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투자의 세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주식투자로 재미 좀 보셨습니까?
2013년 10월 15일. 한국 주식시장의 바로미터인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다.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의 33거래일에 걸친 거침없는 매수 공세로 2040.96포인트까지 급등해 전고점을 새로 쓴다.
하지만 투자자 김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연초 여유자금 1억원을 코스닥에 상장된 한 종목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김씨의 상실감이 더 컸던 이유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6월25일 1770.53까지 급락했던 주가가 저점 대비 15% 이상 반등했지만 그가 보유한 종목의 주가는 하염없이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코스닥에 상장된 이엘케이라는 IT 부품주를 들고 있었다. 이 회사는 휴대폰의 터치 패널을 만들고 있다. 연초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 확대 등으로 기대를 잔뜩 모았던 종목이었다.
김씨가 투자했던 그해 3월초 이엘케이 주가는 2만천원선이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후인 10월17일 주가는 6천원 아래로 내려왔다. 주가는 70% 넘게 폭락했다. 김씨의 투자원금 1억원은 28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주가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할 때 김씨는 ‘멘탈 붕괴’를 겪었다.
김씨가 이 종목에 투자한 것은 미래 실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엘케이는 2012년 7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주가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움직인다.
김씨가 투자할 당시 이 종목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이 종목에 대해 잘 아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석가들은 이엘케이가 2013년 80억원, 2014년 200억원 이상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2015년엔 350억원이 넘는 이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불과 반 년 사이에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흑자는 커녕 상반기에 이미 67억원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반년만에 전년 연간적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말았으니 주가는 브레이크도 없이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김씨는 ‘얼치기’ 애널리스트와 장밋빛 전망만 내세우는 회사의 주식담당자를 비난했다. 후회했으나 때는 늦었다. 사실 9월 중순 주가가 1만원을 뚫고 내려갈 때 김씨는 고심에 빠졌었다. 하지만 당시 이미 50% 이상 손실을 본 김씨는 끝끝내 주식을 팔지 못했다. 그 동안 입었던 손실에 대한 미련이 작용한 데다 주가 낙폭이 지나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주가는 이후에도 거침없이 내려갔다. 회사 측은 3분기 실적 역시 적자를 보이겠지만 4분기엔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김씨를 위로했다.
그런 뒤 회사는 김씨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적자에 허덕이던 이엘케이는 결국 운영자금 명목으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가는 한 번 더 곤두박질하면서 6천원 아래로 폭락해 버렸던 것이다. 외국인의 사상 최장기간 주식순매수로 주가지수가 고공행진을 벌일 때 김씨는 수년간 모았던 돈을 거의 다 날렸다. 투자자 김씨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다.
김씨의 사례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주식, 아니 모든 투자의 어려움이다. 투자자는 누구나 ‘잠재적 김씨’다. 그리고 주식시장엔 김씨의 얘기에 등장하는 이엘케이와 같은 종목들이 수없이 많다.
투자자가 거짓된 미래 정보에 현혹되거나 감정을 앞세우게 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금융시장은 냉혹하다. 주식을 사놓고 응원하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엄격한 분석을 거치지 않고 남들의 말에 현혹된 투자는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각종 광고에서 접하는 ‘주식 도사’들의 말은 믿지 않는 게 몸에 이롭다. 아무리 뛰어난 점쟁이도 주가 흐름을 제대로 맞출 수 없다. 가치주투자든 성장주투자든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 나오는 ‘살아남은’ 자들의 스토리는 투자자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믿는다.
금융시장은 엉켜서 돌아간다
“싱가포르 금리가 이상하네요.”
2013년 6월 11일 오전. 채권시장의 한 트레이더가 뭔가 찜찜하다며 싱가포르 금리 이야기를 꺼낸다.
싱가포르의 금리 상승세가 그 날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양적완화를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5월초 1.60%였던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6주에 걸쳐 2.2%까지 치솟았다. 싱가포르 국채 10년물 수익률도 같은 기간 50bp 이상 올랐다.
하지만 11일은 뭔가 달랐다. 10일 기준 1.938%였던 싱가포르 10년물 금리가 11일 장중에 2.131%까지 급등하며 패닉장을 연출했다. 외국계 펀드에서 스왑과 관련한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싱가포르 금리가 급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날 한국 채권시장은 장중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시장을 움직일 만한 뚜렷한 재료도 없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국채 금리 흐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트레이더들도 있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은 120조원 규모로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어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원화와 싱가포르 달러가 비슷한 방향성을 일관성 있게 보여왔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의 움직임이 더 주목을 받은 것은 글로벌 양적완화 축소가 아시아시장 전반의 자금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트레이더들이 조금씩 리스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장중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한국시장은 장 막판으로 갈수록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날 한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bp 상승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11bp가 급등하며 한국 채권시장도 무너졌다.
