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금융위기의 진실, 그리고 음모의 시작
살다 보면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주변 환경이 마치 이전에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체로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를 ‘데자뷰(deja vu)’ 현상이라고 한다. 10년 전 참혹했던 미국 신경제의 거품과 붕괴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이 꼭 오늘날의 상황을 데자뷰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요즘 세계를 보자. 탐욕이 살아나고 있고, 구제 금융을 받은 돈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책정하고 있으며, 고위험 파생상품에 또 다시 손대고 있다. 모든 것이 10년 전 그때의 상황과 유사하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금융거품은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을 IT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했다. IT산업은 이전의 이론이나 경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버핏은 IT주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99년 S&P 500지수는 25퍼센트 상승한 데 반해 워렌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헤서웨이의 투자수익률은 0.5퍼센트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비아냥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그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아 거품이 터졌다. 한때 5,000포인트까지 올라갔던 나스닥지수가 80퍼센트 가까이 폭락해 1,10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
《크래쉬》는 20세기 말 미국의 유래 없는 대호황의 끝에서 일어난 스톡옵션 광풍, 벤처 붐, 통신주 붐 그리고 엔론 및 월드컴과 같은 회계부정 사건 등, 거품이 터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주주중심주의라는 탈을 쓰고, 회계부정을 저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는가에 대해서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1. 미국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내는 것에 있다.
2. 이익을 얼마나 내느냐는 회사의 주가에 반영된다.
3. 스톡옵션을 받은 CEO에게 주가 상승은 곧 자신의 이익이다.
4. CEO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가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 더욱이 주가는 기업의 실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꾸준히 자신의 기업이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5. 이런 이유로 CEO는 회계사를 매수해 회계장부를 조작한다. 이런 문제들은 2000년대 초반 매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컴과 엔론을 낳고 심각한 경제위기를 야기한다.
이 책은 10년 전 시작된 미국의 눈먼 호황에서부터 금융 거품이 터지는 과정을 리얼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규제정책을 만들어낸 정부, 열광의 씨앗을 뿌린 닷컴기업, 대중의 광기를 유도하고 전파한 증권사와 언론, 호황의 주역이자 최대 피해자인 투자자들…. 이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만들어낸 눈먼 호황과 금융위기의 경악스러운 진실이 낱낱이 공개된다.
거품이 그 참혹했던 잔해를 남기며 꺼져가고 있는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상황을 데자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신경제 정책을 추진한 작은 정부의 실패, 시장이 시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 투자은행 스스로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자신들을 방어하는 아이러니,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10년 전 그때와 너무 흡사하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해버린 미국,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 이 유동성의 위기를 또 다시 과잉 유동성으로밖에 막을 수 없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 증시부활과 호황이 가져다 준 새로운 기업문화
1970년대 미국 경제는 불황으로 인해 주식은 아주 저평가되고, 기업들은 경쟁에서 일본기업에 밀려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0년대에 들어 기업사냥꾼들이 나타나 문제 있는 기업을 쪼개서 파는 인수합병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하지만 인수합병은 기업자체를 살려 내실을 키우는 것이 아니므로 해당기업의 문젯거리나 부실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인수합병에 들인 차입금을 해결할 수 없는 기업들은 결국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수합병은 기업 지배구조의 궁극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이에 기업의 CEO가 다시금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관료처럼 경직된 데다 기업사냥꾼에 의해 자리를 위협받고, 게다가 급여가 많다는 사회적 비판과 급여상한 규제요구로 곤경에 처해있던 CEO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기업의 실소유주처럼 헌신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CEO에게 대량의 스톡옵션을 주고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면 이것이 성과급이자 보상이 되도록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때마침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와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이 큰 수익을 올리면서 젊은 프로그래머나 기업가들이 스톡옵션을 통해 갑부가 되는 사례가 나오자 CEO에 대한 대규모 스톡옵션의 부여는 빠른 속도로 다른 산업에까지 퍼지게 된다. 1990년대 들어 걸프전의 후유증이 가시고 기업의 실적이 좋아진데다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등 제반여건이 좋아지자 이런 풍조는 점차 일반화된다.
▶ 주주가치의 구호와 호황 속에 가려진 분식회계
저평가되었던 주식시장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강세를 띠고, 호황이 지속되자 CEO들은 스스로 가진 역량 이상의 사회적 대우와 스톡옵션을 통한 대규모 이익을 얻었다. 호황의 분위기는 시장에 대한 낙관을 완전한 확신으로 만들었고 누구나, 심지어 정부까지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게 되었다.
