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미래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일종의 집단적 상상력으로서 실제의 삶과 정치적 선택들, 그리고 욕망의 무의식적인 투영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미래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는 것에 관해 질문해야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사회비평가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미래 이후』는 ‘미래를 신봉한 세기’(20세기)의 약속과 꿈이 정보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에 의해 어떻게 산산히 부서졌는지, ‘미래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지를 성찰한 화제작이다.
비포에 따르면, 지난 20세기의 자본주의는 미래를 ‘팽창’과 동일시해왔다. 미래를 팽창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한한 성장, 생산력의 끝없는 증가, 지구의 자원들과 인간 노동력의 무제한 착취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수반한다. 그러나 20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인류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며 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전 세계적 금융ㆍ재정 위기는 이처럼 “미래는 없다”(No Future)는 인식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뜨린 최근의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미래 이후』는 자본주의 위기를 다룬 기존의 분석들과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비포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창궐한 이 “미래는 없다”는 파국적이고 음울한 상상력의 등장을 신자유주의의 귀결로서뿐만 아니라 정보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의 영혼마저 노동하게 만든 ‘기호자본주의’의 귀결로서 설명한다. 둘째, 비포는 오늘날의 사회를 위협하는 병리학(공황, 주의력 결핍 장애, 우울증, 자폐증, 자살, 공포, 집단 따돌림 등)의 창궐 역시 이런 기호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셋째, 비포는 이처럼 갖가지 ‘정신병 폭탄’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는 ‘약속’이 아니라 ‘위협’으로 돌변하지만 이런 파국은 새로운 전망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래 이후』가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멀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닷컴 열풍’에서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까지, 벤처(테헤란밸리) 증후군에서 최근 기승을 부리는 각종 묻지마 범죄까지, 그리고 ‘삼포 세대’라는 우울한 자화상까지, 우리는 이미 비포가 말하는 기호자본주의와 그 병리학, 그리고 “미래는 없다”는 우울한 시대상을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지 않은가? 과연 우리는 이 파국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는 6월 17일~21일 비포는 수유너머 N(노마디스트)의 초청으로 방한해 불안정 노동과 포스트미래주의의 상상력에 관해 토론할 예정이다. 『미래 이후』는 우리가 파국에 맞서는 상상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초가 될 것이다.
미래라는 환영을 버리고 현재의 무한함을 노래하자
나는 미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항해야 하고 사회적 연대, 인간적 공감, 무상의 활동, 자유, 평등, 우애 등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지켜야 한다. 자기애의 이름으로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오늘날 분명해졌듯이 신자유주의는 ‘기업가 모델’이 일반화된 사회, 즉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를 낳았다. 과거에는 비참한 상태에서 비교적 유복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적 상태를 영위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고 독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신봉자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듯이 “우리 모두가 자본가”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이론’(매트릭스)이었다면 기호자본주의는 ‘실천’(시뮬라시옹)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군의 자본가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 떠받들여진 새로운 생산 부문들, 특히 금융ㆍ정보ㆍ미디어의 디지털화와 관련된 부문들(특히 인터넷)은 이런 기업가 모델이 실현될 수 있는 장으로 제시됐다. 이 새로운 생산 부문들에서는 노동자의 창조성, 감수성, 주의력, 소통능력, 아이디어 등이 생산력의 원천이라 여겨졌다. 바야흐로 ‘기호자본주의,’ 즉 상품의 일반적 형태가 물질적 대상들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기호적 특성을 띠며, 생산 과정이 점점 더 기호- 정보를 고안해내는 것이 되는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려고 했던 노동자들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영혼(정서, 감정 등)까지 자발적으로 노동과정에 모두 쏟아 부었다. 자신의 육체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아예 자신 자체를 자본 삼아, 자기 자신을 (재)생산해, 자기 자신이 소득이 원천이 되는 자본가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닷컴 기업과 주식시장이 금융자본과 기호노동(인지노동)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닷컴과 주식 열풍은 곧 거품임이 판명됐다.
오늘날 가속화된 기호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파편화된 노동 능력, 과도한 신경자극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흐름 속에서 소진된 신경 에너지, 그로 인한 정신병리적 증상(공황, 우울 등)뿐이다. 바로 이것이 『미래 이후』에서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가 진단한 오늘날의 세계 자체이다. 그렇다면 현실이 이처럼 암울한데 우리는 왜 저항하고, 왜 계속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을 추구하고, 희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해야 하는 걸까? 비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미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항해야 하고 사회적 연대, 인간적 공감, 무상의 활동, 자유, 평등, 우애 등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스스로가 평화로워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해야만 한다고.
