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영해의 한국역사소설《Autour d'une vie coréenne》, 90년 만에 한국어로 옮겨지다
서영해의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지내오다가 90년 만에 우리 글로 옮겨져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파리에서 간행과 함께 1930년 한해에 5쇄를 인쇄할 만큼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다. 1920년 파리에 유학할 때만 해도 프랑스어를 몰랐던 서영해가 9년 만에, 그것도 유창한 프랑스어로 한국역사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 책에서 구사하고 있는 프랑스어 어휘와 문장은 매우 고급스럽고 유려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간행되자 프랑스 언론과 문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역사소설은 프랑스인들의 기존 극동관과 사뭇 달랐던 점에서 흥미를 이끌어 냈다. 이전까지 프랑스인들은 주로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아 왔으나,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한국 역사문화의 진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한국 역사 문화에 대한 왜곡을 유럽에서도 집요하게 선전했다. 그들은 한국이 자주 독창적인 역사와 문화가 없는 중국의 오랜 속방으로, 근대에 이르러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비로소 문명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고 왜곡했다. 조선총독부는 아예 이런 내용을 담은 선전 책자를 프랑스어판으로 발간해 뿌리기도 했다. 서영해의 역사소설이 그것을 통쾌하게 물리친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책의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이 시적 운율을 지니며 심오한 뜻이 담겨져 호소력을 배가시킨다는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문학 형식을 빌어 한국 역사문화에 대한 진실을 공감하도록 이끌어 낸다는 극찬도 따랐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42세기 동안 한국의 역사 문화와 근대 한국의 정세와 혁명, 2부는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전통 풍습, 3부는 주인공 박선초의 독립운동과 3·1운동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역사인 듯하면서 소설이고, 소설인 듯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담아 내고 있는 점이다. 이 책은 역사와 소설의 경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박선초는 역사상 실재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의 가상 인물이라 하기에는 한국의 역사적 진실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박선초는 한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복합적으로 조합한 성격의 인물이다. 어릴 적 이야기에는 서영해의 자전적 경험을 투영하고 있으며, 혁명과 독립운동의 이야기에는 그것을 종합한 성격과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박선초가 추구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인도주의는 곧 한국독립운동의 정의이자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주목할 것은 3·1운동의 〈독립선언서〉전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점이다. 사실 이 책의 기본 정신은〈독립선언서〉에서 내세운 자유와 독립, 양심과 정의, 인도와 평화 사상이다. 그것은 허구가 아닌 역사의 실상이었다. 그리고 1919년의 독립선언서가 10년 뒤에 프랑스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이 1919년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했으며,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음을 당당히 밝히고 싶은 서영해의 진실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설정하고 있는 역사적 내용이 사실과 어긋나는 게 눈에 띠는 게 사실이다.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했다던가, 그런 혁명이 실제 있었는가, 또 혁명의 과정에서 동학과 연대를 이뤘다든지 등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들이 이 책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약점이 될 수는 결코 없다.
이 책은 프랑스인에게 한국의 역사 문화와 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둔 것이었다. 한국의 역사 문화가 42세기 동안 찬란하게 꽃피웠으며, 아름다운 풍습과 자연 환경을 지녔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의 처지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한국에도 혁명의 조짐이 일었음을 알리기 위해 단지 1884년의 갑신정변과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 등을 함께 묶어 표현했을 뿐이다. 사실 전달에 얽매이다 보면 자칫 장황해질 수 있는 것들을 생략하고, 그 진실의 원천을 알리고 싶었던 것에 중점을 두었던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의도이기도 했을 것이다. 서영해가 이 책을 굳이 한국역사소설이라 명기한 것은 그런 고민의 반영이었다.
서영해가 42세기 동안 이어져온 한국의 역사 문화를 강조한 것은 한국인이 문명 민족이었음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고유한 문명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던 것이다. 곧 이 책은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및 홍보 책자였다.
서영해는 프랑스 폴 뒤메르(Paul DOUMER) 대통령을 비롯해 국제연맹이나 유럽 각국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책을 널리 배포했다. 그리고 국제연맹 사무총장,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 파리주재 중국총영사, 제네바 국립도서관 등으로부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한국의 역사문화와 독립운동의 진실을 이해하게 됐다는 감사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무대에서 한국의 역사문화와 독립운동의 정신을 알리기 위한 외교 선전활동의 최고의 텍스트였던 것이다.