연기금이 주식에 투자되고 많은 증권분석가들이 끊임없이 호황과 강세시장을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의 CEO에 대한 과도한 급여지급이나 이사진의 엉성한 감독, 회계장부의 부실한 회계처리는 모두 덮여지게 된다. 아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이런 호황의 추세를 깨려고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실제로는 규제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시장은 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점점 지나칠 정도로 커진 스톡옵션을 비롯한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한 반발을 받았고, 규제기관들은 무력해졌다.
90년대를 걸친 미국의 호황은 스스로를 자아도취 시켰지만, 그 내부에서는 거품이 커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자본이동의 자유화 요구가 이뤄진 후 일어난 과도한 금융투기와 실물경제의 괴리는 결국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한 취약한 경제상황을 가진 국가들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아시아 시장의 경색은 미국 시장에 불안감을 주었지만 미 달러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이 시기 미 증권시장은 인터넷 기업에 돈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른바 신경제의 선봉으로 불리던 인터넷 기업들은 주로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모았고, 스톡옵션 확산의 진원지인 실리콘 밸리의 화려함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 인터넷 상거래의 가능성은 호황의 분위기를 타고 디지털 신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과감히 주장하게 했고,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공개되는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자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기업들마저 자신들 역시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애를 썼다. 광섬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정보 전송량의 급격한 확대는 인터넷 기업 붐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규모로 텔레콤 기업들의 통신망에 대한 중복투자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회계부정의 일반화를 불렀다. 사람들은 인터넷 기업들보다 텔레콤 기업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고, 텔레콤 기업에는 인터넷 기업의 수십 배 자금이 투자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온갖 방법이 동원된 회계부정이 일어나 점차 확산되었다. 기업들은 영업실적보다 화려한 이미지에 관심을 쏟았고, 특히 주가를 올리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정상적이 아니었지만 이런 풍조는 ‘주주가치’라는 구호 아래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은 저조한 상황에서 주가를 올리는 데만 노력하는 것은 결국 회계부정이라는 마의 선을 넘게 만들었다.
▶ 거품의 파국과 사후처리, 그리고 신경제 몰락에 대한 평가
에너지 기업인 엔론은 온갖 회계부정의 표본이자 전형으로, 처음부터 신용상의 문제를 가졌다. 엔론은 부실을 감추고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본업 외의 여러 사업을 벌였다. 그들은 수익이 아니라 이미지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했으며, 분식회계를 통해 손실이 생겨도 수익이 늘어난 것처럼 사업실적을 공표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는 기업인 것처럼 회사의 주요사업을 바꿔 근사하게 포장해가면서 주가를 올리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고, 은행이나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과 결탁하여 번영을 구가했다. 그들은 월스트리트를 속였다. 하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결국 2001년 말 엔론은 파산신청을 했다. 엔론이 회계장부를 허위로 처리한 것이 드러나면서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월드컴을 비롯한 부실한 기업들의 파산이 줄을 잇고, 그간의 호황으로 덮여있던 CEO들의 대규모 스톡옵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등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오자 시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연방정부는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 국회도 청문회를 통한 통상적인 조사 정도가 아니라 사베인스-옥슬리법 이라는 강력하고 새로운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수많은 기업인이 검찰에 소환되었고, 기업들과 손잡고 회계부정을 공모한 회계법인과 거짓된 정보를 남발한 증권분석가들 역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10여년에 걸친 미국 신경제의 유례없는 호황과 추락은 개인이나 개별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기업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이며, 책임도 사회전체에 있는 것이었다.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경영자는 보상받아야한다는 명분아래, 아무런 자본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은 경영자에게 스탁옵션을 부여하게 되면서, 그리고, 경영자의 보상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일반 직원과의 괴리가 심해지면서, 경영자는 주주를 위해서 일한다는 말만 되뇌였지, 단기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서 회계부정도 일삼고,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그것도 거대기업에서 이사회라는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CEO와 이사회 회장을 겸임하는 이상야릇한 체제와 관행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대통령겸 국회의장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인수와 합병이 만연하면서, 합병회계의 마술을 통해서 실적을 위장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기업이 몰락의 길을 가는 모습과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경영의 롤 모델로 일컬어지고 있는 GE의 잭웰치 전 회장도 퇴임후 막대한 보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 책에서 비판받는다. 그리고, 재직기간동안의 주주중심을 외치면서 100분기연속 성장이라는 의심스러운 성장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스트레치골이 사실상 경영자에게 숫자를 맞춰내려는 의지를 갖게 해서 부정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유일하게 비판하지 않은 사람은 버크셔헤더웨이의 워렌버핏 뿐이다.