1909년 발표된 미래주의 선언 에서부터 1977년 “미래는 없다”(섹스피스톨즈)고 노래한 펑크적 상상과 이탈리아를 뒤흔든 ‘77년 운동’을 거쳐,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꽃핀 『와이어드』의 디지털 미래주의 이데올로기, 미디어 독재가 이뤄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시대의 이탈리아 등을 종횡무진 살펴본 뒤 비포가 "포스트미래주의 선언"을 공표하며 책을 끝마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현재의 무한함을 노래하고 미래라는 환영을 버린다.” 그렇다. 미래는 없다. 물론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일종의 집단적 상상력으로서 실제의 삶과 정치적 선택들, 그리고 욕망의 무의식적 투영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우울함 속에서 이 환상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이후’에 대한 상상, ‘미래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는 것에 관한 질문들로 이 환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과 질문은 지금 여기, 현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작가 소개
저 : 프랑코 베라르디
Franco Berardi [Bifo]
이탈리아 볼로냐 출생으로 자율주의 전통 속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맑스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다. 주로 탈산업 자본주의에서 미디어와 정보 테크놀로지가 차지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20여 권이 넘는 집필서와 다방면의 에세이가 있으며 강연도 많이 하고 있다. 1962년 14세에 이탈리아 공산당 청년 연맹의 일원이 되었으나 분파투쟁 과정에서 제명되었다. 볼로냐 대학에서 68혁명의 사건들에 참여했으며 미학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노동자의 힘〉그룹에 가입했다. 1975년에 잡지 『아/뜨라베르소』(A/traverso)를 창간, 1981년 절정기까지 잡지를 만들었다. 1976년에서 78년까지 이탈리아 최초의 자유 해적 라디오 방송국인〈라디오 알리체〉(Radio Alice)의 간부로 활동했다. 1970년대 아우또노미아(autonomia) 정치 운동에 관계된 다른 사람들처럼 파리로 피신하였으며, 파리에서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분열분석 분야에서 활동했다. 1980년대에는 『세미오텍스트』(Semiotexte, 뉴욕), 『키메라』(Chimerees, 파리), 『메뜨로뽈리』(Metropoli, 로마), 『뮤지카 80』(Musica 80, 밀라노) 등 여러 잡지에 기고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노동하는 영혼』(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2), 『봉기』(유충현 옮김, 갈무리, 2012)이 있으며, 그밖에 『변동과 사이버펑크』(1993), 『사이버네틱스』(1994), 『펠릭스』(2001) 등을 썼다. 최근에는 잡지 『데리베 아쁘로디』(Derive Approdi)에서 활동하며 밀라노의 예술학부에서 소통의 사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웹진 rekombinant.org와 텔레스트릿(telestreet) 운동의 공동 창립자이며, 채널〈오르뻬오 TV〉를 세웠다.
역자 : 강서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연구공간 L에서 정치철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제국에 저항하는 네그리의 정치철학』(갈무리/2010),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공통적인 것의 구성을 위한 에세이』(도서출판 난장/2012) 등을 공역했고, 독립 영화잡지 『녹록지X』를 만들고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은이 서문
편집자 서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횡단적 코뮤니즘 (개리 제노스코, 니콜라스 쏘번)
1장. 미래를 신봉한 세기
미래주의와 미래의 전도
아방가르드의 미디어 유토피아
짜움과 테크노마야
행동주의
접속과 감수성
미래의 종말
저주받은 예언자
마지막 유토피아
미래의 전도
2장. 2000년대
시애틀에서 코펜하겐까지
대참사 직전
닷컴 붕괴 이후
인지노동의 불투명한 경제
정보노동과 불안정
화
공황의 도시
3장. 바로크와 기호자본
이탈리아의 룸펜들
언어와 독 이탈리아의 변칙성
노동기피자들
신바로크 사회에서의 우발적 가치
자기경멸
4장. 소진과 주체성
불안정한 미래
소진: 장 보드리야르 다시 읽기
죽음의 경제(네크로노미)
특이성의 봉기
나이든 이들
이 사랑에 빠질 때
행복한 결말
미래주의 이후
부록: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와의 대화 (개리 제노스코, 니콜라스 쏘번)
후주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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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일종의 집단적 상상력으로서 실제의 삶과 정치적 선택들, 그리고 욕망의 무의식적인 투영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미래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는 것에 관해 질문해야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사회비평가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미래 이후』는 ‘미래를 신봉한 세기’(20세기)의 약속과 꿈이 정보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에 의해 어떻게 산산히 부서졌는지, ‘미래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지를 성찰한 화제작이다.
