓨터-기본권, 디지털 소외 등 디지털 자아가 갖는 여러 측면을 탐구한다. 여기서 디지털 자아는 단지 기술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주관적 정체성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동안의 기술 편향적 관점이 기술 예찬이나 기술 거부로 귀결되었다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관계와 하이브리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기술에 의한 자아의 소외를 넘어 인간과 기술의 상호인정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30여 년 전부터 디지털 문화와 자아의 관계를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을 통해 펼쳐지는 가상 세계에 주목한다. 터클은 우리가 가상 세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의 단면을 발견하고 이를 시험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 자신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는 것을 풍부한 인터뷰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컴퓨터 게임에 의한 자아 통제와 정체성 변형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 자아가 현실 세계의 실천적 자아와 인간 간 상호작용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터클의 결론이다.
문화사회학자 카이 드뢰게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에서 온라인 데이트라는 새로운 현상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온라인 데이트의 이용자들은 신체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친밀하고 극히 개인적인 상호관계에 놓인 낭만적 주체로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친밀성 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해 서로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기업가적 주체이기도 하다. 드뢰게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낭만주의적 경영자’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온라인 소통이 갖는 낭만성과 합리성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법사회학자 바이오스 카라바스는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에서 디지털 시대에 기본권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된 컴퓨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여기서 카라바스는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하이브리드 이론을 적극 차용한다. 디지털 수사와 검열이 활발해지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개인정보가 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인터넷 게시글 등과 같은 인간과 컴퓨터 간의 결합체(하이브리드)에 대한 인격 보호가 필수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적 접합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은 의미가 깊다.
문화사회학자 올리비에 부아롤은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에서 조지 허버트 미드의 상호주관적 모델에 근거하여 ‘디지털 자아’관을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부아롤은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유혹이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디지털 시대의 자아 정체성 변동을 인정과 소외라는 틀로써 분석하며, 디지털 소외에 저항하는 사회적 실천이 개인정보의 이용방식을 둘러싼 사용자와 기관 간의 접근성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인식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악셀 호네트)이라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점은 여전히 타당할 뿐 아니라 디지털 소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시대, 감성은 어떻게 사회 비판의 틀이 될 수 있는가?
멜랑콜리를 통한 근대성 비판과 전복의 가능성
『베스텐트』 한국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 비판적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동시에, 독자적 편집권을 갖고서 한국 연구자들의 글을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공동 작업은 현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좌장격인 악셀 호네트로부터 “낡은 유럽적 뿌리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회이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계기”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번 『베스텐트 2013/1』 ‘한국판 특집’은 보이지 않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는 어떤 ‘감’(感) 혹은 정조의 문제를 다룬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감’은 ‘멜랑콜리’다. 멜랑콜리는 서양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담론이며 최근 주디스 버틀러,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해석의 틀로도 활용한 바 있다. 여기서 한국 학자들은 멜랑콜리라는 감성을 통한 근대성 비판과 전복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우울증은 그저 개인적 정서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멜랑콜리’로 승화되는 근원적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규정력을 가진 감성은 사회 비판을 위한 시발점이자 추동력이기 때문이다.
독문학자 최문규는 「근대성과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멜랑콜리」에서 멜랑콜리를 핵심어로 삼아 근대성과 근대문학에 접근한다. 최문규는 우선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을 일목요연하게 압축 설명하고, “현실전복적인 사악한 시선”인 멜랑콜리가 비판의 멜랑콜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루소, 괴테, 보들레르, 벤야민의 텍스트 속에서 우리는 멜랑콜리라는 프리즘으로 분광되는 다양한 심미적 현상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의 멜랑콜리에서 근대성에 대한 다른 시선과 전복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에서 ‘세계감’이라는 신조어를 발굴한다. 인간은 단순한 인식 주체이기 이전에 상상 또는 감정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론적 차원의 ‘세계관’뿐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감정의 구조를 의미하는 ‘세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참신한 발상을 바탕으로 김홍중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근대성과 구별되는 또 다른 근대성으로서 ‘문화적 모더니티’를 제시하고, 멜랑콜리적 전략을 근대화에 대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로 재해석하며 사회 비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철학자 김동규는 「만해의 ‘기룸’과 하이데거의 ‘멜랑콜리’」에서 멜랑콜리를 서양 문화의 특이성을 담고 있는 핵심 코드로 파악한다. 김동규는 만해의 사랑과 하이데거의 존재가 동급의 개념임을 입증한 다음, 타자중심적인 만해의 사랑에는 타자에게 자기의 자리를 내어줄 ‘여유’가 있는 반면, 자기중심적인 하이데거의 존재에는 그런 여유 대신에 자기 ‘능력’의 성패가 관건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만해에서는 타자의 여운이 서린 슬픔(기룸)이 발생하지만, 하이데거에서는 비극적인 자기의 고독한 슬픔(멜랑콜리)이 발생한다. 동서양 문화의 감성적 차이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분석은 비판이론이 주목하지 못했던 문화적 다양성과 근대성 비판의 접합을 모색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보여주는 학제 간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설치예술의 미학에서 통계사회학적 분석까지