미국에서는 버블이 일어나는 호황의 끝자락에서 충분히 자체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정화를 할 수 있는 규제시스템이 있었으나, 감사법인들이 컨설팅업무를 겸업해서 고객의 돈을 벌려는 욕구로 인해서 강력한 로비를 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경영진이 올바르진 회계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해서 로비를 함으로서 그런 정화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그것이 재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을 곰곰히 읽고 생각을 하다보면 시장의 자율적인 자정기능에만 맡겨서는 안되는 많은 일들이 있고,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룰을 만들고, 규제를 하는 기관이 무척이나 중요함을 알게 된다.
2002년 엔론의 회계부정이 대대적으로 미국을 강타하면서, 결국 샤베인옥슬리법이 통과되고, 기업의 통제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올바른 주주중심주의를 위해서 올바른 제도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법적인 정비가 차차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경영자들이 읽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윤리와 경영의 소명의식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교훈이 담긴 책이다.
▣ 작가 소개
저 : 로저 로웬스타인
Roger Lowenstein
저명한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10년 이상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주식시장과 투자에 관한 고정칼럼을 기고했다. 오랜 기자 경험과 투자가의 전문성으로 완성한 이 책은 지난 15년간 미국 경제경영서 부문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왔으며,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버핏을 알려면 이 책부터 읽어라.”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버핏 평전의 오리지널이자 대표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저서『천재들의 머니케임』은 10년 전,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명쾌한 설명과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당시 그 현장에 참여한 유명 금융인들과 피터 번스타인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 월가의 은행들, 미국연방준비은행까지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평을 듣는다. 또한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현대 금융경제학 이론과 투자법, 월가 금융기관들의 역학관계와 치열한 암투, 앨런 그린스펀과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주요 인물들의 개성이 집약되어 있기도 하다.
로저 로웬스타인은 그 외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 『While America Aged』, 『Origins of the Crash』 등을 저술했으며, 현재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뉴리퍼블릭New Republic」, 「스마트
머니Smart Money」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역 : 이주형
부산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SK텔레콤, KISDI(통신개발연구원),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Full Frontal PR』『판매의 원리』(전2권) 『은퇴혁명』『버블의 기원』『세일즈도그』『C학점의 천재가 만든 경영신화』『What''s Next 2015』『전략은 운명이다』『헤일로 이펙트』,『똑똑한 리더의 치명적 착각』 등이 있다.
금융위기의 진실, 그리고 음모의 시작
살다 보면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주변 환경이 마치 이전에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체로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를 ‘데자뷰(deja vu)’ 현상이라고 한다. 10년 전 참혹했던 미국 신경제의 거품과 붕괴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이 꼭 오늘날의 상황을 데자뷰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요즘 세계를 보자. 탐욕이 살아나고 있고, 구제 금융을 받은 돈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책정하고 있으며, 고위험 파생상품에 또 다시 손대고 있다. 모든 것이 10년 전 그때의 상황과 유사하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금융거품은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을 IT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했다. IT산업은 이전의 이론이나 경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버핏은 IT주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99년 S&P 500지수는 25퍼센트 상승한 데 반해 워렌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헤서웨이의 투자수익률은 0.5퍼센트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비아냥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그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아 거품이 터졌다. 한때 5,000포인트까지 올라갔던 나스닥지수가 80퍼센트 가까이 폭락해 1,10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
《크래쉬》는 20세기 말 미국의 유래 없는 대호황의 끝에서 일어난 스톡옵션 광풍, 벤처 붐, 통신주 붐 그리고 엔론 및 월드컴과 같은 회계부정 사건 등, 거품이 터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주주중심주의라는 탈을 쓰고, 회계부정을 저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는가에 대해서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1. 미국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내는 것에 있다.
2. 이익을 얼마나 내느냐는 회사의 주가에 반영된다.
3. 스톡옵션을 받은 CEO에게 주가 상승은 곧 자신의 이익이다.
4. CEO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가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 더욱이 주가는 기업의 실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꾸준히 자신의 기업이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5. 이런 이유로 CEO는 회계사를 매수해 회계장부를 조작한다. 이런 문제들은 2000년대 초반 매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컴과 엔론을 낳고 심각한 경제위기를 야기한다.
이 책은 10년 전 시작된 미국의 눈먼 호황에서부터 금융 거품이 터지는 과정을 리얼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규제정책을 만들어낸 정부, 열광의 씨앗을 뿌린 닷컴기업, 대중의 광기를 유도하고 전파한 증권사와 언론, 호황의 주역이자 최대 피해자인 투자자들…. 이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만들어낸 눈먼 호황과 금융위기의 경악스러운 진실이 낱낱이 공개된다.
