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교육에 대한 상상想像을 멈추고 파상破像하기
저자는 교육의 미래에 대해 꿈꾸고 상상하는 대신 부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을 부수는 작업을 통해 현존하는 대상의 비실체성 혹은 환각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과 김홍중의 사유로부터 도출된 파상력破像力이라는 개념을 저자는 교육의 문제에 대입해 본다. 그럼 우리는 교육에서 무엇을 부숴야 할까? 저자는 우선 평등한 개인들이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할 수 있다는 교육학의 가상을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오력 담론’에 기반하여 교육을 통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상, 환상, 소망으로부터 깨어나는 각성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
모두 동의하듯이 교육의 목표는 누구나 저마다의 좋은 삶을 누리며 존엄한 인간적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교육에 대한 상상력은 ‘좋은 사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난관에 부딪힌다. 좋은 사회에 대한 전망 없이 좋은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까지 교육 내적인 문제로 둔갑시켜 오히려 좋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방해하고 불가능한 공약들을 남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교육의 논리로서만 바라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육 문제를 가로질러 작동하며 교육의 문제에 행사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탐구이다.
가장 래디컬하면서도 가장 휴머니즘적인
교사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진보 교육 운동을 성찰하고, 좋은 교육이 가능하기 위한 사회에 대해 묻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 책은 불편하면서도 예리한 주장들로 가득하다. 곽노현 교육감의 1년을 돌아보며 개혁을 거부하는 교사들을 비판하고,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를 통해 교사들의 약탈적 정체성을 꼬집는다. 혁신학교와 4.16 교육 체제, 마을교육공동체 등 진보 교육의 상징이라고 할 정책들에도 애정 어리지만 날선 비판을 피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본소득과 촛불 광장을 통해 좋은 교육이 가능한 토대를 묻는 저자의 태도에는 치열한 지적 실천이 묻어난다. 시험 점수가 높지 않으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누구나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장 래디컬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휴머니즘적인 교육 비평서인 이유이다.
책의 특징과 구성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는 정규직 교사들의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속성과 교육자가 아닌 관료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반성한다. ‘2부 - 진보 교육의 좌표를 묻다’에서는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 4.16 교육 체제, 전교조 운동 등을 통해 지금 시대의 진보적 교육 운동을 성찰한다. ‘3부 -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에서는 생태 위기, 기본소득, 4차 산업 혁명, 나이주의, 촛불 광장 등의 시대적 의제를 통해 좋은 교육이 가능하기 위한 토대를 묻는다.
1부 :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1부 첫 글, 〈곽노현 교육감, 그의 여섯 가지 착각〉은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후, 교육감의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쓰인 글이다. 학급별 수시 평가, 소규모 테마형 수학 여행, 잡무 경감 대책 등 곽노현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은 당시 교사들로부터 현장을 모르는 아마추어 정책이라고 비판받았다. 이 글은 형식적으로는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 정책 추진 방식과 내용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내용적으로는 개혁을 대하는 교사들의 자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글이지만, 왜 그동안의 많은 교육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교사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신규 교사는 어떻게 ‘능숙한’ 경력 교사가 되는가?〉에서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신규 교사가 ‘성실하고 능숙한’ 경력 교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가 꼽은 6개의 아비투스는 ‘전체주의 혹은 소수자에 대한 두려움’, ‘교육의 사회적 관점 부재 그리고 학벌 의식의 내면화’, ‘공공성/공론장의 부재’, ‘관료주의’, ‘자기 감시’, ‘저항하지 않는 방법의 내면화’이다. 저자는 신규 교사들이 학교 관료제 문화를 내면화하면서 관료제적 퍼스널리티를 가진 경력 교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며 이런 시스템이 교사들을 기계 속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역설한다.
〈좋은 교육은 좋은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던 계약직 교원 정규직화 논의를 다룬다. 저자는 기간제 교사 제도의 역사를 되짚고, 편법 채용을 부추겨 온 교육부와 교육청의 행태를 꼬집으며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인 동시에 노동의 문제이며, 그 해법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위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좋은 교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부 마지막 글인 〈이제는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의 고백〉은 저자 자신의 서사이다. 고등학생운동 활동가 출신인 저자는 교사라는 주권자로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예외상태를 선포하고 ‘문제아’들을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인간)로 만들고 있음을 고백한다. 1부에서 이어진 교사 존재에 대한 물음이 고등학생운동 활동가 출신이라는 저자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성찰적인 글이다.
2부 : 진보 교육의 좌표를 묻다
첫 글 〈혁신학교는 무엇을 ‘혁신’하고 있는가〉에서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육 정책 중 하나인 혁신학교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혁신학교에서 하고 있는 실험들은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라며 혁신학교운동이 학교가 정상성을 획득한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무엇보다 혁신학교가 정부 국정 과제로까지 채택되는 지금, 혁신학교의 양적 확산이 ‘무늬만 혁신학교’를 양산하여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진보 교육이 곧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보 교육도 빠지기 쉬운 오류들〉에서는 익숙해서 더 위험한 교육 통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학교교육이 한편에서는 모든 것이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라는 자유주의적 흐름을,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한 평가 제도를 통해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더 좋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능력주의를 확산하고 있으며 진보 교육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강조한다.