『베스텐트 2013/1』의 독특한 점은 다른 학문분과별 학술 잡지와는 달리 학제적 사회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정치사회학자가 보는 진보, 사회심리학자가 보는 컴퓨터 게임, 문화사회학자가 보는 온라인 데이트, 법사회학자가 보는 컴퓨터-기본권, 독문학자가 보는 멜랑콜리, 철학자가 보는 문화적 감성의 차이 등 여러 방면의 풍성한 논의가 한곳에 담겨 있다. 여기에 설치예술의 미학에 대한 미학자의 글과 폭력 범죄에 대한 통계사회학적 분석 논문이 더해지며 또 다른 사회 비판의 영역들이 드러난다. ‘학제 간 연구’라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설립 이념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율리아네 레 벤티쉬는 「오늘날의 리얼리즘」에서 예술적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레벤티쉬는 리얼리즘이 이미 끝나버린 기획이라고 저평가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에 오늘날 예술 전체의 윤리와 정치가 걸려 있다고 본다. 이는 예전의 리얼리즘을 단순히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리얼리즘을 (재)생산해내는 문제이다. 여기서 레벤티쉬는 설치예술의 미학에 주목한다. 설치예술은 지배 없는 의사소통의 조건을 위한 투쟁이 잠재적으로 끝날 수 없다는 점을 지시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리얼리즘적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 운동들이 그때마다 다른 재현, 즉 정치적으로 주변화된 것의 불가시성을 정치적 가시성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재현을 요구해온 것처럼 예술 역시 언제나 상황 속의 다른 재현이라는 것이 레벤티쉬의 결론이다.
사회학자 헬무트 토메는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에서 실증적인 통계사회학적 분석과 고전사회학자 뒤르켐의 사회이론을 결합시킨다. 토메는 20세기 중반 유럽 국가들의 살인율이 역사적으로 최저 수준에 머물렀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폭력 범죄가 새롭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통계조사를 통해 밝혀낸다. 여기서 그는 뒤르켐을 원용하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에 의한 ‘탈통합적 개인주의’의 확산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에서 비롯된 사회의 해체, 아노미 현상 등이 폭력 범죄의 증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결론에서 토메는 아노미 현상에 대항하는 ‘협동적 개인주의’를 폭력 범죄현상의 대안으로 제시하며 ‘현대의 폭력’에 대한 미시적, 거시적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작가 소개
저 : 셰리 터클
Sherry Turkle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셰리 터클은 디지털 시대의 주도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학자다. 2000년 「타임」은 셰리 터클을 인터넷 이노베이터로 선정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마거릿 미드’라고 격찬했다. 30년 전,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컴퓨터의 기술 연구에 몰두할 당시, 셰리 터클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심리학자로서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과학기술 전반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이 책은 셰리 터클이 지난 30년간 테크놀로지 영역에서의 삶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으로 진단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친교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로봇이 어떻게 우리의 자아를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밀도 있게 탐색하며 우리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가 이제 우리의 자아와 인간관계를 조정한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는 그의 진단은 충격적이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의 탐색은 테크놀로지에 갇힌 우리의 자아와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모색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4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 고등정치연구소를 거쳐 미국 래리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MIT 사회심리학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정신분석의로 활동했다. MIT 과학기술의 사회적 연구 프로그램의 애비 록펠러 모제Abby Rockefeller Mauze 교수이며, MIT 기술과 자아에 관한 주도권 프로그램의 설립자 겸 책임자이고, 공인 임상심리학자다. 정신분석 관련 저서로는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이 있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저서로는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제2의 자아』와 사이버공간으로 논의를 이동한 『스크린 위의 삶』이 있으며, 이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 3부작을 완성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이 책의 논의를 담은 칼럼 「대화로부터의 도피The Flight From Conversation」가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 : 클라우스 오페 Claus Offe
1940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쾰른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 경제학,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하버마스의 조교로 연구에 참여했으며, 콘스탄츠 대학 정치학과에서 교수자격학위를 취득했다. 빌레펠트 대학, 브레멘 대학,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사회학 교수를 역임했고, 스탠포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하버드 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년퇴직 후 헤르티 거버넌스 스쿨에서 정치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버마스와 함께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를 형성하는 학자로서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 정치사회학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 『복지국가의 모순들』 『해체된 자본주의』 『근대성과 국가』 등이 있다.