거품이 그 참혹했던 잔해를 남기며 꺼져가고 있는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상황을 데자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신경제 정책을 추진한 작은 정부의 실패, 시장이 시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 투자은행 스스로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자신들을 방어하는 아이러니,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10년 전 그때와 너무 흡사하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해버린 미국,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 이 유동성의 위기를 또 다시 과잉 유동성으로밖에 막을 수 없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 증시부활과 호황이 가져다 준 새로운 기업문화
1970년대 미국 경제는 불황으로 인해 주식은 아주 저평가되고, 기업들은 경쟁에서 일본기업에 밀려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0년대에 들어 기업사냥꾼들이 나타나 문제 있는 기업을 쪼개서 파는 인수합병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하지만 인수합병은 기업자체를 살려 내실을 키우는 것이 아니므로 해당기업의 문젯거리나 부실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인수합병에 들인 차입금을 해결할 수 없는 기업들은 결국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수합병은 기업 지배구조의 궁극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이에 기업의 CEO가 다시금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관료처럼 경직된 데다 기업사냥꾼에 의해 자리를 위협받고, 게다가 급여가 많다는 사회적 비판과 급여상한 규제요구로 곤경에 처해있던 CEO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기업의 실소유주처럼 헌신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CEO에게 대량의 스톡옵션을 주고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면 이것이 성과급이자 보상이 되도록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때마침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와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이 큰 수익을 올리면서 젊은 프로그래머나 기업가들이 스톡옵션을 통해 갑부가 되는 사례가 나오자 CEO에 대한 대규모 스톡옵션의 부여는 빠른 속도로 다른 산업에까지 퍼지게 된다. 1990년대 들어 걸프전의 후유증이 가시고 기업의 실적이 좋아진데다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등 제반여건이 좋아지자 이런 풍조는 점차 일반화된다.
▶ 주주가치의 구호와 호황 속에 가려진 분식회계
저평가되었던 주식시장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강세를 띠고, 호황이 지속되자 CEO들은 스스로 가진 역량 이상의 사회적 대우와 스톡옵션을 통한 대규모 이익을 얻었다. 호황의 분위기는 시장에 대한 낙관을 완전한 확신으로 만들었고 누구나, 심지어 정부까지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게 되었다.
연기금이 주식에 투자되고 많은 증권분석가들이 끊임없이 호황과 강세시장을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의 CEO에 대한 과도한 급여지급이나 이사진의 엉성한 감독, 회계장부의 부실한 회계처리는 모두 덮여지게 된다. 아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이런 호황의 추세를 깨려고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실제로는 규제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시장은 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점점 지나칠 정도로 커진 스톡옵션을 비롯한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한 반발을 받았고, 규제기관들은 무력해졌다.
90년대를 걸친 미국의 호황은 스스로를 자아도취 시켰지만, 그 내부에서는 거품이 커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자본이동의 자유화 요구가 이뤄진 후 일어난 과도한 금융투기와 실물경제의 괴리는 결국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한 취약한 경제상황을 가진 국가들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아시아 시장의 경색은 미국 시장에 불안감을 주었지만 미 달러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이 시기 미 증권시장은 인터넷 기업에 돈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른바 신경제의 선봉으로 불리던 인터넷 기업들은 주로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모았고, 스톡옵션 확산의 진원지인 실리콘 밸리의 화려함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 인터넷 상거래의 가능성은 호황의 분위기를 타고 디지털 신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과감히 주장하게 했고,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공개되는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자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기업들마저 자신들 역시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애를 썼다. 광섬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정보 전송량의 급격한 확대는 인터넷 기업 붐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규모로 텔레콤 기업들의 통신망에 대한 중복투자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회계부정의 일반화를 불렀다. 사람들은 인터넷 기업들보다 텔레콤 기업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고, 텔레콤 기업에는 인터넷 기업의 수십 배 자금이 투자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온갖 방법이 동원된 회계부정이 일어나 점차 확산되었다. 기업들은 영업실적보다 화려한 이미지에 관심을 쏟았고, 특히 주가를 올리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정상적이 아니었지만 이런 풍조는 ‘주주가치’라는 구호 아래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은 저조한 상황에서 주가를 올리는 데만 노력하는 것은 결국 회계부정이라는 마의 선을 넘게 만들었다.