서영해는 1920년부터 환국하는 1947년까지 27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스위스, 벨기에 등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정작 그의 삶은 오랫동안 신비에 싸인 채 가리어져 있었다. 서영해의 역사소설을 번역한 이 책(역사공간)의 ‘해설’, 〈서영해, 파리에서 자유와 독립의 꿈을 이루다〉는 서영해의 삶과 독립운동을 깊게 구명했다. 서영해의 작은 평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만큼 폭과 깊이가 넓고 깊다. 해설을 집필한 국민대 장석흥 교수는 “《어느 한국인의 삶》이야말로 서영해 연구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서영해 연구를 심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서영해의 활약을 두고, “마치 삼국지에서 단기필마로 조조의 대군과 맞서 싸웠던 조자룡에 비유할 만한” 독립운동가라 주장했다.
서영해는 3·1운동 때 부산에서 17세의 나이로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그는 파리 북쪽 70킬로미터에 위치한 보배(Beauvais)에서 초·중등 과정을 이수하고 샤르트르시의 리세 마르소에서 고등과정을 마쳤다. 파리의 소르본 대학 철학과정을 잠시 다녔으며, 고등사회연구학교의 언론학교에서 언론학과 정치학을 이수했다.
서영해는 192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제2회 반제국주의세계대회를 통해 독립운동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같은 해 자신의 집인 말브랑슈 7번지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한국역사소설《어느 한국인의 삶》을 출간해 프랑스 문단에서 각광을 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그뿐 아니라,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극동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극동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의 극동 정세관은 그동안 프랑스인들의 인식과 사뭇 달라 신선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을 통해 한국을 왜곡되게 인식하던 프랑스의 관점과 달리 한국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서영해는 극동문제와 관련한 논설을 프랑스의 여러 신문에 발표하면서 일제 침략성을 고발했다. 서영해의 이 책은 스페인까지 알려지며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서영해는 1932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뒤 안창호가 일경에 붙잡히자, 파리 외무성을 상대로 구원운동을 펼쳤다. 비록 안창호를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외무성으로부터 사후 경과를 통보받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다. 1933년에는 이승만과 함께 제네바에서 국제연맹에 《만주의 한국인들》(고려통신사)을 제출하며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4년 서영해를 주불 외무위원으로 임명하면서, 유럽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을 독려해 갔다. 서영해의 주요 임무와 역할은 유럽 각국의 인사들에게 우리의 정세를 널리 선전해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서영해의 활동 무대는 유럽 전역, 아프리카로 확대되었다.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의 중국 침략은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이다”라는 글을 통해 ‘베를린-로마-도쿄의 축’을 설명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을 예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독립 문제가 세계 평화와 함께 이뤄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자유, 평화에 기초한 인도주의(humanité)를 굳게 신뢰했다.
파리가 독일군에 점령당한 뒤 서영해는 일본의 밀고로 1941년 6개월 간 감금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풀려나서는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3년여를 지하생활로 보냈다. 1944년 8월 파리 해방 후 그는 임시정부와 연락을 재개하며 자유 프랑스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1947년 5월 귀국한 서영해는 혼란스런 정치계에 몸담지 않은 채 문화 방면에 힘을 쏟다가 한국의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파리로 향했으나, 1949년 중국의 공산화 과정에서 상하이를 떠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야 했다.
서영해는 한국 독립운동의 불모지와 같던 유럽에서 20여 년간 독립운동을 지켜낸 주역이었다. 그는 작가로서, 기자로서, 국제정세 전문가로서,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고군분투했다.
일본의 침략성을 누구보다 경계하고 폭로했던 그의 외침과 절규는 이 책의 주인공 박선초처럼 궁극적으로 인류 평화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자유·평화 사상에 바탕을 둔 그의 독립운동은 외롭고 힘든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자취는 한국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 차원에서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김성혜
경기여·중고와 서울대학교 불문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남프랑스 뚤레즈대학 대학원에서 쌩떽쥐베리를 연구했다. 삼성물산 파리지사에서 일하면서, 프랑스 예술문화 분야 자료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장석흥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교수로 있으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지냈다. 2017년 연구년을 맞이해 프랑스 파리 디드로대학교(파리7대학) 대학원에서 ‘한국독립운동사’를 강의하고, 서영해의 프랑스 자료를 발굴해 2018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불 특파위원, 서영해의 독립운동〉을 발표한 바 있다.
목 차
2부
3부
* 독립선언서
사진과 자료 속 서영해
서영해, 파리에서 자유와 독립의 꿈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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