저자 : 율리아네 레벤티쉬 Juliane Rebentisch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을 공부했고 포츠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에서 교수자격학위를 취득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일원이기도 하다. 오펜바흐 조형예술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학, 윤리학,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현대예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해 독창적인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설치미술의 미학』 『창조와 우울: 현대 자본주의의 자유』(공저) 『자유의 예술: 민주적 실존의 변증법』 등이 있다.
저자 : 카이 드뢰게 Kai Droge
독일 지겐 대학에서 사회학, 철학, 정보학을 공부했고 기센 대학에서 사회학과 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와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루체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리비에 부아롤과 함께 ‘온라인 연애: 낭만적 사랑과 경제적 합리화의 매개적 소통’ 프로젝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성과 문제의 귀환: 노동, 기업 그리고 사회의 성과』 등이 있다.
저자 : 바이오스 카라바스 Vaios Karavas
아테네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과 연극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루체른 대학에서 법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법과 사법이론, 법과 테크노사이언스, 법사회학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디지털 기본권: 인터넷 정보 흐름의 헌법적 요소』 『사회계약법: 법의 진화론적 연구』(공저) 『법의 변이: 초국가적 공간에서의 법의 생성과 진화』(공저) 등이 있다.
저자 : 올리비에 부아롤 Olivier Voirol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과 로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잔 대학에서 문화사회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카이 드뢰게와 함께 ‘온라인 연애: 낭만적 사랑과 경제적 합리화의 매개적 소통’ 프로젝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인정의 탐구: 새로운 총체적 사회현상』 『정의와 부정의: 감정, 인정 그리고 집단행동』 등이 있다.
역 : 사회 비판과 대안
『베스텐트』 한국판의 편집을 맡고 있는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은 2006년에 발족한 비판적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철학자, 사회학자, 정신분석학자, 문화예술이론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특히 현대 사회 비판과 대안 모색을 위한 이론적 자원을 집대성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 분석을 시도한다는 장기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베스텐트』 한국판을 기획했으며, ‘사회비판총서’ 등을 통해 비판적 사회이론을 소개하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한국판 서문 / 디지털 정체성과 멜랑콜리
논단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클라우스 오페
오늘날의 리얼리즘: 예술, 정치 그리고 재현 - 율리아네 레벤티쉬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 - 헬무트 토메
쟁점 / 디지털 자아: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 - 셰리 터클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 - 카이 드뢰게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 - 바이오스 카라바스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 - 올리비에 부아롤
한국판 특집 / 비판의 멜랑콜리
한국판 특집에 부쳐
근대성과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멜랑콜리 - 최문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 - 김홍중
만해의 ‘기룸’과 하이데거의 ‘멜랑콜리’ - 김동규
베스텐트 독일판 차례
저역자 소개
보수의 시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 이데올로기를 넘어 퇴행을 예방하는 ‘실질진보’로
2012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분열 속에서 최근 눈에 띄게 나타나는 진보 세력의 위축은 진보 개념에 대해 여러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을 뜻하며, 진보가 사회복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가? 과연 진보의 이념은 더 나은 삶을 가져왔는가?
클라우스 오페는 ‘논단’의 첫 번째 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 진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오페가 우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진보에 애매하고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보라는 개념 속에는 사회 해방의 열망만이 아니라 개발과 발전을 통해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더 좋은 사회가 도래한다는 신념이 들어 있다. 이는 진보라는 명목 아래 현재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결국 진보 이념에 대한 맹목을 낳았다.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진보적 전략은 실제로는 퇴행적일 수 있으며, 개발독재국가나 사회복지국가가 만들어낸 환경 문제들이 보여주듯이 진보 이데올로기는 진보의 ‘비용’을 등한시해왔다.