이후 시장 반응이 과도했다는 인식 속에 매수세가 유입된다. 3.31%까지 치솟았던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6월 20일 연말까지 연준의 채권매입프로그램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충격적인 발언이 나온다. 한국 국채10년물 금리는 3.68%까지 급등하고 아시아 각국의 금융시장이 춤을 춘다.
6월초 일부 아시아 국가의 금리 급등 흐름에서 벤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 속에 트레이더들이 있다.
어떤 트레이더는 이 거대한 가격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은 시장이 보내는 다양한 소음 속에 길을 잃고 만다. 매일, 매주, 매달 밤잠을 설치며 시장을 분석하고 기술을 연마하지만 막상 결정의 순간에 주저하거나 그릇된 결정을 내린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훌륭한 트레이더라면 당연히 시장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야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루에 주가가 22% 폭락한 1987년 블랙 먼데이 사건을 생각해 보자. 사건을 재구성해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주가가 폭락했고 시장의 트레이더들 모두 주식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트레이딩이 신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장의 방향성을 제대로 짚어 돈을 버는 베팅을 하는데 실패했을 때 이를 얼마나 빨리 인식하고 빠져 나오느냐는 전적으로 트레이더의 역량이다. 언제 리스크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지, 어떻게 리스크를 억제할지를 이해하는 것 역시 트레이더의 자질 문제다.
이 책에 나오는 트레이더들은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이다. 1990년 초반 영국의 파운드화 위기부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한국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트레이더가 됐다.
이들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른 어떤 트레이더 만큼이나 시련을 겪었다.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를 달고 살기도 했다.
이들이 단순히 운만으로 최고의 위치에 선 것은 아니다. 커리어를 걸고 베팅해야 할 때 그들은 상황이나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의 투자원칙을 지킨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주식, 채권, 외환, 스왑의 세계
이 책에 나오는 매매자들의 전공은 주식, 채권, 외환, 스왑 등 다양하다. 하지만 처음보는 생소한 개념 때문에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투자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Buy Low And Sell High)이다. 어떤 시장을 가도 블래시 ‘BLASH’의 원칙은 다르지 않다.
이 원칙은 펀드매니저 혹은 딜러, 아니 개인투자자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하지만 투자자산의 가격이 싼지, 비싼지 파악하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싸다는 것의 의미 또한 매우 다양하다.
간단히 각 시장들을 살펴보자.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다면 주가지수는 오를 것이다. 특정기업이 미래에 높은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회사 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이 ‘밝음의 세계’를 지향하는 반면 채권은 ‘어둠의 세계’를 추구한다. 향후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는 오르고 채권가격은 내려가는 것이다. 채권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은 채권금리가 오른다는 의미다. 한국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린다. 여기에 맞춰 채권금리도 하락해 채권 강세장이 도래한다. 반대의 경우라면 채권 약세장이 펼쳐진다.
환율의 세계는 ‘상대적’이다. 달러와 비교한 원화의 위치, 엔화에 대한 원화의 입지 등이 중요하다. 향후 달러가 국내에 많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면 원화는 강해진다. 원화가 달러에 비해 강해진다는 의미는 원/달러 환율이 내려간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유망해 외국 돈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거나 수출이 잘 돼서 달러가 많이 들어오면 원화는 강해진다.
스왑은 ‘교환’의 세계다.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를 교환하는 이자율 스왑, 원화와 달러를 교환하는 통화스왑, 그리고 달러현물과 선물을 동시에 사고파는 FX(외환)스왑이 이 시장을 대표한다.
금융시장은 상당부분 엮여 있다. 주식과 채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경기에 대해 선행적으로 움직이는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가격은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로 하락한다.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매수해 주식, 채권 모두 강세를 보이곤 한다. 스왑시장은 채권, 외환시장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때로는 채권, 외환시장에 선행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처럼 금융시장은 서로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주식, 외환, 채권 등 다양한 자산가격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엔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외국계은행 스타 트레이더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한국에서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젠 한국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트레이더들의 생존기를 들어보자.