〈모순적 종합으로서 공동체운동〉은 마을공동체와 마을교육공동체 담론에 대해 다시 묻는다. 저자는 마을공동체 담론이 자본주의 세계화가 만들어 낸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소외와 균열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종합하려는 의미 있는 접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면서 젠더, 교육, 노동의 문제와 갈등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4.16이 ‘교육 체제’여야 하는가〉에서는, 4.16 교육 체제를 5.31 교육 개혁과 대비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살핀다. 저자는 4.16이 교육 체제가 아니라 인권 테제가 될 때 5.31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고 교사와 학생이 주체가 되는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부 마지막으로 저자는 전교조 운동을 되돌아본다. 〈‘저항적’ 교사운동과 전교조〉에서 저자는 전교조 운동의 세 가지 구조적 위기로 ‘의사소통의 균열과 조직의 관료화’, ‘선거 때만 작동하는 정파 구도’, ‘언더 도그마 현상’을 꼽는다. 저자는 특히 전교조 운동이 진보 교육감을 당선시켜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집권 능력을 키웠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나 보수나 할 것 없이 교육청을 통해 현장을 통제하려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3부 :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
첫 글 〈‘생태적 탈근대’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서 저자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생태적 담론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넘어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생태적 전환의 세 가지 키워드로 내세우는 것은 몸 교육으로서 ‘교육의 농적 전환’,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유예하는 것이 아닌 지금의 삶에 충실하는 ‘교육의 동시대적 전환’, 그리고 학생을 정치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교육의 정치적 전환’이다.
〈석기 시대는 왜 끝났을까〉는 교육과 기본소득과의 관계를 설파한다. 저자는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는데 누가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려고 하겠어?”라는 질문은 학교교육의 교육 불가능성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고 말한다.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권리인 기본소득을 통해 진학과 고용으로부터 해방된 진짜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공 지능 시대, 교육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에서 저자는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기존의 담론을 전복한다. 저자는 이른바 미래 교육 담론이 자동화로 인한 고용 불안을 경고하며 원망, 죄책감, 마음의 짐을 지우는 교육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서로 협력하고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경쟁을 심화시키면서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저자는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고 말한다.
〈“넓은 강에서 자라는 잉어는 꿈꿀 필요가 없다”〉는 ‘나이주의’에 대한 문제를 다룬 글이다. 저자는 나이주의는 사회 구조 내에서 형성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교를 포함한 교육 제도는 나이를 통해 개인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제도화된 공간이라고 지적한다. 연령에 따른 차별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반인권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핵심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는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전면화하지 않고 교육 활동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3부 마지막 글, 〈광장, 휴머니즘의 페다고지〉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 광장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성찰한다. 저자는 이 시기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과 정치적 주체로서 청소년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광장을 통해 정치적으로 계몽된 주체들이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가 소개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염경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주제로 교육을 비평하는 글을 써 왔습니다. 인권, 세계시민, 지속가능성,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 『교육 불가능의 시대』 등이 있습니다.
목 차
책을 펴내며 … 4
여는 글 : 이미지를 부수기 그리고 가장자리로부터 재구성하기 … 10
- 파상과 재구성의 변증법
| 1부.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
곽노현 교육감, 그의 여섯 가지 착각
- ‘프로’ 지식 관료가 평가하는 ‘아마추어’ 진보 교육감 일 년 … 20
| 집필 후기 | 교육 개혁이 학교를 바꾸기보다는 학교가 교육 개혁을 바꾼 역사에 대한 성찰 … 52
신규 교사는 어떻게 ‘능숙한’ 경력 교사가 되는가?
- 신규 교사를 경력 교사로 만드는 여섯 개의 아비투스 … 56
| 집필 후기 | 톱니바퀴가 되어야 하며, 되기를 희망하는 교사 … 83
좋은 교육은 좋은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기간제 교사, 그 다양한 맥락 … 86
| 집필 후기 | 우리 사회의 지위 경쟁과 차별에 대한 관대함 … 103
이제는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의 고백
- 청소년운동의 숨겨진 상처와 열광적 진동에 대하여 … 105
| 집필 후기 | 고등학생운동이라는 벌거벗은 경험,그리고 온몸으로 몰입하기 … 133
| 2부. 진보 교육의 좌표를 묻다 |
혁신학교는 무엇을 ‘혁신’하고 있는가?
-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 138
| 집필 후기 | 혁신학교의 확산과 지속 가능성 … 156
진보 교육도 빠지기 쉬운 오류들
- 익숙해서 더 위험한 교육 통념 깨기 … 159
| 집필 후기 | 포스트 민주화 시대로의 전환과 진보교육운동의 역할 … 178
모순적 종합으로서 공동체운동
- 불평등의 심화와 통합의 균열 … 181
| 집필 후기 | 무거운 신발과 피곤한 공동체 … 201
4.16이 ‘교육 체제’여야 하는가?
- 일란성 쌍생아, 5.31 교육 개혁과 4.16 교육 체제 … 204
| 집필 후기 | 교육 개혁과 권위주의적 자율화 … 226
‘저항적’ 교사운동과 전교조
-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 전교조 운동의 미래 … 229
| 집필 후기 | 전교조의 내부 정치: 동반 성장적 관계와 상호 파괴적 관계 사이에서 … 247
| 3부.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 |
‘생태적 탈근대’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
- 교육의 농적·동시대적·정치적 전환 … 252
| 집필 후기 | 뿌리 뽑는 교육에서 뿌리내리는 교육으로의 전환 … 276
석기 시대는 왜 끝났을까?
- 교육과 기본소득 … 279
| 집필 후기 | 교육 가능성의 조건: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권리의 정당화 … 302
“반드시 일어날 일인가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가요?”
- 인공 지능 시대, 교육에 대한 성찰 … 305
| 집필 후기 | 4차 산업 혁명 없는 미래 교육 … 324
“넓은 강에서 자라는 잉어는 꿈꿀 필요가 없다”
- 나이주의와 교육 … 327
| 집필 후기 | 막내 리더십과 반反에이지즘 … 346
광장, 휴머니즘의 페다고지
- 광장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 349
| 집필 후기 | 광화문 광장: 중도 정지된 경험과 완결된 경험 사이 … 360
글의 출처 …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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