오페는 ‘명목진보’와 ‘실질진보’를 구별하면서 진보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발전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명목진보 모델을 폐기하고 사회적 퇴행에 대비하는 ‘정지표지판’을 세워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그는 ‘예방적 진보’ 개념을 주창하면서 모든 시민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정과 빈곤으로부터의 위협을 예방하는 것이 진보 정치의 과제라고 말한다. 실질진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진보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어놓은 진보의 결과를 완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대안은 파국과 문명의 퇴행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집단 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26쪽) 이러한 실질진보 모델은 이념 논쟁에만 정신이 팔려 실질적인 사회복지를 이루는 데 무관심했던,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암암리에 공유해온 ‘진보 이데올로기’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하다.
디지털의 시대, 사회적 자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인터넷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넘어 ‘디지털 자아’를 사유하기
1부 ‘논단’의 클라우스 오페의 글이 당면한 정치적 과제를 다루고 있다면, 2부 ‘쟁점’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회적 과제인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바꾸어놓은 세상은 새로운 디지털 정체성의 탄생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사회적 자아의 해체라는 비관적 전망을 함께 낳고 있다. 그러나 낙관론과 비관론 어느 한쪽으로는 디지털 변화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 머물 수밖에 없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디지털 자아’의 고유성을 사유하려 한다.
『베스텐트 2013/1』은 자아의 디지털 확장이 갖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컴퓨터 게임, 온라인 데이트, 컴퓨터-기본권, 디지털 소외 등 디지털 자아가 갖는 여러 측면을 탐구한다. 여기서 디지털 자아는 단지 기술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주관적 정체성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동안의 기술 편향적 관점이 기술 예찬이나 기술 거부로 귀결되었다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관계와 하이브리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기술에 의한 자아의 소외를 넘어 인간과 기술의 상호인정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30여 년 전부터 디지털 문화와 자아의 관계를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을 통해 펼쳐지는 가상 세계에 주목한다. 터클은 우리가 가상 세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의 단면을 발견하고 이를 시험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 자신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는 것을 풍부한 인터뷰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컴퓨터 게임에 의한 자아 통제와 정체성 변형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 자아가 현실 세계의 실천적 자아와 인간 간 상호작용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터클의 결론이다.
문화사회학자 카이 드뢰게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에서 온라인 데이트라는 새로운 현상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온라인 데이트의 이용자들은 신체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친밀하고 극히 개인적인 상호관계에 놓인 낭만적 주체로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친밀성 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해 서로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기업가적 주체이기도 하다. 드뢰게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낭만주의적 경영자’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온라인 소통이 갖는 낭만성과 합리성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법사회학자 바이오스 카라바스는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에서 디지털 시대에 기본권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된 컴퓨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여기서 카라바스는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하이브리드 이론을 적극 차용한다. 디지털 수사와 검열이 활발해지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개인정보가 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인터넷 게시글 등과 같은 인간과 컴퓨터 간의 결합체(하이브리드)에 대한 인격 보호가 필수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적 접합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은 의미가 깊다.
문화사회학자 올리비에 부아롤은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에서 조지 허버트 미드의 상호주관적 모델에 근거하여 ‘디지털 자아’관을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부아롤은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유혹이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디지털 시대의 자아 정체성 변동을 인정과 소외라는 틀로써 분석하며, 디지털 소외에 저항하는 사회적 실천이 개인정보의 이용방식을 둘러싼 사용자와 기관 간의 접근성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인식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악셀 호네트)이라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점은 여전히 타당할 뿐 아니라 디지털 소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시대, 감성은 어떻게 사회 비판의 틀이 될 수 있는가?
멜랑콜리를 통한 근대성 비판과 전복의 가능성
『베스텐트』 한국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 비판적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동시에, 독자적 편집권을 갖고서 한국 연구자들의 글을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공동 작업은 현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좌장격인 악셀 호네트로부터 “낡은 유럽적 뿌리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회이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계기”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번 『베스텐트 2013/1』 ‘한국판 특집’은 보이지 않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는 어떤 ‘감’(感) 혹은 정조의 문제를 다룬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감’은 ‘멜랑콜리’다. 멜랑콜리는 서양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담론이며 최근 주디스 버틀러,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해석의 틀로도 활용한 바 있다. 여기서 한국 학자들은 멜랑콜리라는 감성을 통한 근대성 비판과 전복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우울증은 그저 개인적 정서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멜랑콜리’로 승화되는 근원적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규정력을 가진 감성은 사회 비판을 위한 시발점이자 추동력이기 때문이다.