▣ 작가 소개
저자 : 장태민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졸업. CFA. 조흥은행과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서 잠시 일했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몇 군데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근무했다. 신문사 사회부에서 사건 사고를 취재하는 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뒤, 주로 경제 금융 분야를 취재했다. 현재 로이터통신에서 경제 금융 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자 : 임승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합인포맥스를 거쳐 현재 로이터통신에서 경제 금융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이것만은 알아두자) 주식과 주식투자
“지금 코스닥을 살 수는 없다” -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펀드매니저·딜러·트레이더·운용역·포트폴리오매니저의 차이는
(이것만은 알아두자) 외환과 외환거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성희 JP모건 서울지점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채권과 채권투자
“교과서 없이 트레이딩하기” - 최경진 도이치은행 FIC본부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한국의 버핏과 멍거를 꿈꾸다” - 최준철·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가치투자는 김성근이다” - 김민국·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스왑거래란
(이것만은 알아두자) 금융위기 가늠자 역할 하는 스왑시장
“트레이더의 빛과 그림자” - 유창범 BOA메릴린치 서울지점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트레이딩과 인터뱅크 시장의 형성
“돈은 비싼 데서 싼 데로 흐른다” - 서준식 BNP파리바자산운용 이사
(이것만은 알아두자)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ECB를 보면 답이 보인다
(이것만은 알아두자)
주식펀드, 채권펀드는 알겠는데 계약형, 개방형, 매출형은 뭐지?
“성공은 곧 실패다” -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시장, 무엇이 달라졌나
“트레이딩의 마에스트로” - 박형근(Alex Park) SC은행 부행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외은지점 트레이딩의 위기?
“금융시장의 지배자, 도전자로 다시 서다” - 서재형 대신자산운용 사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상품계정, 고유계정, 프랍, 투자계정, 신탁계정의 차이는
“FX2세대·이자율스왑 1세대의 성공비법” - 김태호 UBS은행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헤지펀드, 한국 IRS시장 어떻게 흔들었나
“투자도, 인생도 인덱싱하라” - 한진규 유리자산운용 전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개별종목보다 인덱스투자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짬짜면 시키는 위인은 투자의 세계를 떠나라” - 안시형 KDB생명 상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투자는, 아니 우리 인생은 기회비용의 게임
투자의 세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주식투자로 재미 좀 보셨습니까?
2013년 10월 15일. 한국 주식시장의 바로미터인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다.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의 33거래일에 걸친 거침없는 매수 공세로 2040.96포인트까지 급등해 전고점을 새로 쓴다.
하지만 투자자 김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연초 여유자금 1억원을 코스닥에 상장된 한 종목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김씨의 상실감이 더 컸던 이유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6월25일 1770.53까지 급락했던 주가가 저점 대비 15% 이상 반등했지만 그가 보유한 종목의 주가는 하염없이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코스닥에 상장된 이엘케이라는 IT 부품주를 들고 있었다. 이 회사는 휴대폰의 터치 패널을 만들고 있다. 연초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 확대 등으로 기대를 잔뜩 모았던 종목이었다.
김씨가 투자했던 그해 3월초 이엘케이 주가는 2만천원선이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후인 10월17일 주가는 6천원 아래로 내려왔다. 주가는 70% 넘게 폭락했다. 김씨의 투자원금 1억원은 28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주가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할 때 김씨는 ‘멘탈 붕괴’를 겪었다.
김씨가 이 종목에 투자한 것은 미래 실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엘케이는 2012년 7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주가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움직인다.
김씨가 투자할 당시 이 종목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이 종목에 대해 잘 아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석가들은 이엘케이가 2013년 80억원, 2014년 200억원 이상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2015년엔 350억원이 넘는 이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불과 반 년 사이에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흑자는 커녕 상반기에 이미 67억원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반년만에 전년 연간적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말았으니 주가는 브레이크도 없이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김씨는 ‘얼치기’ 애널리스트와 장밋빛 전망만 내세우는 회사의 주식담당자를 비난했다. 후회했으나 때는 늦었다. 사실 9월 중순 주가가 1만원을 뚫고 내려갈 때 김씨는 고심에 빠졌었다. 하지만 당시 이미 50% 이상 손실을 본 김씨는 끝끝내 주식을 팔지 못했다. 그 동안 입었던 손실에 대한 미련이 작용한 데다 주가 낙폭이 지나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주가는 이후에도 거침없이 내려갔다. 회사 측은 3분기 실적 역시 적자를 보이겠지만 4분기엔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김씨를 위로했다.