비포에 따르면, 지난 20세기의 자본주의는 미래를 ‘팽창’과 동일시해왔다. 미래를 팽창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한한 성장, 생산력의 끝없는 증가, 지구의 자원들과 인간 노동력의 무제한 착취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수반한다. 그러나 20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인류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며 성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전 세계적 금융ㆍ재정 위기는 이처럼 “미래는 없다”(No Future)는 인식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뜨린 최근의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미래 이후』는 자본주의 위기를 다룬 기존의 분석들과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비포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창궐한 이 “미래는 없다”는 파국적이고 음울한 상상력의 등장을 신자유주의의 귀결로서뿐만 아니라 정보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의 영혼마저 노동하게 만든 ‘기호자본주의’의 귀결로서 설명한다. 둘째, 비포는 오늘날의 사회를 위협하는 병리학(공황, 주의력 결핍 장애, 우울증, 자폐증, 자살, 공포, 집단 따돌림 등)의 창궐 역시 이런 기호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셋째, 비포는 이처럼 갖가지 ‘정신병 폭탄’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는 ‘약속’이 아니라 ‘위협’으로 돌변하지만 이런 파국은 새로운 전망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래 이후』가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멀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닷컴 열풍’에서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까지, 벤처(테헤란밸리) 증후군에서 최근 기승을 부리는 각종 묻지마 범죄까지, 그리고 ‘삼포 세대’라는 우울한 자화상까지, 우리는 이미 비포가 말하는 기호자본주의와 그 병리학, 그리고 “미래는 없다”는 우울한 시대상을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지 않은가? 과연 우리는 이 파국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는 6월 17일~21일 비포는 수유너머 N(노마디스트)의 초청으로 방한해 불안정 노동과 포스트미래주의의 상상력에 관해 토론할 예정이다. 『미래 이후』는 우리가 파국에 맞서는 상상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초가 될 것이다.
미래라는 환영을 버리고 현재의 무한함을 노래하자
나는 미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항해야 하고 사회적 연대, 인간적 공감, 무상의 활동, 자유, 평등, 우애 등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지켜야 한다. 자기애의 이름으로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오늘날 분명해졌듯이 신자유주의는 ‘기업가 모델’이 일반화된 사회, 즉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를 낳았다. 과거에는 비참한 상태에서 비교적 유복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적 상태를 영위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고 독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신봉자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듯이 “우리 모두가 자본가”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이론’(매트릭스)이었다면 기호자본주의는 ‘실천’(시뮬라시옹)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군의 자본가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 떠받들여진 새로운 생산 부문들, 특히 금융ㆍ정보ㆍ미디어의 디지털화와 관련된 부문들(특히 인터넷)은 이런 기업가 모델이 실현될 수 있는 장으로 제시됐다. 이 새로운 생산 부문들에서는 노동자의 창조성, 감수성, 주의력, 소통능력, 아이디어 등이 생산력의 원천이라 여겨졌다. 바야흐로 ‘기호자본주의,’ 즉 상품의 일반적 형태가 물질적 대상들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기호적 특성을 띠며, 생산 과정이 점점 더 기호- 정보를 고안해내는 것이 되는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려고 했던 노동자들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영혼(정서, 감정 등)까지 자발적으로 노동과정에 모두 쏟아 부었다. 자신의 육체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아예 자신 자체를 자본 삼아, 자기 자신을 (재)생산해, 자기 자신이 소득이 원천이 되는 자본가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닷컴 기업과 주식시장이 금융자본과 기호노동(인지노동)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닷컴과 주식 열풍은 곧 거품임이 판명됐다.
오늘날 가속화된 기호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파편화된 노동 능력, 과도한 신경자극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흐름 속에서 소진된 신경 에너지, 그로 인한 정신병리적 증상(공황, 우울 등)뿐이다. 바로 이것이 『미래 이후』에서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가 진단한 오늘날의 세계 자체이다. 그렇다면 현실이 이처럼 암울한데 우리는 왜 저항하고, 왜 계속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을 추구하고, 희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해야 하는 걸까? 비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미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항해야 하고 사회적 연대, 인간적 공감, 무상의 활동, 자유, 평등, 우애 등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스스로가 평화로워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해야만 한다고.