독문학자 최문규는 「근대성과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멜랑콜리」에서 멜랑콜리를 핵심어로 삼아 근대성과 근대문학에 접근한다. 최문규는 우선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을 일목요연하게 압축 설명하고, “현실전복적인 사악한 시선”인 멜랑콜리가 비판의 멜랑콜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루소, 괴테, 보들레르, 벤야민의 텍스트 속에서 우리는 멜랑콜리라는 프리즘으로 분광되는 다양한 심미적 현상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의 멜랑콜리에서 근대성에 대한 다른 시선과 전복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에서 ‘세계감’이라는 신조어를 발굴한다. 인간은 단순한 인식 주체이기 이전에 상상 또는 감정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론적 차원의 ‘세계관’뿐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감정의 구조를 의미하는 ‘세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참신한 발상을 바탕으로 김홍중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근대성과 구별되는 또 다른 근대성으로서 ‘문화적 모더니티’를 제시하고, 멜랑콜리적 전략을 근대화에 대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로 재해석하며 사회 비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철학자 김동규는 「만해의 ‘기룸’과 하이데거의 ‘멜랑콜리’」에서 멜랑콜리를 서양 문화의 특이성을 담고 있는 핵심 코드로 파악한다. 김동규는 만해의 사랑과 하이데거의 존재가 동급의 개념임을 입증한 다음, 타자중심적인 만해의 사랑에는 타자에게 자기의 자리를 내어줄 ‘여유’가 있는 반면, 자기중심적인 하이데거의 존재에는 그런 여유 대신에 자기 ‘능력’의 성패가 관건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만해에서는 타자의 여운이 서린 슬픔(기룸)이 발생하지만, 하이데거에서는 비극적인 자기의 고독한 슬픔(멜랑콜리)이 발생한다. 동서양 문화의 감성적 차이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분석은 비판이론이 주목하지 못했던 문화적 다양성과 근대성 비판의 접합을 모색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보여주는 학제 간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설치예술의 미학에서 통계사회학적 분석까지
『베스텐트 2013/1』의 독특한 점은 다른 학문분과별 학술 잡지와는 달리 학제적 사회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정치사회학자가 보는 진보, 사회심리학자가 보는 컴퓨터 게임, 문화사회학자가 보는 온라인 데이트, 법사회학자가 보는 컴퓨터-기본권, 독문학자가 보는 멜랑콜리, 철학자가 보는 문화적 감성의 차이 등 여러 방면의 풍성한 논의가 한곳에 담겨 있다. 여기에 설치예술의 미학에 대한 미학자의 글과 폭력 범죄에 대한 통계사회학적 분석 논문이 더해지며 또 다른 사회 비판의 영역들이 드러난다. ‘학제 간 연구’라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설립 이념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율리아네 레 벤티쉬는 「오늘날의 리얼리즘」에서 예술적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레벤티쉬는 리얼리즘이 이미 끝나버린 기획이라고 저평가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에 오늘날 예술 전체의 윤리와 정치가 걸려 있다고 본다. 이는 예전의 리얼리즘을 단순히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리얼리즘을 (재)생산해내는 문제이다. 여기서 레벤티쉬는 설치예술의 미학에 주목한다. 설치예술은 지배 없는 의사소통의 조건을 위한 투쟁이 잠재적으로 끝날 수 없다는 점을 지시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리얼리즘적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 운동들이 그때마다 다른 재현, 즉 정치적으로 주변화된 것의 불가시성을 정치적 가시성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재현을 요구해온 것처럼 예술 역시 언제나 상황 속의 다른 재현이라는 것이 레벤티쉬의 결론이다.