그런 뒤 회사는 김씨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적자에 허덕이던 이엘케이는 결국 운영자금 명목으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가는 한 번 더 곤두박질하면서 6천원 아래로 폭락해 버렸던 것이다. 외국인의 사상 최장기간 주식순매수로 주가지수가 고공행진을 벌일 때 김씨는 수년간 모았던 돈을 거의 다 날렸다. 투자자 김씨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다.
김씨의 사례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주식, 아니 모든 투자의 어려움이다. 투자자는 누구나 ‘잠재적 김씨’다. 그리고 주식시장엔 김씨의 얘기에 등장하는 이엘케이와 같은 종목들이 수없이 많다.
투자자가 거짓된 미래 정보에 현혹되거나 감정을 앞세우게 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금융시장은 냉혹하다. 주식을 사놓고 응원하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엄격한 분석을 거치지 않고 남들의 말에 현혹된 투자는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각종 광고에서 접하는 ‘주식 도사’들의 말은 믿지 않는 게 몸에 이롭다. 아무리 뛰어난 점쟁이도 주가 흐름을 제대로 맞출 수 없다. 가치주투자든 성장주투자든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 나오는 ‘살아남은’ 자들의 스토리는 투자자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믿는다.
금융시장은 엉켜서 돌아간다
“싱가포르 금리가 이상하네요.”
2013년 6월 11일 오전. 채권시장의 한 트레이더가 뭔가 찜찜하다며 싱가포르 금리 이야기를 꺼낸다.
싱가포르의 금리 상승세가 그 날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양적완화를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5월초 1.60%였던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6주에 걸쳐 2.2%까지 치솟았다. 싱가포르 국채 10년물 수익률도 같은 기간 50bp 이상 올랐다.
하지만 11일은 뭔가 달랐다. 10일 기준 1.938%였던 싱가포르 10년물 금리가 11일 장중에 2.131%까지 급등하며 패닉장을 연출했다. 외국계 펀드에서 스왑과 관련한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싱가포르 금리가 급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날 한국 채권시장은 장중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시장을 움직일 만한 뚜렷한 재료도 없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국채 금리 흐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트레이더들도 있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은 120조원 규모로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어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원화와 싱가포르 달러가 비슷한 방향성을 일관성 있게 보여왔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의 움직임이 더 주목을 받은 것은 글로벌 양적완화 축소가 아시아시장 전반의 자금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트레이더들이 조금씩 리스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장중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한국시장은 장 막판으로 갈수록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날 한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bp 상승했다. 싱가포르 국채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11bp가 급등하며 한국 채권시장도 무너졌다.
이후 시장 반응이 과도했다는 인식 속에 매수세가 유입된다. 3.31%까지 치솟았던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6월 20일 연말까지 연준의 채권매입프로그램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충격적인 발언이 나온다. 한국 국채10년물 금리는 3.68%까지 급등하고 아시아 각국의 금융시장이 춤을 춘다.
6월초 일부 아시아 국가의 금리 급등 흐름에서 벤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 속에 트레이더들이 있다.
어떤 트레이더는 이 거대한 가격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은 시장이 보내는 다양한 소음 속에 길을 잃고 만다. 매일, 매주, 매달 밤잠을 설치며 시장을 분석하고 기술을 연마하지만 막상 결정의 순간에 주저하거나 그릇된 결정을 내린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훌륭한 트레이더라면 당연히 시장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야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루에 주가가 22% 폭락한 1987년 블랙 먼데이 사건을 생각해 보자. 사건을 재구성해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주가가 폭락했고 시장의 트레이더들 모두 주식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트레이딩이 신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장의 방향성을 제대로 짚어 돈을 버는 베팅을 하는데 실패했을 때 이를 얼마나 빨리 인식하고 빠져 나오느냐는 전적으로 트레이더의 역량이다. 언제 리스크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지, 어떻게 리스크를 억제할지를 이해하는 것 역시 트레이더의 자질 문제다.
이 책에 나오는 트레이더들은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이다. 1990년 초반 영국의 파운드화 위기부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한국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트레이더가 됐다.
이들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른 어떤 트레이더 만큼이나 시련을 겪었다.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를 달고 살기도 했다.
이들이 단순히 운만으로 최고의 위치에 선 것은 아니다. 커리어를 걸고 베팅해야 할 때 그들은 상황이나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의 투자원칙을 지킨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주식, 채권, 외환, 스왑의 세계
이 책에 나오는 매매자들의 전공은 주식, 채권, 외환, 스왑 등 다양하다. 하지만 처음보는 생소한 개념 때문에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투자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Buy Low And Sell High)이다. 어떤 시장을 가도 블래시 ‘BLASH’의 원칙은 다르지 않다.
