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세상의 아름다움

☞ 책 소개

[여유당전서]의 시문집에는 이 '위대한' 사람의 인간적 내면을 보여주는 시와 문장들도 함께 들어 있어서, 이 글들을 읽다보면 이 '위대한' 사람이 살갑게 느껴진다.

아내를 그리워한 한 사람의 지아비,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느라 잠 못 이루는 한 사람의 평범한 아비를 만나게 되고, 그가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삶을 산 방식이 따뜻하게 사무쳐온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나도 다산의 자식들 중의 하나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다소곳이 듣는 마음이 된다.

▣ 신문 서평

정약용의 인간적 향기 우리 곁에

정약용은 기재였다. 정조대왕이 장편의 배율을 지어 올리라고 하였을 때, 그는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에 그 긴 시를 지었다. “이런 진정한 재주는 처음 보았다”는 칭찬이 내렸다. 병조참의로 있으면서 숙직 암호를 정하자, 정조는 아흔 아홉 번이나 고치게 하였다. 너무도 그를 아껴 불러 보고 싶어서 그랬다. 그러나 반대 정파의 시기 때문에 정약용은 벼슬살이가 순탄치 못하였고, 정조의 서거 뒤에는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의 유배기에 마재(마현)의 집을 지키면서 대소사를 처리해나간 사람은 아내 홍씨였다.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만년을 다사롭게 감싸준 사람도 아내 홍씨였다. 그 부인에 대한 이 대학자의 애틋한 사랑은 그가 남긴 시와 문에 언뜻언뜻 드러난다. 또한 형제간이면서 지기였던 셋째 형 정약전과 나눈 서간,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부친 서한에서는 그의 우환의식과 함께 피붙이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정약용의 구세적 열정과 학문적 치열성은 섬세한 감수성과 따스한 인간애에 의하여 뒷받침되어 있다. 이 ‘뜬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약용의 단형 산문을 가려 뽑아 번역한 이 ‘뜬세상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그의 인간적 향내를 흠씬 들이마실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면서 높은 이상을 향하여 일생 고투하였던 위대한 사람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정약용은 인간사의 법칙을 개념화하고 현실을 개선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일생 잊지 않았다. 민초에 대한 동정과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 영혼을 움직였다. 영혼의 모습은 문학으로도 나타났다. 정약용은 한때, ‘노자’가 가르쳐 준 ‘움츠림’의 자세를 취해보겠다고 생각하여, 사랑방에 ‘여유당’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일생 움츠려 있지 않았기에, 그의 당호는 그의 일생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지금 마재의 생가에 걸려 있는 ‘여유당’의 편액은 정약용의 친필이 아니다. 그것이 착잡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이 책에서 그것을 친필로 소개한 것은 일실의 감이 든다. [2001.08.11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