사회학자 헬무트 토메는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에서 실증적인 통계사회학적 분석과 고전사회학자 뒤르켐의 사회이론을 결합시킨다. 토메는 20세기 중반 유럽 국가들의 살인율이 역사적으로 최저 수준에 머물렀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폭력 범죄가 새롭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통계조사를 통해 밝혀낸다. 여기서 그는 뒤르켐을 원용하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에 의한 ‘탈통합적 개인주의’의 확산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에서 비롯된 사회의 해체, 아노미 현상 등이 폭력 범죄의 증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결론에서 토메는 아노미 현상에 대항하는 ‘협동적 개인주의’를 폭력 범죄현상의 대안으로 제시하며 ‘현대의 폭력’에 대한 미시적, 거시적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작가 소개
저 : 셰리 터클
Sherry Turkle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셰리 터클은 디지털 시대의 주도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학자다. 2000년 「타임」은 셰리 터클을 인터넷 이노베이터로 선정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마거릿 미드’라고 격찬했다. 30년 전,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컴퓨터의 기술 연구에 몰두할 당시, 셰리 터클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심리학자로서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과학기술 전반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이 책은 셰리 터클이 지난 30년간 테크놀로지 영역에서의 삶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으로 진단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친교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로봇이 어떻게 우리의 자아를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밀도 있게 탐색하며 우리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가 이제 우리의 자아와 인간관계를 조정한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는 그의 진단은 충격적이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의 탐색은 테크놀로지에 갇힌 우리의 자아와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모색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4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 고등정치연구소를 거쳐 미국 래리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MIT 사회심리학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정신분석의로 활동했다. MIT 과학기술의 사회적 연구 프로그램의 애비 록펠러 모제Abby Rockefeller Mauze 교수이며, MIT 기술과 자아에 관한 주도권 프로그램의 설립자 겸 책임자이고, 공인 임상심리학자다. 정신분석 관련 저서로는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이 있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저서로는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제2의 자아』와 사이버공간으로 논의를 이동한 『스크린 위의 삶』이 있으며, 이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 3부작을 완성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이 책의 논의를 담은 칼럼 「대화로부터의 도피The Flight From Conversation」가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 : 클라우스 오페 Claus Offe
1940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쾰른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 경제학, 철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하버마스의 조교로 연구에 참여했으며, 콘스탄츠 대학 정치학과에서 교수자격학위를 취득했다. 빌레펠트 대학, 브레멘 대학,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사회학 교수를 역임했고, 스탠포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하버드 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년퇴직 후 헤르티 거버넌스 스쿨에서 정치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버마스와 함께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를 형성하는 학자로서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 정치사회학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 『복지국가의 모순들』 『해체된 자본주의』 『근대성과 국가』 등이 있다.
저자 : 율리아네 레벤티쉬 Juliane Rebentisch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을 공부했고 포츠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에서 교수자격학위를 취득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일원이기도 하다. 오펜바흐 조형예술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학, 윤리학,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현대예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해 독창적인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설치미술의 미학』 『창조와 우울: 현대 자본주의의 자유』(공저) 『자유의 예술: 민주적 실존의 변증법』 등이 있다.
저자 : 카이 드뢰게 Kai Droge
독일 지겐 대학에서 사회학, 철학, 정보학을 공부했고 기센 대학에서 사회학과 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와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루체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리비에 부아롤과 함께 ‘온라인 연애: 낭만적 사랑과 경제적 합리화의 매개적 소통’ 프로젝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성과 문제의 귀환: 노동, 기업 그리고 사회의 성과』 등이 있다.
저자 : 바이오스 카라바스 Vaios Karavas
아테네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과 연극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루체른 대학에서 법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법과 사법이론, 법과 테크노사이언스, 법사회학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디지털 기본권: 인터넷 정보 흐름의 헌법적 요소』 『사회계약법: 법의 진화론적 연구』(공저) 『법의 변이: 초국가적 공간에서의 법의 생성과 진화』(공저) 등이 있다.
저자 : 올리비에 부아롤 Olivier Voirol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과 로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잔 대학에서 문화사회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카이 드뢰게와 함께 ‘온라인 연애: 낭만적 사랑과 경제적 합리화의 매개적 소통’ 프로젝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인정의 탐구: 새로운 총체적 사회현상』 『정의와 부정의: 감정, 인정 그리고 집단행동』 등이 있다.
역 : 사회 비판과 대안
『베스텐트』 한국판의 편집을 맡고 있는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은 2006년에 발족한 비판적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철학자, 사회학자, 정신분석학자, 문화예술이론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특히 현대 사회 비판과 대안 모색을 위한 이론적 자원을 집대성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 분석을 시도한다는 장기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베스텐트』 한국판을 기획했으며, ‘사회비판총서’ 등을 통해 비판적 사회이론을 소개하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한국판 서문 / 디지털 정체성과 멜랑콜리
논단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클라우스 오페
오늘날의 리얼리즘: 예술, 정치 그리고 재현 - 율리아네 레벤티쉬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 - 헬무트 토메
쟁점 / 디지털 자아: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 - 셰리 터클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 - 카이 드뢰게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 - 바이오스 카라바스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 - 올리비에 부아롤
한국판 특집 / 비판의 멜랑콜리
한국판 특집에 부쳐
근대성과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멜랑콜리 - 최문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 - 김홍중
만해의 ‘기룸’과 하이데거의 ‘멜랑콜리’ - 김동규
베스텐트 독일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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