▶ 거품의 파국과 사후처리, 그리고 신경제 몰락에 대한 평가
에너지 기업인 엔론은 온갖 회계부정의 표본이자 전형으로, 처음부터 신용상의 문제를 가졌다. 엔론은 부실을 감추고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본업 외의 여러 사업을 벌였다. 그들은 수익이 아니라 이미지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했으며, 분식회계를 통해 손실이 생겨도 수익이 늘어난 것처럼 사업실적을 공표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는 기업인 것처럼 회사의 주요사업을 바꿔 근사하게 포장해가면서 주가를 올리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고, 은행이나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과 결탁하여 번영을 구가했다. 그들은 월스트리트를 속였다. 하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결국 2001년 말 엔론은 파산신청을 했다. 엔론이 회계장부를 허위로 처리한 것이 드러나면서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월드컴을 비롯한 부실한 기업들의 파산이 줄을 잇고, 그간의 호황으로 덮여있던 CEO들의 대규모 스톡옵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등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오자 시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연방정부는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 국회도 청문회를 통한 통상적인 조사 정도가 아니라 사베인스-옥슬리법 이라는 강력하고 새로운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수많은 기업인이 검찰에 소환되었고, 기업들과 손잡고 회계부정을 공모한 회계법인과 거짓된 정보를 남발한 증권분석가들 역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10여년에 걸친 미국 신경제의 유례없는 호황과 추락은 개인이나 개별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기업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이며, 책임도 사회전체에 있는 것이었다.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경영자는 보상받아야한다는 명분아래, 아무런 자본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은 경영자에게 스탁옵션을 부여하게 되면서, 그리고, 경영자의 보상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일반 직원과의 괴리가 심해지면서, 경영자는 주주를 위해서 일한다는 말만 되뇌였지, 단기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서 회계부정도 일삼고,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그것도 거대기업에서 이사회라는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CEO와 이사회 회장을 겸임하는 이상야릇한 체제와 관행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대통령겸 국회의장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인수와 합병이 만연하면서, 합병회계의 마술을 통해서 실적을 위장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기업이 몰락의 길을 가는 모습과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경영의 롤 모델로 일컬어지고 있는 GE의 잭웰치 전 회장도 퇴임후 막대한 보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 책에서 비판받는다. 그리고, 재직기간동안의 주주중심을 외치면서 100분기연속 성장이라는 의심스러운 성장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스트레치골이 사실상 경영자에게 숫자를 맞춰내려는 의지를 갖게 해서 부정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유일하게 비판하지 않은 사람은 버크셔헤더웨이의 워렌버핏 뿐이다.
미국에서는 버블이 일어나는 호황의 끝자락에서 충분히 자체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정화를 할 수 있는 규제시스템이 있었으나, 감사법인들이 컨설팅업무를 겸업해서 고객의 돈을 벌려는 욕구로 인해서 강력한 로비를 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경영진이 올바르진 회계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해서 로비를 함으로서 그런 정화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그것이 재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을 곰곰히 읽고 생각을 하다보면 시장의 자율적인 자정기능에만 맡겨서는 안되는 많은 일들이 있고,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룰을 만들고, 규제를 하는 기관이 무척이나 중요함을 알게 된다.
2002년 엔론의 회계부정이 대대적으로 미국을 강타하면서, 결국 샤베인옥슬리법이 통과되고, 기업의 통제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올바른 주주중심주의를 위해서 올바른 제도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법적인 정비가 차차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경영자들이 읽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윤리와 경영의 소명의식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교훈이 담긴 책이다.
▣ 작가 소개
저 : 로저 로웬스타인
Roger Lowenstein
저명한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10년 이상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주식시장과 투자에 관한 고정칼럼을 기고했다. 오랜 기자 경험과 투자가의 전문성으로 완성한 이 책은 지난 15년간 미국 경제경영서 부문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왔으며,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버핏을 알려면 이 책부터 읽어라.”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버핏 평전의 오리지널이자 대표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저서『천재들의 머니케임』은 10년 전,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명쾌한 설명과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당시 그 현장에 참여한 유명 금융인들과 피터 번스타인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 월가의 은행들, 미국연방준비은행까지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평을 듣는다. 또한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현대 금융경제학 이론과 투자법, 월가 금융기관들의 역학관계와 치열한 암투, 앨런 그린스펀과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주요 인물들의 개성이 집약되어 있기도 하다.
로저 로웬스타인은 그 외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 『While America Aged』, 『Origins of the Crash』 등을 저술했으며, 현재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뉴리퍼블릭New Republic」, 「스마트
머니Smart Money」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역 : 이주형
부산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SK텔레콤, KISDI(통신개발연구원),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Full Frontal PR』『판매의 원리』(전2권) 『은퇴혁명』『버블의 기원』『세일즈도그』『C학점의 천재가 만든 경영신화』『What''s Next 2015』『전략은 운명이다』『헤일로 이펙트』,『똑똑한 리더의 치명적 착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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