이 원칙은 펀드매니저 혹은 딜러, 아니 개인투자자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하지만 투자자산의 가격이 싼지, 비싼지 파악하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싸다는 것의 의미 또한 매우 다양하다.
간단히 각 시장들을 살펴보자.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다면 주가지수는 오를 것이다. 특정기업이 미래에 높은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회사 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이 ‘밝음의 세계’를 지향하는 반면 채권은 ‘어둠의 세계’를 추구한다. 향후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는 오르고 채권가격은 내려가는 것이다. 채권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은 채권금리가 오른다는 의미다. 한국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린다. 여기에 맞춰 채권금리도 하락해 채권 강세장이 도래한다. 반대의 경우라면 채권 약세장이 펼쳐진다.
환율의 세계는 ‘상대적’이다. 달러와 비교한 원화의 위치, 엔화에 대한 원화의 입지 등이 중요하다. 향후 달러가 국내에 많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면 원화는 강해진다. 원화가 달러에 비해 강해진다는 의미는 원/달러 환율이 내려간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유망해 외국 돈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거나 수출이 잘 돼서 달러가 많이 들어오면 원화는 강해진다.
스왑은 ‘교환’의 세계다.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를 교환하는 이자율 스왑, 원화와 달러를 교환하는 통화스왑, 그리고 달러현물과 선물을 동시에 사고파는 FX(외환)스왑이 이 시장을 대표한다.
금융시장은 상당부분 엮여 있다. 주식과 채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경기에 대해 선행적으로 움직이는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가격은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로 하락한다.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매수해 주식, 채권 모두 강세를 보이곤 한다. 스왑시장은 채권, 외환시장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때로는 채권, 외환시장에 선행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처럼 금융시장은 서로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주식, 외환, 채권 등 다양한 자산가격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엔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외국계은행 스타 트레이더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한국에서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젠 한국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트레이더들의 생존기를 들어보자.
▣ 작가 소개
저자 : 장태민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졸업. CFA. 조흥은행과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서 잠시 일했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몇 군데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근무했다. 신문사 사회부에서 사건 사고를 취재하는 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뒤, 주로 경제 금융 분야를 취재했다. 현재 로이터통신에서 경제 금융 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자 : 임승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합인포맥스를 거쳐 현재 로이터통신에서 경제 금융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이것만은 알아두자) 주식과 주식투자
“지금 코스닥을 살 수는 없다” -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펀드매니저·딜러·트레이더·운용역·포트폴리오매니저의 차이는
(이것만은 알아두자) 외환과 외환거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성희 JP모건 서울지점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채권과 채권투자
“교과서 없이 트레이딩하기” - 최경진 도이치은행 FIC본부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한국의 버핏과 멍거를 꿈꾸다” - 최준철·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가치투자는 김성근이다” - 김민국·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스왑거래란
(이것만은 알아두자) 금융위기 가늠자 역할 하는 스왑시장
“트레이더의 빛과 그림자” - 유창범 BOA메릴린치 서울지점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트레이딩과 인터뱅크 시장의 형성
“돈은 비싼 데서 싼 데로 흐른다” - 서준식 BNP파리바자산운용 이사
(이것만은 알아두자)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ECB를 보면 답이 보인다
(이것만은 알아두자)
주식펀드, 채권펀드는 알겠는데 계약형, 개방형, 매출형은 뭐지?
“성공은 곧 실패다” -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시장, 무엇이 달라졌나
“트레이딩의 마에스트로” - 박형근(Alex Park) SC은행 부행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외은지점 트레이딩의 위기?
“금융시장의 지배자, 도전자로 다시 서다” - 서재형 대신자산운용 사장
(이것만은 알아두자)
상품계정, 고유계정, 프랍, 투자계정, 신탁계정의 차이는
“FX2세대·이자율스왑 1세대의 성공비법” - 김태호 UBS은행 대표
(이것만은 알아두자) 헤지펀드, 한국 IRS시장 어떻게 흔들었나
“투자도, 인생도 인덱싱하라” - 한진규 유리자산운용 전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개별종목보다 인덱스투자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짬짜면 시키는 위인은 투자의 세계를 떠나라” - 안시형 KDB생명 상무
(이것만은 알아두자) 투자는, 아니 우리 인생은 기회비용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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