1909년 발표된 미래주의 선언 에서부터 1977년 “미래는 없다”(섹스피스톨즈)고 노래한 펑크적 상상과 이탈리아를 뒤흔든 ‘77년 운동’을 거쳐,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꽃핀 『와이어드』의 디지털 미래주의 이데올로기, 미디어 독재가 이뤄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시대의 이탈리아 등을 종횡무진 살펴본 뒤 비포가 "포스트미래주의 선언"을 공표하며 책을 끝마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현재의 무한함을 노래하고 미래라는 환영을 버린다.” 그렇다. 미래는 없다. 물론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일종의 집단적 상상력으로서 실제의 삶과 정치적 선택들, 그리고 욕망의 무의식적 투영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우울함 속에서 이 환상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이후’에 대한 상상, ‘미래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는 것에 관한 질문들로 이 환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과 질문은 지금 여기, 현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작가 소개
저 : 프랑코 베라르디
Franco Berardi [Bifo]
이탈리아 볼로냐 출생으로 자율주의 전통 속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맑스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다. 주로 탈산업 자본주의에서 미디어와 정보 테크놀로지가 차지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20여 권이 넘는 집필서와 다방면의 에세이가 있으며 강연도 많이 하고 있다. 1962년 14세에 이탈리아 공산당 청년 연맹의 일원이 되었으나 분파투쟁 과정에서 제명되었다. 볼로냐 대학에서 68혁명의 사건들에 참여했으며 미학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노동자의 힘〉그룹에 가입했다. 1975년에 잡지 『아/뜨라베르소』(A/traverso)를 창간, 1981년 절정기까지 잡지를 만들었다. 1976년에서 78년까지 이탈리아 최초의 자유 해적 라디오 방송국인〈라디오 알리체〉(Radio Alice)의 간부로 활동했다. 1970년대 아우또노미아(autonomia) 정치 운동에 관계된 다른 사람들처럼 파리로 피신하였으며, 파리에서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분열분석 분야에서 활동했다. 1980년대에는 『세미오텍스트』(Semiotexte, 뉴욕), 『키메라』(Chimerees, 파리), 『메뜨로뽈리』(Metropoli, 로마), 『뮤지카 80』(Musica 80, 밀라노) 등 여러 잡지에 기고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노동하는 영혼』(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2), 『봉기』(유충현 옮김, 갈무리, 2012)이 있으며, 그밖에 『변동과 사이버펑크』(1993), 『사이버네틱스』(1994), 『펠릭스』(2001) 등을 썼다. 최근에는 잡지 『데리베 아쁘로디』(Derive Approdi)에서 활동하며 밀라노의 예술학부에서 소통의 사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웹진 rekombinant.org와 텔레스트릿(telestreet) 운동의 공동 창립자이며, 채널〈오르뻬오 TV〉를 세웠다.
역자 : 강서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연구공간 L에서 정치철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제국에 저항하는 네그리의 정치철학』(갈무리/2010),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공통적인 것의 구성을 위한 에세이』(도서출판 난장/2012) 등을 공역했고, 독립 영화잡지 『녹록지X』를 만들고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은이 서문
편집자 서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횡단적 코뮤니즘 (개리 제노스코, 니콜라스 쏘번)
1장. 미래를 신봉한 세기
미래주의와 미래의 전도
아방가르드의 미디어 유토피아
짜움과 테크노마야
행동주의
접속과 감수성
미래의 종말
저주받은 예언자
마지막 유토피아
미래의 전도
2장. 2000년대
시애틀에서 코펜하겐까지
대참사 직전
닷컴 붕괴 이후
인지노동의 불투명한 경제
정보노동과 불안정
화
공황의 도시
3장. 바로크와 기호자본
이탈리아의 룸펜들
언어와 독 이탈리아의 변칙성
노동기피자들
신바로크 사회에서의 우발적 가치
자기경멸
4장. 소진과 주체성
불안정한 미래
소진: 장 보드리야르 다시 읽기
죽음의 경제(네크로노미)
특이성의 봉기
나이든 이들
이 사랑에 빠질 때
행복한 결말
미래주의 이후
부록: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와의 대화 (개리 제노스코, 니콜라스 쏘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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